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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벗 Nov 21. 2021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용기

나의 최저점을 돌파한 근육과 기억은 최고의 자산이다

알벗, 난 네가 실제로 겪은 어려운 일을 극복해낸 경험에 기반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의도가 좋은 것 같고, 실제로 도움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의 자리, 근황을 얘기하다가 정신건강의 문제를 겪고 있는 청년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아직 소박하나마 내가 진행해보려고 하는 사이드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고, 친구는 긍정적인 피드백을 줬다. 


다른 글에도 적었지만 나는 내가 '진흙탕에서 피어나고 있는 연꽃'의 사례라고 생각한다. 피어났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부족하지만, 적어도 '마음의 진흙탕'에서 '청정한 마음'의 상태로 가고 있는 여정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사회과학 대학원에서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우울증도 겹쳐 오랜 시간을 방황하며 보냈고, 오랜 고통의 시간을 보낸 후에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일자리 -> 자기효능감 -> 학습욕구 -> 성과로 이어지는 선순환 흐름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 글에서는 최저점에 있었던 나의 기억으로 돌아가보고자 한다.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의 상태에서 파괴적인 습관과 일상에서 한발짝도 걸어나오지 못하는 일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나는 누구에게, 어떤 콘텐츠에서, 어떤 흐름에서 도움을 받았을까?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용기는 어디서 왔던 것일까? 


'나다움'이라는 가능성


사회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힘들고 외로운 상황에서 인간은 움츠러들게 된다. 새롭게 무엇을 배우거나 리스크를 수용하고 프로젝트를 벌일 수 있는 마음의 힘이 없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overcompensate하게 되는데, 이 때 가장 위험한 것이 중독, 투자, 술, 담배, 게임 등 파괴적인 습관으로 흘러가게 되는 일이다. 특히 이전에 즐겼던 중독요소가 있다면 자연스럽게 타개할 수 없는 상황에 부딫치기보다는 이미 익숙한 즐거움(pleasure)의 쳇바퀴로 본인을 몰아넣게 된다. 


이런 쳇바퀴에서 벗어나는 길은, 역설적이게도 파괴적인 습관의 원인과 동일한 지점에 있다. 바로 '나다움'이라는 무한한 가능성이다. 


내가 대학원에서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힘들어 이미 존재하던 사회적 관계망도 망가지고 무언가를 이뤄낼 수 있는 사회적 자원을 잃은 상태였을 때, 그래도 내 일상을 유지하게 해줬던 것은 내가 평생동안 만들어왔던 취미와 습관이었다. 고민이 있을 때 책을 보던 습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미술관이나 영화관에 가서 마음을 의지하던 습관은 내가 가장 힘들었을 때도 유지했었다. 오히려 이때 읽었던 소설이나 접했던 독립영화가 지금도 내 '인생작품'으로 남아있기도 하다는 점은 역설적이다. '난 쓰레기야'라고 파괴적인 생각을 하는 일상에서도 나에게 사유와 문화의 시간과 공간은 있었던 것이다. 


앞길이 전혀 보이지 않는 캄캄한 굴에서 '나다움'의 불씨를 유지해갈 수 있었던 힘이야말로 내가 외부의 자원과 도움을 잡고 나만의 흐름을 만들어갈 수 있었된 최소한의 자원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들로 시간을 보냈기에 최소한의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었고, '나다움'을 채워주는 오아시스가 있었기에 기쁨, 자기효능감, 몰입(flow), 사유 등 지금 나를 이루고 있는 감정 모자이크의 원료들을 유지하고 개발할 수 있었다. 


나에게는 아직도 <벌새>나 <윤희에게>가 인생영화고, <리스본행 야간열차>와 <자기 앞의 생>이 인생 책이며, 힘든 기간을 생각하면 <죽음의 수용소>가 떠오른다. 나의 최저점에도 함께 시간을 보내며 인생, 소설, 영화 이야기를 나누었던 친구와 동료들의 도움이 매우 중요했던 것도 사실이다. 


아마 인간적인 존엄을 유지할 수 있는 일상을 구축하는데 도움이 된 가족과 친구들 덕에 문화생활도 누리고 조금씩 들어오는 긱(gig)워크로 자기효능감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진흙탕에 빠졌을 때 손을 놓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너무 감사하고, 앞으로 평생 갚아야 할 빚이 아닌가 싶다. 


고통의 경험을 동기로 치환하다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온 나는, 물론 여전히 부족하고 때가 많이 묻어있지만, 지속가능한 힘을 얻기 위해서 나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던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마땅한 일자리나 활로가 없어서 고통의 일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분들, 뉴미디어나 교육 분야에서 사수가 없거나 어떻게 학습해야 하는지를 몰라 회사에서 너무나 어렵게 일상을 버티고 계신 분들, 일상을 노력과 악으로 버티고 있지만 '내 커리어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하며 자신만의 동기와 전략을 찾지 못하고 있는 분들 모두에게 내 이야기가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너무 앞선 사람의 도움은, 사실 피부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내가 만약 수년간 취직에 실패한 취준생이라면, 박사학위를 가진 교수님의 공감과 조언이 마음을 울리지 않을 것 같다. 특권을 가진 사람의 말,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 인생을 책으로 배운 사람의 말은 고통의 일상을 겪고 있는 사람의 핵심 동기를 건드리기에는 역부족이다. 


오히려 나같이 진흙탕의 끝자락에서 뒤돌아보며 아직 고통받고 있는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지 않을까? '저도 2년 전에 비슷한 경험을 했어요.' '제가 3개월 전에 구직을 하면서 세웠던 전략과 가설은 이것들이었어요.' '제가 첫 출근날 너무 떨리고 힘들어서 준비한 것들은 다음과 같아요.'하며 부끄러운 속내를 공유하고 오늘 반발짝, 내일 한발짝 나아갈 수 있도록 손잡고 함께해주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어떨까. 


내가 가장 힘들었을 때 고마웠던 손길을 그대로 돌려줄 수 있다면, 내가 받았던 위로나 도움보다도 더 구체적이고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줄 수 있다면?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진흙탕에서 벗어나 고통받는 이들을 돌볼 수 있다면? 


커리어 코칭계에는 오은영 박사님 같은 분이 왜 없을까? 정말 외롭고 힘든 구직, 이직, 그리고 회사라는 현장에서 학습된 무기력과 번아웃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진정으로 손길을 건네는 사람은 왜 없는 것일가? 


이제 정말 첫발을 내딘 커리어 코칭이고, 전문적인 자격이나 실력은 계속 쌓아나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 초심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애초부터 나는 이 사이드 프로젝트로 돈을 크게 벌 생각이 없다. 내 역량이 닿는 선에서 '돌봄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과정에서 최소한의 경제적 반대급부만 얻을 수 있다면 만족할 것 같다. 



일터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돌봄을 얘기했으면 좋겠다(자기계발에서 자기돌봄으로!). 

회사의 성장과 나의 성장이 선순환 구조를 그리는 회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구직과 이직의 진흙탕을 벗어날 수 있는 튼튼한 동아줄이 깔려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인문사회 대학원생들이 사회로 진출할 수 있는 더 튼튼한 경로가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서, 내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더 큰 바람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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