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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자루 Oct 11. 2024

#17. 소박함에 대한 소박한 생각

노자의 치인사천막약색




내가 사는 이곳에는 계절 변화가 거의 없다. 

살짝 달라지는 바람 속의 습도, 눈치채기 어려운 기온의 변화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산책을 나가면 늘 같은 길도 왠지 새롭게 느껴진다. 

나무도 변함없고, 길가의 풀도 언제나 그 자리인데, 나만이 다르게 느끼는 건지 모른다. 

오늘은 그 ‘같음 같은 다름’ 속에서 소박함에 대해 생각해본다. 


거창한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사실 소박함이란 그리 복잡한 주제가 아니다. 그래서 이 산책길에서 떠오른 생각들이 그와 꼭 맞아떨어진다.

나는 요즘 뭔가를 덜어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예전에는 ‘더 많이, 더 크게’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았는데, 문득 내가 어지럽게 많은 것들에 얽매여 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오늘부터라도 소박하게 살아보자는 다짐을 해본다. 

소박함이라는 단어는 듣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무엇인가를 내려놓고, 필요 없는 것들을 멀리하고, 정말 필요한 것들만 남기는 것. 

이건 마치 산책할 때 신발 끈을 꽉 조여매지 않고 느슨하게 풀어두는 것과 비슷하다. 

더 이상 불필요한 압박이 제거되면 발이 한없이 가볍게 느껴진다.


노자가 말한 '치인사천막약색(治人事天莫若嗇)', 사람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기는 데에는 아낌이 으뜸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인간의 욕망을 줄이고, 자연의 흐름에 맞춰 사는 삶. 소박함은 그런 게 아닐까? 

어릴 적부터 우리는 많이 가지는 것이 곧 성공이라고 배워왔지만, 사실 성공의 의미는 ‘얼마나 많이’가 아니라 ‘얼마나 소박하게’에 있는 것 같다. 

결국 많이 가지려고 하면 그만큼 잃는 것도 많아진다. 

이것저것 사들이면서 정작 중요한 것은 놓치기 쉽다. 

마치 산책 중에 작은 꽃 하나를 놓치듯이 말이다.


나이가 들면서 깨닫는 것 중 하나는, 무언가를 많이 가지는 것이 곧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소박하게 살수록 마음이 가벼워지고, 주변을 더 잘 볼 수 있다. 

노자는 ‘겸손함과 아낌’을 그의 세 가지 보물 중 하나로 꼽았다고 한다. 

자애와 겸손도 중요한 미덕이지만, 그 중심에 소박함이 자리 잡고 있다. 

아끼고, 덜 쓰고, 덜 원하면 삶은 그만큼 풍요로워진다.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최신 기기를 살 필요도 없고, 굳이 남들처럼 화려한 옷을 입을 필요도 없다. 

내 몸에 맞는 가장 편한 옷이면 충분하다. 

결국 소박함이란, 나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그 이상의 것에 욕심내지 않는 것이다.


현대 사회는 과할 정도로 소비를 강요한다. 소비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소박하게 산다는 건 어쩌면 현대인의 저항일지도 모른다. 

광고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속삭인다. ‘이걸 사야 네가 행복해질 거야’, ‘더 큰 차를 사야 더 잘 살고 있는 거야’. 하지만 그런 말에 휘둘리다 보면 내 발이 너무 무거워진다. 

다시 산책길로 돌아와 생각해본다. 내 걸음이 가벼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볍게 걷고, 자연스럽게 숨 쉬고, 오롯이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할 수 있는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소박함이란 단순히 물건을 덜 사고, 덜 사용한다는 뜻인가? 

물론 그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진정한 소박함은 내 마음의 상태에 달려 있다. 

욕심을 줄이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내 주변을 돌아보는 것. 

사는 데 있어 큰 욕심 없이 만족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야말로 진짜 소박함이다. 

마치 내가 산책을 하면서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그저 걷는 것처럼 말이다. 

어느 곳으로 발길이 닿던지 그 길 끝에서 나만의 새로운 발견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소박한 삶은 마치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강물이 산을 돌고 들을 지나 바다로 흘러가듯이, 소박한 삶도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억지로 가지려고 하지 않고, 주어진 것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것. 

그렇게 살다 보면 내가 쌓아올린 욕망의 벽도 무너지고, 그 너머에 진정한 자유를 보게 된다. 

콧노래를 부르며 가볍게 산책을 끝낼 수 있는 그런 자유 말이다.

산책길을 걸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더 많은 것이 아니라 더 적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더 적게 가지고, 더 적게 소비하며, 더 적게 바라볼 때, 우리는 비로소 진짜 중요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삶은 복잡할 필요가 없다. 

소박하게 살다 보면 소박한 기쁨들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그리고 그 기쁨들이 모여 결국 진짜 행복이 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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