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한 과업에 용기로 다가가는 방법
회사에서 일이 갑자기 몰려 힘들어진 상황, 함께 일하는 '코기'님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대화해봤다.
나: 아마 다른 변수 나올테고 마지막에 스퍼트 내야할 가능성도 있어요. 안된다고 버티는 것도 사실 좋은게 아니라서 해보는데까진 해보는게 좋지 않을까 싶네요.
코기님: 결국 우리 과업이고 해야하는 일이라면 그냥 최선을 다해서 하는게 맞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 이 시간안에 했다라고 보여주는게 우리의 능력을 보여주는 제일 좋은 방법일 것 같습니다.
나: 네 좋아요. 우리가 하면 성과가 나온다는 것을 보여주시죠.
빠르게 과업을 마무리해야 하는 상황인데, 그래도 실질적으로 성과를 내야 하는 팀원들끼리의 마음 정리가 된 상황이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정리가 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불과 한주 전까지만 하더라도 14일 오늘과는 완전히 다른 마음 상태였다. 내가 공유할 수 있는 만큼만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내가 입사하고 어려움을 겪었던 점은, 일의 체계가 잘 잡혀있지 않고, 소통의 채널이나 방식이 즉흥적이고 비효율적인 점이 있으며, 프로젝트의 기대치가 모호하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지난주에는 이미 진행되고 있던 프로젝트의 기대치가 한껏 높아진 것으로 갑자기 설정되고 오랜 시간 관리자와의 면담을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스트레스가 솟구쳤다.
지금 와서는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나는 나름대로 '이 상황이 정상인가?'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정당한가?' '무언가 문제제기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등 수많은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아야 했기 때문에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고 생각한다. 구글과 유튜브 검색, 친구들과의 대화를 통해서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나아갈 힘보다는 이 문제들에 대해 내가 느끼는 감정들이 정당하다는 힌트를 얻었다. 사실 내 입장에서는 '내 평생 이런 대우를 받아본 적이 없는데...' 하며 자존심을 들어 내 감정을 긍정할 수밖에 없는 상횡이기도 했다. 모든 상황에는 그렇게 되도록 작용한 다양한 변수들이 있기에 단순히 '옳다, 그르다'며 규범적으로 판단할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회사에서 일하는 한 명의 노동자에게 주어지는 일과 기대치는 어느 정도 객관적인 수준으로 맞춰지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심지어 지난주에는 계획에 없던 회사 워크숍에 참가가 결정되기도 했다. 내 의지와는 전혀 없이 워크숍 하루 전에 결정된 데다가 한참 감정적으로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에 프로페셔널하지 않은 모습을 상당히 보였던 것 같다. 물론 사람들에게 나의 상황을 모두 이해시킬 수는 없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보이게 정당한 수준으로 표현하고 가능한 한 미래지향적인 방식으로 소통하는 것이 옳다는 점을 배웠다. 어차피 일은 해야 하고 성과도 내야 하며 모든 과정에서 무언가를 배울 수는 있을 것이다. 문제는 노동자가 주도적으로 상황을 받아들이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과정과 구조를 짜주고 마음과 행동을 코칭해주는 역량이다.
결과적으로 스트레스의 원인이었던 워크숍 참가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 회사의 콘텐츠와 전문성, 그리고 실력에 대한 인정을 하게 됐고, 어떤 맥락에서 이러한 체계, 소통, 기대치 등의 문제가 있는지도 조금 더 맥락을 이해하게 된 것 같다.
특히 체계나 소통에 대해서는, 회사의 문화에 따라 '문제'를 정의하는 방식도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세한 부분들이 물론 다 개선될 필요가 있겠지만, 마치 개울가에 모난 돌이 놓여있어도 물은 흐르는 것처럼, 흐름이 만들어져 있다면 일은 흐를 수 있다. 미세조정이 핵심이 아닐 수도 있고,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최우선 과제로 삼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오히려 이번 계기를 통해 '허슬'에 대한 교훈을 얻게 됐다. 올해 초에 일했던 스타트업에서는 이뤄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맨땅에 헤딩하는' 능력을 키웠지만, 성향이 잘 맞지 않는 팀원들과 함께 일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회사를 위해 일을 만들어 주도적으로 공부하고 기획해 결과물을 가져가면, 팀원들은 당황스럽고 '뭐가 너무 많고' '이걸 어떻게 다 할 수 있냐'는 반응을 보였다.
'허슬'은 '목표를 향해 움직이는 결단력'을 뜻한다. 나는 허슬이 '몸으로 살으로' 현실에 부딪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현재 상황이 보다 쉽고 지속 가능한 방법을 주문한다면, 허슬은 반드시 본성을 거스르는 방법을 원하지는 않는다. 다만 허슬은 '작은 고통과 리스크는 오히려 약'이라는 관점에서 목표에 대한 움직임을 바라본다. 나의 컴포트 존(comfort zone)에 머무르지 않고 적절히 새로운 도전을 하되 바로 행동으로 옮겨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핵심이다.
이번 워크숍으로 나는 '내가 다시 너무 안일해지려는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하게 됐다. 회사에서 적당히 일하고 사이드 프로젝트나 네트워킹을 통해 커리어의 새로운 방향이나 기회를 찾아나가는 전략도 분명히 가능하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의 근육'과 전문성이 확보된 입장에서 취할 수 있는 전략이다.
나는 사실상 지금까지 내가 이룬 것은 커리어상 제로에 수렴한다는 관점에서 '허슬의 근육'을 만들어나가야 하는 입장이라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좋은 성과가 나기 때문이 아니다. 허슬의 근육은 계속 키워나가는 것이며, 나의 컴포트 존(comfort zone)의 폭을 넓히고 넓혀 이미 해본 일들은 숙달된 이의 시각과 경험으로 해낼 수 있게 된다.
회사의 꿈을 그대로 받아들여 나의 것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내 꿈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커리어를 정의한다는 개념도 흥미롭다. 한 명의 일하는 사람으로 내가 회사의 비전과 미션을 그대로 완전히 내재화할 필요는 없다. 나의 비전과 미션을 정의하고 회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고민함으로써 오히려 내면의 불을 더 크고 뜨겁게 지필 수 있는 것이다.
전에 '나는 완전연소하고 싶다'라고 쓴 적이 있다. 사실 내가 두려운 것은 아마도 커리어상 발전의 끝이 제한되어있을 수도 있다는 문제가 아니다.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 의해 내 능력과 가능성이 결정되기에, 나중에 그다지 특출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 판명되는 것이 두렵지는 않다. 내가 두려운 것은 애매하게 안주하다가 잠재력을 펼치지 못하는 미래가 오는 것이다.
완전연소하는 허슬이란 어떤 모습일까? 어떻게 내 삶의 모든 영역을 관통하는 하나의 철학을 정립하고 이를 일에도 적용하면서 결단력 있게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어떻게 전략적으로 힘을 아껴야 하는 영역이나 상황에서도 게을러지지 않고 미세하게 전진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