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타르> 리뷰
영화 <타르>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첫 상임 여성 지휘자가 몰락하는, 약 3주 간의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물론 가상의 인물이다. 1882년 창단 이래 베를린필의 상임 지휘자는 모두 남성이었으며, 여성이 입단한 것도 1982년이 처음이었다. 그나마 현실과의 접점이라면 악장이 여성이라는 점이 있겠다. 베를린필은 올해 2월 여성 바이올리니스트인 비네타 사레이카를 악장으로 임명했다.
이렇게 실제로 존재하는 공간이나 조직, 그리고 그에 대한 관념을 활용한 <타르>는 절묘하게 관객을 속인다. 현실과 가상이라는 두 개의 선을 조심스럽게 넘나들면서 리디아(케이트 블란체)에게 빠져들게 한다. 리디아를 압박해 오는 사건들, 그녀를 둘러싼 인물들 그리고 대화들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리디아의 불안과 함께 하게 한다.
영화 내내 리디아의 불안은 소리와 함께 온다. 옆집에서 들려오는 알람 소리, 운전 중 차량 어딘가 접합부에서 덜덜 거리는 소리, 볼펜 딸깍 거리는 소리...
리디아는 그 불안을 없애기 위해 덤벼들지만 결코 제거할 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불안이 없었던 유일한 순간은, 리디아 자신이 아닌 타인의 음악을 온전히 들을 때였다.
어쩌면 영화를 이끌어나가는 건 '타르'가 아니다. 이건 오케스트라에서 지휘자라는 위치를 생각하면 상상하기 쉽다. 교향곡 연주에서 지휘자는 소리 내지 않는다. 영화에서 리디아가 설명하는 것처럼 지휘자는 '시간'이라 설명한다. 오케스트라는 지휘자가 시작하면 시작하고, 멈추면 멈춰야 한다. 그래서 시간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자. 정말 멈춰야 할까? 지휘자는 멈추라고 해도 오케스트라는 멈추지 않을 수 있다. 또 다른 지휘자가 등장할 수도 있고.
그래서인지 리디아는 끊임없이 그 불안을 없애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노력은 욕망을 허락하지 않는다. 불안이 없어질 수 있는 정점의 순간 리디아는 무너진다. 그 무너지는 과정은 정말, 사람이 절벽에서 떨어진다면 이럴 것이라 싶을 정도였다. 주인공인 리디아 타르의 삶의 구성을 그대로 영화 구성에 넣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아주 천천히, 정점을 향해 오르다가 순식간에 무너져 버리는.
각종 영화 소개에 젠더와 권력이라는 말이 붙지만, 그건 그저 지금 우리 사회상을 보여주기 위해 쓰인 수식어라고 생각한다. 사람 사는 건 사랑하고, 질투하고, 증오하고, 위로하고.. 다 비슷비슷하니까.
그래서 <타르>는 욕망에 관한 영화다. 사랑에 대한, 권위에 대한, 존재 증명에 대한, 생존에 대한... 리디아의 욕망은 당연히 권력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졌고 집착은 몰락으로 끝났다.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말러 5번, 번스타인, EGOT 등 친숙한 단어가 나와 재미 아닌 재미를 볼 수 있다. 또 그 뭐랄까? 악기가 내는 소리 외에 모든 걸 부정하는 공연장의 긴장감을 이해하는 이들이라면 영화적 스릴까지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