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정리하는 작년의 독서 기록
내가 지금까지 이룬 것이 있다면,
그중 8할은 책 덕분이다.
요즘에는 아침마다 아침 명상을 하는데, 감사한 것으로 자주 고르게 되는 것 중 하나가 '책 읽는 습관'이다. 요즘은 난독에 발췌독에 마구잡이로 책을 사대는 악취미까지 겹쳐져 잡동사니뇌(scatter brain)가 되어 버렸지만, 내 기억에 책을 열심히 읽었던 시기 나는 그래도 행복했었던 것 같다.
내가 가장 책을 열심히 읽었던 시기는 초등학생 시절 매일 마을문고에 들러 세 권씩 빌려왔던 때, 그리고 군대에서 책을 보며 엑셀에 별도로 기록을 남겼던 시절이다. 아쉽게도 군대 시절에 적어놓은 독서노트 엑셀 파일은 어딘가에 남아있지만 비밀번호를 기억하지 못해서 열어보지 못했다. 그 시절에 쓴 일기와 계획표도 모두 남아있는 파일이어서 나에게는 매우 소중한 보물인데도 말이다.
부끄럽지만 군대 시절을 제외하고는 독서노트를 제대로 남겼던 시절은 없는 것 같다. 항상 책을 손에서 놓지는 않았고, 기록을 좋아하는 편이라 지금도 에버노트와 노션에 노트가 쌓여있지만 읽은 책만 제대로 정리해온 기록이 없다는 것은 참 아쉽다. 작년이나 재작년에 정리해서 페이스북에 올렸던 기억은 있다.
2021년이 가버린 지 벌써 2주가 되었지만, 작년 한 해에 내가 읽었던 책을 정리하고자 한다. 이미 일의 관점에서는 회고를 마쳤지만, 내가 만나고 마음을 주었던 책에 대한 기록을 남기며 분명히 얻는 것이 있을 것 같다.
2021년,
나는 어떤 책을 만나서
어떤 작품에 마음을 주었을까?
다음 목록은 정확히 말하면 내가 읽은 책의 목록이 아니라 산 책의 목록이다. 교보문고에서 검색되는 것만 포함됐다. 회사에 신청해서 읽었거나 영어 이북으로 읽은 것들은 별도로 포함했다. 알라딘에서 중고로 산 책들은 포함되지 않았다.
98권. 아마 집을 제대로 뒤지면 더 나올 테지만 파악된 책들만 정리하면 98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물론 이 책들을 모두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것은 아니다. 고백하자면 사놓고 쌓아둔 책들이 아마 더 많을 것이고, 열어본 책들도 발췌해서 읽었거나 다 읽지 못하고 다음 책으로 넘어간 것들이 많을 거다.
그래도 나와 어떻게든 인연을 맺었으니 기록에 남기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1월
<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새의 선물>, 은희경
<팬데믹: 여섯 개의 세계>, 김초엽 외
<연년세세>, 황정은
<소설 보다: 겨울 2020>
<이어령, 80년 생각>
2월
<쌀, 재난, 국가>, 이철승
<2030 축의 전환>
<서울리뷰오브북스 0호>
<BTS 길 위에서>, 홍석경
<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어린이라는 세계>
3월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이븐 쉬나드
<정리하는 뇌>
<지배적 남성성의 균열과 변화하는 남성의 삶: 남성들 내부의 차이를 중심으로>
<테스토스테론 렉스: 남성성 신화의 종말>
<오가닉 미디어>
<Has China Won?>
<문정인의 미래 시나리오>
<난생처음 토론수업>, 이주승
4월
<제12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
<로지 브라이도티, 포스트휴먼>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 김현미
<한나 아렌트: 어두운 시대의 삶>
<클라라와 태양>
<왜 세계사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는가>
6월
<K를 생각한다>
<아몬드>
<지적자본론>
<우리의 뇌는 어떻게 배우는가>
<삶의로서의 일>
7월
<기획자의 습관>
<프로덕트 오너>
<The Power of Now>
<나는 어디에 있는가?>
8월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강상중
<독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야마구치 슈
<How To 맥킨지 문제 해결의 기술>
<인정>, 악셀 호네트
<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
9월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놓아버림>, 데이비드 호킨스
<기획자의 일>, 양은우
<돌봄 선언>
<소비의 사회>
<자아 연출의 사회학>
<사회적 가치 비즈니스>
10월
<돈이 먼저 움직인다>
<Why, YC>
<트렌드 코리아 2022>
<코칭 리더십>
<바바라 민토, 논리의 기술>
<조직문화 재구성, 개인주의 공동체를 꿈꾸다>
<세계의 리더들은 왜 직감을 단련하는가>
<미치게 만드는 브랜드>
<일기>, 황정은
<생각의 쓰임>, 생각노트
<스스로 행복하라>, 틱낫한
<오픈 이노베이션>
<승려와 수수께끼>
<오리지널스>
<사회혁신이란 무엇이며 왜 필요하며 어떻게 추진하는가>
11월
<무엇이 삶을 예술로 만드는가>
<제로 투 원>
<손정의 300년 왕국의 야망>
<지구 끝의 온실>
<카테고리 킹>
<시스템 사고로 경영하라>
<기획자가 일 잘하는 법>
<하드씽>
<리추얼의 종말>, 한병철
<생각의 기쁨>, 유병욱
<언플래트닝, 생각의 형태>
<매거진B No. 83: Youtube>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DIY 툴킷>
12월
<가르칠 수 있는 용기>
<경영전략 매뉴얼>
<긴긴밤>
<리더 디퍼런트>, 사이먼 사이넥
<스타트 위드 와이>, 사이먼 사이넥
<비범한 정신의 코드를 해킹하다>, 비셴 락히아니
<켄 윌버의 통합비전>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 찰스 부코스키
<위대한 작가가 되는 법>, 찰스 부코스키
<켄 윌버의 통합명상>
<최강의 단식>
<초역 니체의 말>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성공은 당신 것>, 데이비드 호킨스
<강점 발견>
<뉴욕타임스 편집장의 글을 잘 쓰는 법>
<아이디오는 어떻게 디자인하는가: 스탠퍼드 디스쿨 창조성 수업>
<인지니어스>
별도
<린스타트업>
<The Buddha and the Badass>, Vishen Lakhiani
간단히 정리한 책 목록을 보며 드는 생각은 다음과 같다.
- 월별로 정리되어 있어 해당 시기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보여줄 수 있는 자료가 된다.
- 취미로 읽은 책, 일터에서 필요한 도메인 지식을 파악하기 위해 발췌독한 책 등 종류가 다양하다.
- 욕심으로 사두고 쌓아둔 책이 너무 많다. 이 책들은 앞으로 해당 도메인 지식이 필요할 때까지 내 책장에서 기다려줄 예정이다. 물론 집을 옮겨 다니며 책이 소실되거나 이미 샀던 책을 알고 보니 또 사버린 일이 종종 생기기도 한다.
- 취미로 읽는 문학작품의 수가 급격하게 줄었다. 일에 치이다 보니 필요한 도메인 지식의 범위가 넓어졌고, 아무래도 폭넓게 책 읽기가 힘들어진 것 같다. 단기적인 관점에서는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폭넓은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넓게 읽기'는 반드시 필요하다.
올해는 어떤 책들을 만나게 될까?
독서에 별다른 계획을 세우지 않는 나로서는 올해에도 별다른 계획을 세울 생각은 아직 없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드는 생각들은 다음과 같다.
- 필요한 책, 참고할만한 책보다는 '읽고 싶은 책'을 더 많이 만나고 싶다. 두세 번 읽어도 아깝지 않은 책을 만나기 위해서는 책을 충동구매하기 전에 1분간 생각해보는 습관을 들여보면 어떨까? 질문과 문제의식을 조금 더 뾰족하게 잡아 기록한 후에 책을 고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지금 내가 파고들어 답을 찾고 싶은 문제는 어떤 것인가?
- 적당한 난이도의 책을 정독하며 얻는 기쁨을 다시 누리고 싶다.
- 문장이 좋은 책, 필사해도 좋은 책을 더 많이 만나고 싶다. 일하는 사람은 비즈니스의 언어, 타인의 언어에 자신의 세계를 빼앗기기가 너무 쉽다. 언어의 빈곤은 곧 삶의 빈곤으로 이어진다. 일이 아니라면 상상하고 설계하고 기획할 것이 없거나, 비즈니스의 언어 외에 자신의 언어를 가지지 못한 사람을 멋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 계속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몇 개 분야는 책을 고르고 골라 정독하고 모임에서 활용하거나 독후감을 정리하고 싶다. 사회과학 고전, 철학, 문학, 페미니즘과 남성성 연구, 경제 등이 이에 포함될 것 같다. 관심분야를 포함하면 끝도 없겠지만 가장 욕심을 가진 것은 사회과학 고전이다. 피상적인 경제경영서가 가지지 못한 깊이와 사유의 힘을 가진 책들, 수십 년 수백 년을 넘어 이론, 사상, 프레임워크, 개념, 지혜를 전해주는 책이 너무나 그립다.
- 노션에 독서 트래킹 시스템을 구축하고, 블로그나 SNS에 짧게라도 인상적인 문구나 감상을 정리하는 습관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기록하지 않은 것은 휘발한다.
- 각 분야에 씽킹 파트너가 있으면 좋겠다. 내가 계속 읽어나가고 싶은 분야는 홀로 달려들기에 무리이거나 벅찬 책들도 많다. 사회과학, 철학, 페미니즘과 남성성 등은 치열하게 고민하고 언어와 소통 방식에 예민하며 자신의 생각을 하고자 노력하는 파트너가 특히 더 필요한 분야다.
- 트레바리를 나가보니 일반 직장인 대상의 책모임은 말하자면 수다모임인 것 같다. 해당 분야에 입문하고 네트워킹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는 좋은데, 진지하게 고민을 이어가기 위해서라면 힘이 좀 빠지는 느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