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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벗 Oct 31. 2021

욕망에 몸을 맡기는 방법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알벗님이 오셔서 정말 기뻐요. 빈말처럼 들리겠지만 진심이에요. 


오늘은 연구 프로젝트 관련해 외부 미팅이 있어서 공동대표님과 함께 보낸 시간이 길었다. 회의 전에 잠깐 미팅에 점심 먹고 실제로 미팅 진행 후에 정리하러 다시 함께 앉아 보낸 시간까지, 아마 적어도 세네시간은 같이 보냈다. 입사 후 처음 공동대표님과 길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였다. 


사실 어제는 입사 후 최악의 날이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함께 일하는 '코기'님의 금요일 휴가로 목요일인 어제 함께 월간 회고 시간을 가졌다. 4주에 가까이 일해온 것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보내고 나니, 수많은 프로젝트들 사이에서 옮겨다니며 간신히 수면에 얼굴을 내놓고 숨만 쉬었을 뿐, 진정으로 몰입해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연구원이라기보다는 기획자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고, '없던 것'을 만들고 싶은 사람이다. 그저 그런것을 생산하는 다수의 프로젝트를 순간순간 쳐내며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오늘 공동대표님과의 대화는 나와 함께하게 되어 기쁘다는 말 외에도 지금 나에게 일이 왜 이렇게 쏟아지고 있는지에 대한 맥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다. 자세히 얘기하긴 어렵지만, 모든 문제에는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솔직하고 진솔하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주시는 대표님과 시간을 좀 보내고나니 이해가 갔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퇴근해 집에 돌아오면서 들었던 생각은, 지금까지의 일이 허무하게 느껴졌던 것은 몰입할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결과와는 상관 없이 충분히 몰입할 수 있다면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그런데 몰입할 시간이 부족한 것은 물론이요, 중간관리직이라 계획, 일정, 관리, 정리 등에 시간을 쓰다보니 실제로 내용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다. 


몰입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마음 한켠 안의 그 불편함과 질문이 저녁식사 내내 나를 괴롭혔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와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가 아직 충분히 깨어있지 않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순간 피상적인 경험을 반복하고 있을 뿐, 표피를 뚫고 진정한 어떤 것을 느끼고 있지 못하다. 항상 다음 일, 다른 프로젝트, 남은 단계에 마음을 쓰느라 지금 여기 내가 무엇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알아차리고 있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고, 비는 시간에 조금씩 보고 있는 책들도 그래서 쌓이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아마 아직도 조금 불안하고 조급한 것이 아닐까. 무덤덤한 표면 아래에는 내가 잘 느끼지 못하면서 지혜롭지 못하게 처리하고 있는 부정적인 감정들이 있는 것은 아닌가. 


계속 숨을 알아차리며 명상을 하는 도중 한 순간에 어떤 느낌에 도달했다. 사실 지금 나에겐 자잘한 욕망이나 감정들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다른 팀의 갈등, 리스크로 보이는 팀원의 성격, 부정적으로 받아들일수도 있는 여러가지 요소들, 나이에 비해 성공한 정도에 대한 느낌 등등, 내 마음을 괴롭히도록 두면 정말 끝도 없는 이 모든 것에 나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명상하며 희미하게나마 윤곽이 잡히는 나의 욕망은 사랑이다. 나는 내가 타인과 다른 방식으로, 나다움으로 능력을 증명하며 어떤 공헌을 하고 인정받았을 때 사랑받는다고느끼는 것 같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진심으로 일하기를 원하고,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기를 원한다. 뻔한 것말고 조금 다른 것을 만들었을 때 인정 받는 그 기분이란. 타인의 인정이 아니라도 나 자신이 알 때가 있다. 나는 완전연소했고 남은 재에는 불순물이 없다는 것을. 


일은 내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며,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하는 과정이다. 내 가장 큰 욕망은 사랑이기에, 일을 잘하고 싶은 마음은 내 가장 큰 욕구다. 


어떻게 하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사랑의 욕망에만 충실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일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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