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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kdaegeon Sep 03. 2023

'노력하면 된다'는 인생의 굴레

로버트 F. 스콧은 인류 역사상 두 번째로 남극점에 도달한 인물이다. 하지만 세상은 잔인하기에 1등인 아문센을 기억할 뿐 스콧의 이름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더 잔인한 사실은 이 둘의 차이는 한 달 정도뿐이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위대한 작가 츠바이크는 이렇게 적었다.


"수천 년간이나, 어쩌면 지구가 시작된 이후로 지금까지 아무도 들여다보지 못했던 남극에, 극히 짧은 순간에, 겨우 한 달 사이에 두 번씩이나 거듭 사람이 들어섰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두 번째였다."

(아문젠 팀은 1911년 12월 21일, 스콧 팀은 1912년 1월 17일 각각 남극점에 도달했다.)


아문센 탐험대가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남극점 정복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 준비를 했기 때문이다. 식량 없이도 달릴 수 있는 개가 썰매를 끌었고 방한복 역시 원주민처럼 순록가죽으로 만들었다. 썰매에 다른 건 챙기지 않았다.


스콧 탐험대는 달랐다. 과학자였던 자신처럼 철두철미했고 연구 장비까지 가져갔다. 그들의 썰매가 발견될 당시 16kg에 달하는 희귀 광물이 실려 있었다는 건 그들의 남극점을 향했던 마음가짐이 어땠는지 보여준다. 마치 달을 향해 떠났던 아폴로 우주선의 대원 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남극점은 고요의 바다가 아니었다. 우주의 진공은 아폴로의 무게를 가볍게 했지만, 남극의 눈길을 스콧을 막아섰다. 그들은 자신들보다 날카로웠던 이들에게 최초를 빼앗겼다. '오직 처음, 처음만이 전부인 그런 일에, 두 번째는 아무것도 아닌 그런 일에서 그들은 두 번째'였다. 스콧도 자신의 운명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일까? 그는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그 모든 노력, 그 모든 고생, 그 모든 고통은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었던가?’ 




하지만 나는 스콧이 더 좋다. 나 스스로 승리를 원하면서도 이렇게 패배자에게 끌리는 이유는 뭘까? 그건 나 역시 승리보다는 패배에 길들여져 있기에, 그 익숙함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패배하는 자는 승리에 대해 항상 반성한다. '왜 나는 졌을까' 떠올리고 다음 기회에는 승리하기 위해 다짐하고 결심한다. 이 과정에서의 대부분의 결말은 더 좋은 수준의 노력으로 귀결된다. 


스콧 역시 그랬다. 그는 자신 아들의 게으름을 경계하며 아내에게 편지를 적었다. 죽음을 앞에 둔 상황에서도 자신의 책임을 질책하고 있다.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항상 근면해지도록 자신을 채찍질하지 않으면 안 되었소. 나는 언제나 게을러지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오."


'노력하면 된다'는 메시지는 얼마나 희망적인가? 인생을 돌이켜보면 정말 그랬다. 노력했고 성공한 적이 많았다. 열심히 공부했던 시험에서는 좋은 결과를 얻었고 잔머리를 굴리고 게을리했던 시험에서는 탈락했다. '열심히'의 차이, 이건 나 스스로 알 수 있는 것이다. 내가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누구도 아닌 나였다. 하지만 '열심히'라는 세글자는 정말 가혹해서 다신 그렇게 하긴 싫은 것이었다.




어느 날은 '노력하면 된다'는 인생의 굴레가 행운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적어도 노력하면 된다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건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스콧이 말했던 '언제나 게을러지려는 성향'은 나를 억압했고 강박처럼 나에게 불안을 주곤 했다. '이렇게 노력했는데 실패하면 어떻게 하지?'


당연히 노력해도 실패하는 일은 있었다. 노력의 방향성은 틀리기 마련이고 '최선을 다했다'는 말은 실패 앞의 변명에 불과하다. 그럴 때마다 '왜 이렇게 됐을까?' 반성하기보다는 자기 파괴로 다다른 적이 많았다. '뭘 더 어떻게 해야 할까'


큰 실패를 맞이했던 지난주에는 노력과 실패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흔들리는 마음을 잡을 수 없었고 뭐라고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이 나를 짓눌렀다. 그런데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그것을 지금 하는 게 맞는지 등의 물음표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사람의 삶은 외로움과 두려움이다. 


유재석은 젊을 때 신에게 부탁했다.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만약 자신이 방탕하거나 게을러진다면, 그땐 모든 것을 가져가도 좋다고. 그러니 기회를 달라고.' 노력하고 있지 않는 내겐 욕심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바라고 싶다. 기회를 달라고. 길을 보여달라고. 신을 찾는 이유는 별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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