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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벗 Oct 25. 2021

나를 봐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삶의 궤적은 인연들에게도 흔적을 남긴다

"너는 우리 학교의 다른 친구들과 달리 뭔가 크게 될 거라고 생각했었어. 다만 네가 길을 돌아왔을 뿐이고, 앞으로는 더 잘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학부 선배를 오랜만에 만난 자리였다. 내가 일하고 있는 업계랑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 마침 최근에 통화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던 터였다. 그가 이 업계에서 일한 것도 거의 8년 정도라고 들었던 것 같고, 근황을 나누고 그는 쌓아둔 노하우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사실 꽤나 오랜만에 만난 사이여서, 그가 나에게 이렇게 황송할 정도로 친절하게 다양한 얘기를 해줄 필요는 없었다. 몇 개월 동안 고생해도 배우기 쉽지 않은 업계 뒷이야기와 업무 노하우를 전수해주면서 그는 밝은 표정이었다. 


전에 어떤 소설에서 산을 오르는 토끼의 시점과 토끼의 여정을 지켜보는 관전자의 시각은 다르다는 대목을 접했던 것 같다. 언덕을 넘어 다음 언덕을 앞둔 토끼가 기억하는 자신의 자취와, 관전자가 보는 그의 여정은 다를 수 있다. 


산을 힘겹게 올라가는 토끼처럼, 사실 나는 대학시절의 나의 모습에 대한 기억이 많지 않다. 대학시절의 친구, 후배, 선배를 만나면 지금도 과분할 정도로 과거 내 모습에 대해 인정해주고 좋은 얘기를 해주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나에게는 부끄러운 과거이자 다른 한편으로는 그립기도 한 어린 시절이었을 뿐. 고백하자면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어떤 마음이었는지 다 기억나는 것도 아니다. 


내가 통과해온 산들의 풍경보다, 내 마음에 남은 것은 어떤 간절함, '이건 이렇게 해야 하고 삶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기억의 편린들인 것 같다. 내 생활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쳤을지는 상상도 하기 어렵고, 솔직하게 말하면 내 일상의 관심사를 벗어나는 영역이다. 


타인의 기억에 남은 나의 조각들


오늘 선배가 술기운에 신나서 해줬던 얘기들은 사실 과분할 정도였다. 물론 누구나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자신의 편견과 한계가 간섭하기 마련이지만, 나를 이렇게 바라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점, 과분하게도 이렇게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참 신선했다. 


커리어적으로 이뤄둔 게 없는 상태로 앞으로도 분투를 해나가야 하는 내 상황에서 오랜 시간 나를 봐온 선배에게 이런 얘기를 듣는다는 경험이 감개무량했다. 내 학부생활과 대학원행, 그리고 지금 취직한 행로를 보며 건넨 이야기였기에 더 집중해서 듣게 됐다. 


여기서 자세하게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내가 나온 학부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다니는 곳이었다. 모든 대학교가 그렇겠지만 특히 부모님의 경제력에 따라 실력과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이 쉽게 엿보이는 환경이랄까. 특권을 가진 학생들은 이를 깨닫지도 못할뿐더러 당연히 인싸/아싸 다이내믹도 다분히 존재했다. 


나는 딱히 부유한 집 출신도 아니었고, 이런 학교 내 정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난 항상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집중해 타인의 시간을 낭비하는 일을 혐오했었다. 물론 돌아보면 이런 성향 때문에 문화/예술적 감각 훈련이 한참 덜 되고 늦은 편이지만, 동시에 내 성향과 맞지 않는 일이나 잡담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내 동기나 후배들을 알고 있는 선배의 입장에서는 내 행보가 기특해 보였었나 보다. 그는 '사실 부족한 출발점에서 제일 먼저 앞서 나간 게 너 아니냐'라고 하며 치켜세워줬다. 


민망한 얘기지만 한때 나도 오만에 젖어 마치 내가 다른 사람보다 나은 것처럼 생각했던 시기가 있었다. 주위 친구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신경을 쓴다고 생각했고, 나는 뭔가 성과를 내고 배울 수 있는 것들에 집중했던 것 같다. 그것이 학점이나 공부이건, 동아리 활동이건, 가십, 정치, (내 기준으로) 지나친 친목 등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지금, 여기, 그리고 다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내가 학부부터 대학원까지 이룬 성과가 그다지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내가 그렇게 똑똑하거나 뛰어나지 않은 사람이라는 점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지금은 내가 예상하지 못하지만, 아마 내 능력의 한계로 내가 나아갈 수 있는 미래는 한정되어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 기죽을 필요도 없지만 내 길이 아니고 내 능력 밖인 영역에 마음을 둘 필요도 없다. 


나는 내가 꿈꾸던 영역인 스타트업 / 교육 / 사회혁신 분야에서 유의미한 혁신을 해내고 있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다른 배경의 사람들에게서 배울 수 있고, 다행히도 좋은 친구들과 가족에게서 절망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고 있다. 오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살 수 있는 방을 구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맘껏 사서 봐도 배고프지 않을 만큼 충분한 월급도 받으며 일한다. 


무엇보다 나는 내 욕망의 종류와 크기를 잘 알고 있다. 결국 사람은 나의 욕망을 타인의 삶과 연결시키는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타인의 삶이 나아지는데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스타트업이건 기술이건 인간의 삶을 개선할 수 없다면 나와는 관계가 없는 동네다. 다만 지금까지는 성장, 행복, 자비를 함께 가져갈 수 있는 곳이 있을지 탐색의 길을 걷고 있을 뿐이다. 


더 버려야 하고, 더 수련해야 한다. 쓸데없는 감정들을 덜어내고 오직 더 자비롭고 역량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일에서 의미만 찾을 수 있다면 내 삶을 반 이상 집어삼키는 종류의 회사도 괜찮다. 어차피 일은 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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