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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chemion Dec 18. 2024

오늘 하루는 무슨 연기를 했니?

죽음에 관한 소고 7

  


 

 죽음에 관한 소고 일곱 번째 시작합니다. 오늘은 조금 흥미로운 주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들 모두는 삶에서 각자가 주어진 역할에 충실히 임하고 있는 배우다. 삶이라는 무대 안에서 시간의 변천사에 따라 때로는 선생님의 역할을, 때로는 아들의 역할을, 때로는 어머니의 역할을, 때로는 딸의 역할을, 때로는 이모와 삼촌의 역할을, 때로는 아버지의 역할을, 때로는 직장 상사의 역할을, 때로는 신입의 역할을 한다. 직책이나 지위는 일시적으로 주어지고, 잠깐 거쳐가는 삶의 역할놀이의 일부다. 고정되지 않고, 늘 변화무쌍하게 흘러가는 삶의 흐름 속에서 우리들은 모두 저마다의 연기를 착실히 수행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저마다 자기 자신이 만들어낸 우주 안에서 최고의 통치자로서 우주를 경영하는 임무에 모두가 한마음으로 움직인다. 그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다름 아닌 삶을 향한 사랑이다. 그 표현 방식은 저마다 다르게 나타나더라도 결국 그 원동력이 되는 힘의 근간은 동일하다. 




  희로애락의 감정은 삶의 역할 놀이에 더욱 생동감 있고,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요소다.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해 몰입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상황에 몰입함과 동시에 그에 따르는 감정들이 우후죽순 솟아난다. 감정은 삶이 생생히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현장감을 불어넣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요소다. 너무 삶에 빠져들어서 감정을 제대로 컨트롤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면, 잠시 한 발짝 물러나서 삶을 재조명하는 것도 중요하다. 삶이라는 무대 안에서 펼쳐지는 역할극이라는 것을 알아차림으로써 우리들은 삶을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모든 행위와 생각의 주체가 나라는 사실을 자각하면서 삶을 향한 과도한 기대와 욕망을 내려놓고 유유히 삶을 향유할 수 있는 지혜를 얻어간다.




 보편적 의식으로서 현현하는 영으로서의 '나'는 온 우주의 나 아닌 것을 발견할 수 없다. 모두 내가 한다만이 유일무이한 진실 속에서 둘로 나누어질 수 없는 하나가 하는 역할극은 양자장 속에서는 오직 내가 관찰하고 본 것만이 세계를 이루고 있다는 진실을 넌지시 알려준다. 내가 인식하지 않을 때에는 파동으로, 인식할 때에는 물질로 나타나는 현상은 빛과 물질이 동일한 것을 부르는 서로 다른 표현임을 깨닫게 한다. 이는 영과 육이 분리될 수 없는 하나로서 주체가 지니고 있는 의도와 동기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현실이 펼쳐지는 우주의 신비를 내포하고 있다. 양자장 속에서 나는 눈을 돌리는 곳마다 세계가 갑작스레 창조되는 기적을 맛본다. 일순간 세계가 탄생하고 소멸되는 지점에서 바라본 세상은 나로부터 방사되는 빛이 세상을 창조하는 제1원인임을 직관적으로 알아차리도록 만든다. 모두가 '나'인 세상에서는 무엇을 증명할 것도, 책임질 것도, 탐구할 것도 없다. 주체가 하나이므로 그저 존재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마음속에서 소유를 향한 욕망과 함께 삶에 대한 집착과 미련이 솟아나는 이유는 인식 안에 '나' 아닌 다른 것이 있다고 상상하기 때문이다. 세상 속에서 나 아닌 다른 것이 있다고 인식하는 순간부터 자라나는 결핍과 부족의 감정은 외부의 대상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을 일으킨다. 자기 자신 안에 있지 않은 것을 소유함으로써 그 결핍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심리는 애초부터 실상을 잘못 파악한 것이기 때문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중요한 건 실상을 올바르게 보는 것, 다시 말해 나 아닌 것이 없는 세상을 보는 진실된 자각의 시선이다. 안과 밖을 구분 짓지 않고, 완전히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마음은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왜냐하면 온 세상이 내 안에 있기 때문에 '풍요와 부'라는 개념자체가 무의미한 것을 안다. 욕망으로 막혀 있었던 댐이 완전히 뚫림으로써 나라는 존재가 가지고 있는 위대함과 전지전능함에 눈을 뜨게 된다. 세상 속 일체가 나라는 존재에 의존하고 있다는 진실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이미 마음은 무한함이 가져다주는 충만함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무한함을 마주하는 순간, 마음은 소유를 갈구하는 것이 얼마나 미련하고 어이없는 일인지 깨닫는다. 만물이 자각의 빛으로 보편적 의식의 품에 한아름 안길 때, 내가 바로 삶이고 삶이 바로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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