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 놈의 벤츠가 이렇게 많냐
명품의 가치는 더 이상 희소성에서 오지 않는다
내 일주일의 이동 루트는 노원, 합정, 마곡, 그리고 가끔 강남으로 연결된다. 그래서 올림픽대로, 강변북로, 동부간선을 자주 타게 되는데 벤츠가 정말 많다. 고개만 돌리면 보이는 게 벤츠다.
우스갯소리로 강남 바닥 벤츠가 절반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어딜 가도 벤츠가 많다. 다른 외제차도 분명 많지만 벤츠는 압도적으로 많다. 다들 돈을 어디서 그렇게 버는지 궁금할 정도도 벤츠를 모는 이들이 많다.
#정말로 벤츠가 많나?
통계에 따르면 2022년 우리나라 벤츠 판매량은 8만 976대였다. 공개된 2016년 이후로 역대 최고치다. 이걸 더하면 우리나라에는 공식적으로 약 50만 8천대의 벤츠가 도로 위에 있는 셈이다. 올해 역시 엄청 팔릴 것 같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23년 8월 동안 벤츠 판매량은 6588대로 1위다.
신기한 점은 개인 구매 비율이 절반을 넘는다는 것이다. 앞선 KAIDA의 통계 자료에 따르면 외제차의 개인 구매 비율은 58.9%이다. 10대 중 6대가 개인이 등록한 차량이다. 이게 딱 벤츠의 수치는 아니겠지만 유추는 가능하다.
물론 폐차되는 벤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통계에 영향을 주는 수치는 아니다. 한국자동차해체재활용업협회에 따르면 21년 기준 우리나라 폐차율을 9%이다. 하지만 자동차 생애주기가 16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2016년에 판매된 벤츠는 여전히 잘 굴러가고 있겠다.
#왜 이렇게 벤츠가 많나?
우선 대한민국이 돈이 많은 거 같다. 뉴스를 보면 너도 나도 경제가 좋지 않다고 하는데, 1인당 GDP는 꾸준하게 올랐고 오르고 있다. 코로나 영향을 감안하면 2022년, 2023년 수치는 달라질 것 같은데 추세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GDP로만 개인의 경제 사정을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GNI도 찾아봤다. 1인당 GNI는 국민이 국내외에서 벌어들인 소득을 총인구로 나눈 수치로 국민의 호주머니 사정을 파악하는 대표적 지표다. 그랬더니 3만 2661달러가 나왔다. 2021년에서 급감한 이유는 원-달러 환율 때문이라고 하니 추세는 올라간다고 봐도 무방하겠다.
#돈 많으면 벤츠를 사는 건가?
돈 있다고 굳이 벤츠를 살 이유는 없지.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전히 명품을 추구한다. 신기하게도 명품은 사치라기보다는 지속가능성을 지향한다. '비싸게 사서 오래 쓴다'는 인식은 상당히 강하다.
그렇다면 벤츠가 명품을 상징할까? 아무래도 그 전략이 성공한 것 같다. 그 이유는 벤츠코리아 대표의 인터뷰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지난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럭셔리함은 우리 영혼과 DNA의 일부입니다. 이것은 역시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제일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타냅니다."
토마스 클라인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대표는 2021년 1월 부임해서 한국 시장을 벤츠의 글로벌 4대 시장으로 만들었다. 지난해 벤츠의 매출은 7조 5400억 원이었다. 카카오, LG생활건강, 롯데쇼핑 보다 높다. 이런 성과를 낸 클라인 대표는 본사 제품 관리·판매 총괄로 승진해서 한국을 떠났다.
그는 송별 인터뷰에서도 이렇게 말했다. "벤츠코리아는 한국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파악하고 그에 맞춰 제품에 적응해 나갔다"라고. 한국 소비자는 명품을 원하고 벤츠의 포지셔닝을 그쪽으로 이동했고, 그 전략은 성공했다. 명품의 가치는 희소성으로부터 온다는 말은 이제 쓸 수 없을 것 같다. 벤츠를 보면 말이다.
물론 전제는 퀄리티가 보증되어야 된다. 작년에 사고 났을 때 벤츠 e클래스 신형을 렌트해서 탔는데, 아주 코너링이 끝내줬다. 이런 시장의 양극화는 아마 계속되겠지. 아주 싸거나 아주 비싸거나. 어중간한 건 살아남지 못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