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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chemion Dec 17. 2024

넌 살아 숨 쉬는 기쁨을 아니?

죽음에 관한 소고 6

 




 죽음에 관한 여섯 번째 소고 들어갑니다. 쓰다 보니 오늘은 조금 글이 길어졌네요. 마음으로 글을 상상하면서 읽으면 더 도움이 되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여러분도 살아 숨 쉬는 기쁨을 누리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감사합니다.




  처음에는 왠지 모를 답답함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육체적 형상이라는 작은 틀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은 언제나 드넓고 거대하며, 헤아릴 수 없는 공간을 가지고 있어 그 광활함 앞에서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고는 한다. 문명과 사회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사회적 규범과 법이라는 테두리는 넘어서는 안될 선이 있는 것을 암묵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것들은 인간 안에 있는 동물적 본능에 대한 경계심으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차츰 억압과 제한으로 받아들여짐으로써 서서히 일상 전반에 걸쳐서 숨통을 조여 오는 압박감으로 다가온다.




  형상에 갇혀 있는 마음은 세상 속에서 늘 다채롭고 새로운 느낌을 가져다주는 외부의 체험을 갈구한다. 거대하고 드넓은 세상은 평생을 다 바치더라도 체험을 다 못할 정도로 다양한 사회와 문화의 근거지다. 세상과 따로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육체적 형상에서 바라본 세상은 미지의 것을 향한 호기심과 탐험에 대한 열정을 자극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세상에 대한 지평이 조금씩 넓어질 때마다 세상의 광활함 앞에서 육체적 형상은 무척 왜소하고 볼품없어 보인다. 마음은 세상과의 단절 속에서 늘 새로운 체험이 가져다주는 잠깐의 충만함 속에서 위안을 찾아 헤맨다. 잠깐이나마 세상과의 단절이 연결된 듯한 느낌을 받고 나면, 어느 정도 삶을 이어나갈 수 있는 힘을 얻어간다. 그렇게 삶은 더 나은 내일을 향해 끝없이 달려가야만 하는 열정의 마라톤이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 매일 먹는 식사처럼 마음의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서 우리들은 다채로운 경험을 안겨주는 여행과 모험에 매료된다.





  젊음이 가져다주는 기력이 쇠함과 동시에 노화가 진행되기 시작하면, 우리들은 심리적 안전지대에 머무른다. 익숙한 것이 편안하고, 나 한 사람의 건강을 챙기기에도 여념이 없다. 삶의 정형화된 패턴 속에서 원래 삶이 그런 것이라는 넋두리를 건네며, 서로가 서로에게 위안과 체념 섞인 말들을 주고받는다. 형상이라는 제한적 신념을 받아들인 결과, 우리들은 삶이 아닌 죽음의 길로 서서히 스스로를 몰아붙인다. 노화는 당연한 것이며, 마음은 더 이상 삶에서 발견할 수 있는 새로운 것들은 없다고 스스로를 설득시킨다. 합리화라는 핑계 하에 우리들은 반복된 일상이 가져다주는 지루함과 권태 속에서 하루하루 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걸어 다니는 시체'다. 영과 혼이 완전히 빠져나가버린 오로지 육만이 있는 세상 속에서 삶은 본연의 생기와 활력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마음이 육체적 형상이 아닌 영을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는 거기에 바로 삶이 있기 때문이다. 삶은 지금 이 순간 생생히 살아 숨 쉬는 기쁨에 취하는 것이며, 마음은 완전한 충만함 속에서 삶을 마감하기 전까지 욕망의 끈을 절대로 놓지 않을 것이기에 우리들은 삶이 무엇인지 온전히 느껴야 한다. 들숨과 날숨의 순환 속에서 깊은 호흡과 함께 동반되는 일시적인 호흡의 멈춤 즉, '극적인 순간'은 찰나의 순간동안 뇌로 가는 산소를 완전히 차단한다. 생리학적으로 뇌 세포의 활동이 멈춤과 동시에 우리들이 육체적 형상이라고 붙들고 있는 자아가 스위치 오프된다. 머리에 찌릿찌릿한 전류가 흐르는 느낌과 함께 일어나는 일시적인 자아의 죽음은 마음이 육체적 형상이 아닌 영에 눈을 뜨게 만드는 직관적 앎을 가져다준다. 극적 순간의 일말은 단 한 번일지라도 삶 속에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기억의 각인으로 자리매김하여 잃어버린 영의 존재를 찾도록 만든다.


 


 

 세상을 창조하고 만들어낸 원인이자 주체를 발견하는 일은 광활하고 드넓은 세상과 분리되어 있는 육체적 형상을 하나로 연결해 준다. 창조의 수순을 거꾸로 역행함으로써 우리들은 지상에서 하늘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음이 육이 아닌 영에게로 완전히 돌아서서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고 낮출 때, 다름을 받아들일 때마다 나라고 인식되는 영역이 점진적으로 확장된다. 육체적 형상의 한계와 제약을 깨뜨리는 직관적 앎이 다가올 때마다 전적인 이완 속에서 온몸이 생명 에너지로 가득 채워진다. 세상을 향해 완전히 열려있는 마음은 호흡 안에 담겨 있는 삶의 정수, 생생히 살아 숨 쉬는 기쁨에 흠뻑 취한다. 나라는 존재를 완전히 내려놓은 마음은 매 순간의 호흡이 생명의 바다를 넘실거리는 충만함의 파도로서 다가오므로 온 몸을 감동의 전율로 떨리게 한다. 이제야 본래의 주인을 되찾은 형상은 신이 거주하는 성전으로서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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