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리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러 Sep 06. 2023

노래하는 여인의 침묵

희곡 화염 리뷰

희곡 <화염>은 와즈디 무아와드의 작품으로, 영어명은 <Incendies>이다. 불타오르는 무언가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드니 빌뇌브가 연출한 <그을린 사랑>으로 영화화됐다.


나 역시 이 '화염'을 접하게 된 계기는 드니 빌뇌브 덕분이다. 그의 영화 <시카리오: 암살자들의 도시>와 <컨택트>를 인상적으로 봤고 거슬러 올라가 <그을린 사랑>까지 보고 알게 됐다. 


사실 '그을린 사랑'이라는 영화 제목은 한국화 된 것으로 영화의 원제 역시 <Incendies>다. 작품을 보고 다면 '사랑'이라는 단어의 쓰임이 이해가 되면서도 관객의 감정을 제목이 방해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


이야기의 배경은 레바논이다. 레바논은 지중해를 바라보면서 위로는 튀르키예를 두고 오른쪽에는 시리아, 아래로는 요르단, 이스라엘에 둘러싸여 있다. 


그렇다. 레바논은 중동 국가이면서 내전 국가다. 기독교와 이슬람, 그리고 복잡한 중동 현대사를 거치면서 1950년 이후 끊임없이 내전이 발생했다. '화염'은 그 내전으로 일어난 사건, 그리고 사건을 겪어낸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드라마의 개념적 의미는 작가의 개입이 없이 등장인물들의 대화 형식(행동 포함)으로 이루어진 예술 작품을 말한다. 갑자기 이런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읽는 이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읽기를 멈추고 연극, 혹은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말이다. 


<화염>은 최고의 드라마다. 지금 연극은 볼 수 없으니 드니 빌뇌브의 <그을린 사랑>이 좋겠다. 유튜브에서 구매할 수 있다.  




'화염'은 '1+1은 과연 2인가'라는 물음에 의문을 던진다. 수학적으로 당연히, 적어도 세상이 유지되려면 1 더하기 1은 2여야 한다. 아주 단순한 이치다. 그래야만 세상은 무너지지 않는다. 1+1이 2가 아니라면 2+2가 4일 수도 없는 것이니까.


그런데 1 더하기 1이 2가 되지 않는 사건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어떨까? 아마 그 사람의 세상은 무너지게 될 것이다. 세상이 무너진 나왈 마르완은 말을 멈췄다. 말을 멈췄고 침묵했다. 그렇게 살다가 죽었다. 그리고 자신의 딸과 아들에게 유언을 남겼다. 아버지와 형을 찾으라는 유언이었다.


사실 지켜도 되지 않을 유언이었다. 하지만 질문의 힘은 강했다. 1 더하기 1은 과연 2일까? 딸인 잔느 마르완은 수학자다. 자신의 어머니의 침묵을 들으면서 고민했다. 어머니가 겪은 사건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자신의 어머니의 세상을 무너뜨린 것일까? 1 더하기 1의 답을 의심하기 위해서 1의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 그렇게 잔느는 1을 찾아 떠났다.


다른 아들 시몬은 권투 선수다. 의심한 채로 때리면 때릴 수 없고, 피하면 피하기 전에 맞고 만다. 그래서 시몬은 패배했다. 패배한 권투 선수인 시몬은 패배했기 때문에 패배한 이유를 찾아야만 승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머지 1의 존재를 찾아간다. 




1 더하기 1은 반복되는 서사를 의미하기도 한다. 반복은 끊이지 않는 어떤 것, 계속되는 연결이다. 레바논에서의 반복은 복수를 뜻할 때가 많았다. 이야기는 이렇게 적었다. 


"왜요?"
"복수하기 위해서죠. 이틀 전, 민병들이 난민 캠프 밖에서 뛰어놀던 난민 청소년 세 명을 교수형에 처했습니다. 왜 민병들이 그 세 아이들을 매달았을까요? 난민 캠프의 두 남자가 크파르 사미라 마을의 한 소녀를 성폭행하고 죽여 버렸기 때문이죠. 왜 두 녀석은 그 소녀를 성폭행했을까요? 민병들이 한 난민 가족을 돌로 때려죽였기 때문이죠. 왜 민병들은 그들을 돌로 때려죽였을까요? 난민들이 이 백리향 언덕 근처에 있는 집을 불태웠기 때문이죠. 왜 난민들은 그 집을 불태웠을까요? 자기들이 파놓은 우물을 부숴 버린 민병들에게 보복하기 위해섭니다. 왜 민병들은 우물을 부쉈을까요? 난민들이 도그 강변에서 거둔 수확물을 태워 버렸기 때문이죠. 왜 그들은 수확물을 태웠을까요? 이유가 분명히 있겠지만, 제 기억이 거기에서 멈춰 버렸죠, 더 거슬러 올라가진 못합니다 그렇지만 이야기는 오래전으로 계속 이어지겠죠, 이런저런 말을 해 가면 분노에서 분노로, 고통에서 슬픔으로, 성폭행에서 살인으로 이어지겠죠, 태초의 세상으로까지 말입니다."




영화와 책을 여러 번 보고 읽었다. 처음 영화를 봤을 때의 충격은 여전하고 이번에 희곡으로 읽을 때에도  여전히 먹먹한 기분은 지워지지 않는다. '비극적 운명'이라는 단어로 영화를 말하기에 나의 표현이 너무 부족하다. 누구든 꼭 봐주길 권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실패의 가능성에서 멀어지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