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무위
산책을 한다는 건 단순한 발걸음 이상의 의미가 있다.
사색할 수 있는 시간, 잠시 나만의 세계에 몰입할 수 있는 순간들.
그런데 오늘, 나의 평화로운 산책은 생각할 여지가 없다.
왜냐면 아내의 잔소리가 내 사색의 세계를 강제로 시장으로 밀어버렸기 때문이다.
한없이 느긋한 일요일 아침, 아내의 목소리가 거실을 울렸다.
“여보, 장 좀 봐요!” 이미 지배적인 그 한 마디가 공기를 무겁게 장악한다.
나는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사실 조금 전까지는 아주 완벽한 아침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말이다.
다리를 뻗고, 조용히 책을 읽으며 “이것이 진정한 무위자연이다”라고 나에게 속삭이는 중이었다.
하지만, “배추 두 포기, 생선 한 마리, 그리고 라임 몇 개!” 이 명령이 떨어진 순간, 내 무위자연의 상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내의 잔소리는 장자도 해결할 수 없는 막강한 자연의 법칙과도 같다.
내가 그 잔소리를 피하려는 시도는 이미 오래전에 무너졌고, 자연의 흐름대로 나는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으로 향했다.
도시의 심장은 어디서 뛰는걸가? 활력이 넘치는 시장이 아닐까?
마냥 즐거울리 없는 상황이지만 활기찬 시장에서 에너지를 받아보겠다는 마음으로 걷는다.
시장을 향한 길에서, 나는 장자의 가르침을 떠올린다.
“자연은 스스로 이루어진다. 억지로 하려 하지 말라.”
그렇다. 나는 이미 아내라는 자연의 일부와 함께 살고 있다.
아내의 잔소리는 단순한 푸념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주의 이치였고, 나는 그 흐름에 저항할 수 없는 존재다.
한 가지는 확실했다.
아내의 명령은 그 자체로 자연의 법칙과 같다.
'배추 두 포기, 생선 한 마리, 그리고 라임 몇 개'라는 명령은 마치 우주가 돌아가는 규칙처럼 나를 시장으로 내몰았다. 나는 ‘도망’이라는 개념을 생각했지만, 아내의 잔소리를 뒤로한 도망이란 곧 평화의 붕괴를 의미했다.
장자가 내 옆에 있었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자연의 흐름에 역행하지 말라. 그저 그 흐름을 따라가라.”
결국 내 두다리는 그 흐름에 따라 걷고 있다.
시장으로 가는 길이 곧 우주의 섭리였다.
그 섭리 앞에 중년 남자의 체면을 세우려는 몸부림은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었다.
“배추를 사야 한다면, 사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하며 산책 아닌 산책을 한다.
시장에 도착하니, 그야말로 장자가 말한 “혼돈 속의 질서”가 펼쳐진다.
상인들이 소리치고, 물건들이 여기저기 쌓여 있고, 사람들이 서로를 지나치며 물건을 쥐고 흥정을 벌인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장을 보러 시장에 와 있다.
과거의 나를 생각해 보라. 젊었을 때는 절대 혼자 장을 보러 오지 않았을 그 자존심 강한 내가, 이 시끌벅적한 시장 한복판에서 배추를 고르고 있다!
상인이 나를 보며 씩 웃었다. “배추가 아주 싱싱해요! 두 포기만 사가세요!”
그 순간 나의 자존심은 배추잎처럼 한 장, 한 장 벗겨지고 있었다.
'이게 다 아내의 성화 때문이야.' 그렇다. 아내의 잔소리가 없었다면 나는 지금 책상 앞에 앉아 커피를 홀짝 거리며 책을 읽고 있었을 텐데, 이 무질서 속에서 배추를 들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는 말문이 막혔다.
이쯤 되니 장자가 말한 무위자연은 사실 아내의 뜻을 따르는 것과 같은 말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배추를 고르려 하지 마라. 배추가 너를 고를 것이다.”
장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르는 척했지만 사실은 이미 아내가 내 손으로 고를 배추를 정해둔 것 같았다.
배추와 생선을 사고 나니, 이제 라임을 사야 할 차례다. 라임을 고르는 일은 간단하다.
시장 한 구석에 라임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나는 상인의 설명 따윈 듣지 않고 그냥 몇 개 집어 들었다.
내 생각에, 이쯤 되면 자유 의지가 있든 없든 그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모든 것이 이미 아내의 계획 아래에 있었던 것이다.
사실 나는 장자 철학을 통해 삶의 진리를 배운다.
억지로 이루려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저절로 흘러간다는 진리 말이다.
그런데 이 진리가 현실에서는 “아내가 말한 대로 하면 모든 것이 평화롭게 끝난다.”라는 것으로 변형된다.
아내가 지정한 장보기 목록은 그대로 따랐을 때 비로소 무위자연이 이루어졌다. 그게 바로 가정의 평화법칙이었다.
장을 다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스스로에게 다시 물었다.
“오늘 내가 배운 것이 무엇인가?” 철학적 결론을 얻은 것은 분명했다.
장자의 가르침이 내 삶에 적용된다는 것을 배웠고, 억지로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저절로 흘러간다는 것도 깨달았다. 아내의 명령에 저항하지 않고, 자연스레 그 흐름에 따르니 배추와 생선, 라임은 모두 제자리에 도착했고, 나도 마침내 임무를 완수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내가 이 시장이라는 혼돈 속에 다시 오고 싶을까?
장자의 철학이 아무리 훌륭하고 무위자연이 나를 배추와 연결해 준다 해도, 이 혼란스러운 시장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기고 싶지는 않다. 철학적 깨달음이 얻어지는 장소가 반드시 매력적일 필요도 시장일 필요도 없다.
“시장, 그건 한 번이면 충분하다. 나는 배추를 다시 고르고 싶지 않다.”
장자는 시장의 자연스러움 속에서 나를 깨우쳐주었지만, 나는 아내의 잔소리 속에서 철학을 완성한다.
다음번에 아내가 "장 좀 봐!"라고 할 때 나는 장자의 가르침을 또 다시 실천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살짝 나는 장자의 사상에 비틀어본다.
'무위란, 때론 내가 다시 시장에 가지 않도록 적당한 핑계를 찾는 것이다.'라고.
무위자연은 좋다. 그러나 시장은 한 번이면 족하다. 다음엔 배달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