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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chemion Dec 17. 2024

나는 매일 밤 죽으러 간다.

죽음에 관한 소고 4



 죽음에 관한 네 번째, 짤막한 소고 시작합니다. 모두 착석해 주세요~





 우리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나라는 존재가 이 세상 속에 사라질지 모른다는 막연한 추측에 근거한다. 육체적 형상과 그 형상에 수반되는 생각과 감정, 그리고 '나'를 구성하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신념, 관계, 문화적 관습, 사회적 규범 등을 고정불변의 진실이라고 받아들임에 따라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은연중에 키워간다. 그 모두는 형상의 소멸과 함께 사라질 수밖에 없는 덧없고 유한한 것에 지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결코 나라는 존재를 구성하는 것들을 내려놓지 않는다. 그것들이 나라는 존재의 사라짐과 함께 다 떠나는 것에 지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낮동안 세상 속으로 돌아다니느라 바쁘고 피로한 형상이 다시금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죽음을 맞이하러 가야 한다. 우리들은 매일 잠과 함께 사라질 것들을 기어코 붙잡고서 나라는 존재가 세상 속에 있다는 자기 확신을 얻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태어남도 들은 것이며 죽음도 외부로부터 전해들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일체가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에 불과하다면, '결국 남는 것은 나라는 존재를 구성하고 있는 것들의 기반이자 토대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으로부터 일체가 시작되었고 세상이 내 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내가 있다는 느낌 혹은 내가 존재한다는 알아차림과 함께 삶의 드라마가 전개된다. 그 깨어남은 나라는 존재가 의식적으로 한 것이 아니고, 그저 아무 이유 없이 일어난다. 잠드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삶은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저 흘러갈 뿐이고, 나라는 존재가 의식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자기 자신이 육체적 형상이라는 착각 속에서 우리들은 세상 안에서 벌어지는 일에 행위의 주체가 나라는 환상에 단단히 사로잡혀 있다. 육체적 형상이 잠에서 깨어나서 움직이지 전에, 찰나의 순간이지만 내가 있다는 느낌이 나타나고 그 후에 형상을 붙듦으로써 삶이라는 기나긴 꿈의 행렬이 시작된다. 지금 이 순간, 어젯밤 꾸었던 꿈 속의 '나'는 사라졌다. 현재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나' 또한 최종적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일체가 유한하고 덧없는 것이라면, 그 유한하고 덧없음을 알고 있는 '그것'은 무엇인가? 



   "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기 위하여, 나는 오늘도 죽으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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