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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chemion Dec 17. 2024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아.

죽음에 관한 소고 5

 



  

 죽음에 관한 다섯 번째 소고입니다. 깊이 음미하면서 즐겨주세요~





 영과의 소통이 단절된 상태에서 일어나는 물질적 체험에 대한 맹목적인 찬양은 그 어떠한 제한과 규정, 그리고 정의도 받아들이지 않는 생명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그릇된 욕망으로부터 비롯된다. 자연과의 조화와 상생을 추구하지 않고, 자연을 지배하려는 야심이 결국은 스스로가 만든 함정에 자기 자신이 걸리는 자가당착에 빠지게 만들었다. 시대적으로 만연한 여성 호르몬의 과다 현상은 결국 정신 내의 남성성과 여성성의 불균형으로부터 일어나며, 이는 미지의 것을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 신성한 지혜의 안배가 사라진 탓이다. 생명의 본질을 결코 알 수 없는 이유는 생명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계속해서 알 수 없는 느낌을 전달받기 때문이다. 무의식의 심연은 온통 어둠으로 휩싸여 있으며, 의식적으로 도저히 파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알 수 없는 느낌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생명의 본질은 알 수 없기 때문에 기적일 수 있는 것이며, 그 신비가 품고 있는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는 것이다. 스스로가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 최고의 앎인 이유는 이러한 앎이 생명의 본질에 의식적으로 가장 가까이 접근했을 때에 얻어질 수 있는 통찰이기 때문이다. 내면으로 깊이 침잠해 들어가 스스로에 대해 알려고 하면 알수록 더욱 알 수 없는 느낌만 짙어질 뿐이다. 스스로에 대해서도 알 수 없고, 스스로가 무엇을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을 때, 우리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된다. 삶의 이유와 목적이 사라지면서 있는 그 자리에 멈추어 설 수밖에 없을 때, 지금까지 밖으로 줄기차게 새어나가던 에너지가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생명의 원리는 삶을 통해 노력하고 애쓰지 않을 때, 삶이 더 자연스럽고 유연하게 흘러간다는 가르침을 전해준다. 물론 가르침이 다가오기 전까지 스스로가 알지 못한다는 것을 겸허히 인정해야 하지만 말이다. '죽고자 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은 생명의 본질이 담고 있는 역설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생명의 원리를 담고 있고, 생명을 표현하고 있는 삶에서 중요한 건, 언제나 균형과 조화다. 생명의 유지는 균형과 조화가 어우러질 때야 비로소 최상의 상태로 솟아오른다. 우리들은 조화와 균형 안에서 육체와 영혼이 본래 분리된 적이 없었던 하나임을 알아차린다. 인간의 형상을 최고의 지위로 올리는 일은 육체 안에 담겨 있는 신의 형상을 복원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수순이다. 영과 육이 분리되지 않고, 구분 없는 하나 없는 하나로 통합되어 있는 마음은 더 이상 외부 대상을 쫓지 않는다. 왜냐하면 일체와 하나 됨을 느끼는 마음은 더 이상 결핍과 부족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을 지지하고 북돋아주는 생각은 상위 내분비샘을 활성화시킴으로써 의지를 고취시키고 고양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신의 의도와 나란히 정렬되어 있는 생각은 매 순간 진행되는 우주와의 교감으로부터 좋은 느낌을 안김당한다. 수승한 기운이 전신을 에워쌈에 따라 저절로 드넓은 하늘로 시선이 옮겨지고, 만물을 환히 비추는 따사로운 햇빛에 한없는 감사함을 느낀다. 



 "'사람은 음식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비밀을 품고 있는 신성한 말씀으로 살아간다'는 구절이 마음 깊이 와닿을 때, 전 우주의 섭리를 주관하는 로고스가 삶을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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