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폴 사르트르의 자유의지
나는 산책을 하면서 종종 길을 잃는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길을 잃는다는 것은 물리적인 길을 헤맨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실 나는 길치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집이나 목적지를 찾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내가 말하는 ‘길을 잃는다.’는 것은 마음속에서 방향을 잃는다는 것이다.
오늘도 잔디와 함께 동네를 걷다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지?” 길 자체는 분명히 알겠는데, 이 길이 맞는지, 내가 왜 이 길을 걷고 있는지 문득 의문이 든다.
마음속 GPS가 갑자기 오류를 일으킨 것처럼 말이다.
아, 내 마음의 지도를 잃어버린 게 분명하다.
우리는 종종 삶에서 길을 잃는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매번 당혹스럽다.
때로는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혹은 무엇을 향해 가고 있었는지 모를 때가 있다.
이럴 때마다 마치 머릿속 내비게이션이 “경로를 재탐색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띄우는 것처럼 깊은 혼란에 빠지곤 한다.
삶에서 ‘경로 재탐색’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불안감이 몰려오고,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의 삶과 내 길을 비교하게 된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정말 맞는 길일까? 아니면 방향을 틀어야 할까?
다른 사람들은 다들 각자의 방향대로 잘 가는 것 같은데, 나만 혼자 뒤처져서 다른 곳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밀려온다.
분명 나도 처음에는 그럴듯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출발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길이 맞는지, 왜 이 길을 선택했는지조차 헷갈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우리는 결국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누군가에게 묻는다. 아니면 구글맵이나 AI에게 질문을 던진다.
“지금 이 길을 따라가면 어디로 도착하게 되나요?”
믿고 의지하는 구글맵은 실시간 지도를 보여주며 이 길이 어디로 이어져 있는지 알려준다.
다행이다. 하지만 여전히 중요한 질문은 해결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왜 그곳으로 가려고 했던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무리 AI가 똑똑하다고 해도 대신해 줄 수 없다.
오로지 나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
삶의 목표를 설정했던 그 순간으로 시간을 돌려보자.
우리는 종종 목표를 세울 때 그 목표의 본질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타인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으로 착각하고, 그것을 우리 삶의 목표로 정하는 경우가 많다.
초반에는 기세 좋게 출발할 수 있다. 주변에도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이 많아 모든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누군가는 앞서 나가고, 또 누군가는 중도에 포기하면서 점점 사람들이 시야에서 사라져 간다.
결국, 중간에서 우리는 길을 잃고 방황하게 된다.
처음부터 내가 원했던 목표가 아니라, 타인의 욕망에 의해 설정된 목표를 나의 것이라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긴 하지만, 점점 왜 그곳을 향하고 있는지에 대한 기억은 희미해진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렇게 방황하다 보면 우리는 갈등에 빠진다. 계속 이 길을 가야 할까? 아니면 멈추고 돌아가야 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민 끝에 돌아가기보다는 계속 전진하기로 결심한다.
왜냐하면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기 때문이다.
돌아간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을 포기해야 함을 의미하고, 남들보다 뒤처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게 우리를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두려움으로 몰고 간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선택을 하게 된다.
이것은 이미 우리가 목표에 끌려가는 상태가 되어버렸다는 의미이다.
목표와 현실의 괴리는 아주 미묘하게 발생한다.
처음에는 사회가 제시하는 ‘성공’, ‘명예’, ‘물질적 풍요’와 같은 목표를 설정할지 모른다.
그런데 그 길을 가다 보면 어느 순간 주객이 전도되어 버린다.
처음에는 내가 목표를 설정한 것 같았지만, 이제는 그 목표가 나를 끌고 가고 있다.
나는 왜 이 길을 선택했는지조차 잊은 채, 목표 자체에 압도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 혼란은 타인의 목표를 자신의 목표로 착각할 때 더 심화된다.
사회는 끊임없이 우리가 따라야 할 목표를 제시한다.
좋은 직장, 안정된 생활, 높은 사회적 지위 등등.
우리는 이것들을 자신의 목표라고 착각하며 그 길을 따라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진장한 나의 목표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때 우리는 멈추고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만약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다면, 우리는 이미 길을 잃은 것이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인간은 선택의 기로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존재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선택은 단순한 자유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의지에 따라 이루어져야만 진정한 자유가 된다는 의미이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스스로의 선택을 통해 존재를 창조한다는 점이다.
만약 그 선택이 나 자신의 의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결국 자유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만다.
어쩌면 우리가 삶에서 길을 잃는 것은 필연적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삶은 단순한 직선 도로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살아가고, 그 속에서 명확한 방향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인생은 예측할 수 없는 변수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가 계획한 대로 모든 것이 흘러가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사회적 요구, 타인의 기대, 그리고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압박감 속에서 우리는 종종 길을 잃게 된다.
더구나, 우리는 살아가면서 한 번에 모든 것을 알 수 없는 존재다. 삶이란 탐험과 실수의 연속이다.
완전한 정보를 바탕으로 모든 선택을 내릴 수 없다 보니, 우리는 일단 결정을 하고 그 길을 가본 후에야 그 선택이 맞았는지 아닌지 알게 된다. 이 과정에서 중도에 길을 잃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르트르가 말한 것처럼,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는 말은 결국 우리가 미리 정해진 본질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선택하고 겪어가는 모든 과정에서 스스로의 본질을 만들어 나간다는 의미다.
그렇기에 길을 잃는 것은 불가피한 과정이다.
또한 남의 목표를 따라가는 삶은 필연적으로 길을 잃을 수밖에 없다.
성공, 명예, 물질적 풍요 등 외부의 기준에 맞추어 살아가다 보면, 본래 내가 원했던 길에서 점점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길을 잃는 과정 속에서 나만의 새로운 길을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르트르가 강조한 것처럼,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선택을 통해 매 순간 존재를 창조해 나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길을 잃는 것은 새로운 선택과 가능성을 발견하는 순간일 수 있다.
우리가 길을 잃는 순간을, 자유로운 선택의 기회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 순간은 나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이자, 나만의 길을 다시 설정하는 시점일 수 있기 때문이다.
GPS가 고장 났을 때 패닉에 빠져서 기계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안 된다.
우리가 진정 들여다봐야 하는 것은 타인이나 기계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정해진 길만 걷는 것보다, 새로운 길을 발견하고 그 길을 개척하는 것.
결국 우리는, 목적지보다 여정 속에서 진정한 자유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길을 잃어도 괜찮다. 어차피 인생은 그런 것이다.
길을 잃는 순간에야 비로소 내가 원하는 길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GPS를 끄고, 마음 가는 대로 걸어보자.
가끔은, 길을 잃는 게 진정한 나를 만나게 될 기회일지도 모르잖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