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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chemion Nov 21. 2024

신발의 철학

02. 신경 시스템의 퇴화는 척추의 변형으로부터 시작된다.

  고무깔창이 있는 신발을 신다가 갑작스럽게 신발의 굽이 거의 없는 신발을 신게 되면, 지금까지 내 신발이 얼마나 편안한 곳에서 생활했는 지를 몸소 느끼게 된다. 발바닥이 제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항상 고무깔창에 의존해서 걸었던 발은 그 신경 시스템이 완전히 유아기 시절로 돌아간 것과 다름없었다. 발의 신경들이 다시금 온전하게 체중을 견딜 정도로 강화되기 위해서 혹독한 인내와 고통의 시기를 겪어야만 했다. 물론 되돌아보면 의미 있는 고통이었고, 그 고통의 시기를 겪고 난 뒤에는 한 층 더 강해진 생명력을 얻을 수 있었다.


 처음으로 답답하게 숨을 조여오던 현대의 신발을 벗어던지고, 맨발에 가까운 신발을 신었을 때에 느낌은 무척이나 생소하고 이질적이었다. 마치 다른 세계와 와있는 듯한 느낌을 전해주었는데, 이는 지금까지 현대의 신발에 너무나도 발이 길들여져 있는 탓이 한몫을 한 것 같다. 두 발이 완전히 대지에 밀착되어 있어서 흔들리지 않는 기반 위에 서 있었기 때문에 지면과 완전히 발이 맞닿아 있는 느낌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안정감을 가져다주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는데, 단순히 서 있을 때에는 상관이 없었지만 20~30분 정도 걷고 나면 발바닥과 발목이 너무 아팠다. 가뜩이나 과체중인 몸을 이끌고서 딱딱한 바닥 위를 걸으니 신경계가 퇴화된 상태의 발이 견디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맨발에 가까운 신발에 적응하는 데에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렇게 맨발에 가까운 신발을 신고 나서 몇 개월이 지난 후에 갑작스레 현대의 신발을 다시 신어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비가 너무나 많이 내리는 장마 시즌이라서 방수가 안 되는 그 신발을 벗어던지고, 현대의 신발을 어쩔 수 없이 신게 되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이상함을 못 느꼈다. 하지만 몇 분 정도 걸음을 옮기니까 뭔가 붕 떠있는 느낌이 들었고, 즉각적으로 허리나 척추에 부담이 간다는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이건 맨발에 가까운 신발을 어느 정도 신어본 사람들만이 알 수 있다. 척추가 안정적인 지지대를 상실했을 때의 느낌은 불안정한 마음과 더불어 신체의 적지 않은 불편함이다. 척추의 변형과 뒤틀림이 현대의 신발을 신음으로써 일어난다는 사실에 눈을 뜨게 된 순간이다.


 발바닥과 연결되어 있는 신경 시스템들이 현대의 신발을 착용함으로써 제 기능을 상실함에 따라 신경계의 약화를 불러왔고, 이는 점진적으로 우리들이 골반에서부터 척추 윗부분에 이르기까지 변형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지 못하게 만드는 원흉으로 작용한다. 척추 안의 척수 신경은 우리 몸의 모든 장기의 기능이 원활하게 작동하는 데에 직접적인 관여를 하고 있으며, 이 신경들이 활성화되는 출발점이 바로 발바닥의 반사구다. 발바닥이 체중에 따르는 자극을 고무깔창과 나누어 갖게 됨으로써 우리 인체 전반의 신경 시스템은 약화되고 퇴화되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우리들은 서서히 골반과 척추가 원래의 상태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음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모든 장기 기능이 약화되고, 신경 시스템이 제 기능을 상실하면 건강과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두 말하면 입이 아픈 소리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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