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자. 산책 시간이다.
도시의 복잡한 소음을 뒤로 하고, 잠시나마 자연과 소통할 시간이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그 안에서 나만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소중한 순간이기도 하다.
두 다리가 자유를 갈망하고 있다. 그런데 그 전에 하나 챙겨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스마트폰이다!
산책할 때는 디지털 디톡스 해야 한다며? 라는 질문이 고막을 파고 드는 것 같다.
맞다. 나도 이전 글들에서 스마트폰 좀 쉬게 내버려두라고 잔소리했던 것이 기억난다.
하지만 한 가지 변명 같은 이유를 대자면, 요즘 스마트폰에 장착된 카메라의 성능은 좋다. 좋아도 너무 좋다.
주머니 속에서 쏙 꺼내서, 손가락 한 번의 터치로 세상의 한 장면을 멋지게 포착할 수 있는 마법같다.
그렇다. 산책 중에 나는 사진을 찍는다.
그런데 왜 나는 사진을 찍는 걸까?
이상한 질문이다. 거의 모든 스마트폰에는 어김없이 카메라가 달려있고 언제든 누구든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그런데 왜 사진을 찍냐고?
그건 아마도 기억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사실 사진은 기억보다 기록에 가깝다. 하지만 기록 이상의 기억을 제공한다.
글쓰기와 사진찍기는 매우 닮아있다.
둘 다 무엇인가를 기록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글쓰기와 사진찍기, 둘 다 특정한 순간을 포착하고 그것을 영구히 보존하려는 욕망에서 출발한다.
인터넷을 검색하거나 서점에서 사진 관련 책을 보면 "이렇게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수많은 가이드로 넘쳐난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그 방법을 따라 한다고 해서 늘 마음에 드는 사진을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는 사실이다.
아는 것과 결과는 언제나 다르다. 사진은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닌지도 모른다.
우리가 놓치는 것이 있다.
글쓰기가 단순히 쓰는 법이나 문법을 배웠다고 해서 좋은 글을 쓸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사진도 단순히 카메라 조작법을 익혔다고 좋은 사진을 찍게 되는 것은 아니다.
좋은 글을 쓰려면, 우선 좋은 글을 많이 읽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좋은 사진을 찍으려면, 좋은 사진을 많이 봐야 한다.
외젠 아제, 앨프리드 스티글리츠, 아우구스트 잔더, 에드워드 웨스턴, 로버트 카파,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로버트 프랭크 등 사진 역사를 빛낸 거장들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분명 도움이 된다.
그들의 작품 속에는 사진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가득하다.
비싼 만년필을 산다고 해서 멋진 소설을 쓰게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좋은 장비가 멋진 사진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다. 결국 사진도 글처럼, 사람이 직접 기록해야 한다.
그 사람의 관점이 담겨 있어야 비로소 가치가 생긴다.
연필 한자루로 시를 쓸 수도 있고, 소설을 쓸 수도 있다.
같은 도구를 사용하더라도 작가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온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똑같은 카메라로 찍더라도, 찍는 사람에 따라 작품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찍은 사진이라도 누군가는 풍경을, 누군가는 인물을, 또 다른 누군가는 그림자를 강조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무엇을 찍을 것인가’와 ‘어떻게 찍을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을 피하지 않고 직면할 때, 사진 찍기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
사진은 장비가 아니라 관점에서 나온다.
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어떻게 찍느냐, 즉 '관찰'에 있다.
사진을 찍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
카메라를 들어 피사체를 겨누는 것? 아니면 셔터를 누르는 일?
아니, 그보다 더 먼저 해야 할 일은 관찰이다.
사진은 단순히 카메라의 기술적 성능이나 손가락 하나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물을 보고, 느끼고,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과정을 요구한다.
사진을 잘 찍기 위한 첫 걸음은 눈앞에 펼쳐진 세상을 온전히 관찰하는 것이다.
철학자 존 러스킨은 "관찰은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진 촬영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눈으로 대상을 보는 것이 아니다.
눈앞에 보이는 것 너머의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능력, 그게 진정한 관찰의 힘이다.
예를 들어 산책길에서 찍은 단순한 나무 한 그루도, 그냥 지나치면 나무일 뿐이다.
하지만 그 나무가 풍기는 공기, 그 주변의 분위기, 빛의 흐름과 바람의 움직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나무 이상의 무언가를 볼 수 있다.
나무는 그 자리에서 오랜 시간을 견뎌온 세월의 흔적일 수도 있고, 이곳을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도 조용히 버티며 살아가는 존재일 수도 있다.
관찰은 이런 식으로 대상의 본질에 다가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좋은 사진가는 바로 그 과정을 통해 피사체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발견한다.
나무 한 그루를 통해 시간의 흐름을 읽어내고, 거리의 풍경을 통해 도시의 속도와 변화를 느끼며, 사람들의 얼굴을 통해 그들의 삶의 흔적을 포착한다.
관찰은 일상에서 미처 놓치기 쉬운 순간들을 다시금 들여다보게 한다.
우리는 무심코 스쳐 지나가는 장면들 속에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매 순간 우리 주위에는 발견되지 않은 아름다움이 숨겨져 있지는 않은지를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볼 것인가이다.
우리가 어디에 주목하고 무엇을 발견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도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철학자 헨리 베르그송은 "눈은 우리가 이해하는 만큼만 볼 수 있다."고 했다.
우리가 세상을 관찰하지 않으면, 그 안에 숨겨진 의미를 결코 알 수 없다.
그러니 깊이 있는 삶을 살고 싶다면, 세상을 자세히 관찰하고 그 안에서 나만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찰칵. 또 한 장의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나는 말한다.
"넌 내게 찍혔어!" 이 말은 단순히 카메라 앞에 서 있는 대상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관찰을 통해 발견한 세상에 하는 말이다.
나는 그 순간을 온전히 바라보고, 그것을 나만의 시선으로 담아내려고 노력한다.
세상은 우리가 어떻게 관찰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그래서 오늘도 산책을 나서며 사진을 찍는다.
나만의 시선으로, 나만의 이야기를 담기 위해.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세상과 대화를 나눈다.
'찰칵' 내가 본 세계는 내가 만든 이야기로 변한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세상에 속삭인다.
"넌 내게 찍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