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라.'
우리는 모두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섬이다.
어떤 섬은 더 크고 더 화려해지기 위해 애쓰고, 또 다른 섬은 그저 조용히 파도 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보낸다. 그러나 이 섬들이 공통적으로 원하는 것은 하나다.
행복. 하지만 각 섬이 행복을 찾는 방식은 다르다.
어떤 섬은 더 많은 재산과 더 큰 성취를 통해 행복을 얻으려 하고, 다른 섬은 소박한 일상 속에서 작은 순간들을 통해 행복을 발견한다.
학창시절 보물찾기 놀이처럼 행복은 사소한 일상에 숨겨져 있다. 아주 간단하고 단순한 모양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질문이 생긴다. 행복이 왜 이렇게 간단할까? 그리고 누가 이렇게 간단하게 행복을 만들었을까?
고대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인간의 행복이 본래 단순함에 있다고 믿었다.
그에게 행복이란 물질적 풍요나 거대한 성취가 아니라, 마음속에서 느끼는 평온함과 작은 기쁨에 있었다.
그는 "필요 이상의 것을 바라는 것이 불행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에피쿠로스의 사상에 따르면, 인간의 본성은 단순한 만족감을 추구할 때 비로소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행복을 거대한 성취나 목표로 규정하면서, 그 본질을 복잡하게 만들어 버린다.
현대 사회는 성취지향적이다. 사람들은 더 나은 직업, 더 큰 집, 더 많은 돈을 추구하며 끊임없이 달린다.
그들은 미래의 거대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믿고, 현재의 작은 기쁨을 간과한다.
더 큰 성취가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믿음은 사람들을 끝없이 달리게 만들지만, 정작 그 성취가 이루어졌을 때, 그들은 또 다른 목표를 찾아 다시 달리게 된다.
이렇게 행복을 미래에 둔 채로 현재의 만족과 행복을 지연시키도록 우리는 오랫동안 교육 받아왔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행복은 무엇일까? 행복은 미래의 거대한 꿈이 아니라, 현재의 작은 자족 속에 존재한다.
나 역시 이런 성취지향적인 생각에 젖어 있을 때가 있었다. 더 많은 것을 이루고, 더 큰 성취를 하려고 했던 시절, 나는 행복이 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느꼈다.
그런데 어느 날, 별다른 성취도 없이 하루를 보낸 뒤, 집으로 돌아와 의자에 앉았을 때, 문득 미소가 지어졌다. 왜 그랬을까? 그날 내가 느낀 행복은 거창한 성취가 아니라, 그저 하루 동안 내가 느꼈던 작은 순간들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잔디와 함께 걸으며 느꼈던 바람,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빛, 그리고 그 고요함.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 잔잔한 행복을 주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행복은 내가 무엇을 성취했느냐보다, 내가 그 순간을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였느냐에 달려 있었다.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행복의 본질을 이야기했다.
그는 인간이 끊임없이 새로운 욕망을 충족하려 하며, 욕망이 충족되면 또 다른 욕망이 뒤따라온다고 지적했다. 이는 결국 불만족의 반복을 의미한다.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욕망을 덜어내는 것이 행복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그가 제시한 행복은 욕망에서 벗어나 현재의 상태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데 있다.
우리는 무엇을 성취해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주어진 것에 만족할 때 비로소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이쯤에서 나는 다시 질문해본다. "행복은 왜 이렇게 사소한 것 속에 숨겨진 것이지?"
행복이란 본래부터 복잡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는 그것을 복잡하게 만든 것이다.
행복은 거대한 목표나 성취가 아니라, 매일매일의 소소한 순간 속에서 존재한다.
우리는 바람이 불어오는 산책길, 가족과 나누는 짧은 대화, 친구와 함께하는 웃음 속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멀리서 찾아야 할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는 것들이다.
철학자 루소는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루소의 이 말은 단순히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시골로 이주하라는 뜻이 아니다.
그의 말은 문명의 복잡함 속에서 인간이 잃어버린 본성을 되찾으라는 의미다.
다시 말해, 우리는 현대 사회의 복잡한 요구와 기대 속에서 더 많은 것을 원하고, 더 높은 성취를 추구하지만, 진정한 행복은 오히려 작은 것들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말은 우리 마음 속의 단순함을 되찾으라는 것이다.
자연 속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평화와 고요함, 그리고 소박한 기쁨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의 원천이다.
나는 종종 산책을 한다. 그저 잔디와 함께 걷고, 바람을 느끼며, 주변의 풍경을 바라보는 그 시간은 나에게 큰 기쁨을 준다. 그때 느끼는 행복은 성취를 통해 얻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다.
그것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 머물며 온전히 그 순간을 음미할 수 있을 때 찾아온다.
행복의 간단함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미래의 불안이나 성취에 대한 욕망을 잠시 내려놓고, 현재의 작은 순간들 속에서 만족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행복의 간단함은 현대 사회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루소가 말한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메시지는 우리의 삶 속에서 복잡함을 덜어내고,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라는 것이다.
자연 속에서의 단순한 삶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자족과 평온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이 바로 현대 사회에서 루소의 말이 갖는 의미다.
행복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우리는 매일 매일의 소소한 순간 속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것을 인식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는 것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산책길, 잔디와 함께 걷는 조용한 시간, 가족과 나누는 따뜻한 미소, 이런 작은 순간들이 모여 행복의 작은 섬을 이루고 있다.
그 섬은 결코 크고 거대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그 소박함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에피쿠로스는 행복이 자족에서 온다고 말했고 쇼펜하우어는 욕망을 줄이는 것이 행복을 찾는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루소는 자연 속에서 잃어버린 단순한 기쁨을 되찾으라고 말한다.
이 철학자들의 사상은 모두 하나의 공통된 메시지를 던진다.
행복은 복잡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순한 순간들 속에 이미 존재하며, 우리가 그것을 발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결국, 행복의 섬은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바로 이 자리다.
우리는 그것을 찾기 위해 멀리 갈 필요가 없다.
그 섬은 이미 우리 마음속에 있으며, 우리가 소박한 것들에 감사하고 그 순간을 음미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 섬을 발견할 수 있다. 인생은 결국 매일의 소소한 기쁨을 음미하는 과정일 뿐이다.
행복의 작은 섬에 사는 사람들은 이미 이 진리를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