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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돈 주고산 음식물 쓰레기

냉장고 속에 기후 변화

by 한자루




배가 고파서 냉장고 문을 열었다.

김치통 뒤편에서 존재조차 잊고 있던 반찬이 발효의 새로운 경지에 도달해 있다.

한때 신선했던 채소들은 축 늘어진 채 힘없는 표정을 짓고 있고, 요거트는 유통기한을 넘긴 지 한참이다.

지난주에 시킨 배달음식? 뚜껑을 열어보기도 무섭다.

나는 고민할 새도 없이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열고 그것들을 던진다.

"아깝지만 어쩔 수 없지."

그런데 진짜 ‘어쩔 수 없는 일’일까?

나는 매주 똑같이 버리고, 다음 주에도 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이다.

음식물 쓰레기는 내가 ‘의식조차 하지 않는’ 습관 속에서 끊임없이 늘어난다.

그런데, 정말 "어쩔 수 없는 일" 일까? 혹시 우리가 너무 쉽게 포기하는 건 아닐까?

음식물 쓰레기가 지구를 망친다고 하면, 사람들은 코웃음을 칠지도 모른다.

"지구가 그렇게 약했어? 내가 버린 사과 한 조각이 기후 변화를 일으킨다고?"

하지만 우리가 흘려보낸 작은 음식 조각들이 모이고 모이면, 그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다.


환경 문제를 떠올릴 때 우리는 거대한 공장 굴뚝, 자동차 매연, 바다 위를 떠다니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먼저 생각한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조용하지만 치명적인 재앙이 일어나고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가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8~10%를 차지한다.

자동차 5억 대가 내뿜는 온실가스와 맞먹는 수준이다.

특히 음식물이 매립지에서 썩으면서 발생하는 메탄가스는 이산화탄소보다 28배나 강력한 온실가스다. 이 메탄가스는 대기 중에서 열을 가두며 지구를 점점 더 뜨겁게 만든다.

그러니까, 오늘 내가 버린 시든 상추 한 장이 기후 변화를 조금 더 악화시키고 있는 셈이다.

물론, 단 한 장의 상추가 지구를 망치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전 세계 수십억 명이 같은 생각을 한다면, 이 문제는 더 이상 작지 않다.

기후 변화는 공장 굴뚝에서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무심코 열고 닫는 냉장고 속에서 시작된다.


음식을 버리는 것은 단순한 낭비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사용하는 자원과 돈, 그리고 지구의 자원을 함께 쓰레기통에 던지는 일이다.

햄버거 하나를 만드는 데 약 2400L의 물이 사용된다는 사실을 아는가?

이는 한 사람이 3~4년 동안 마실 수 있는 물의 양이다.

이 물은 단순히 패티를 굽는 데 쓰이는 것이 아니다.

소고기를 얻기 위해 기르는 소가 먹는 사료를 재배하는 데, 소가 마시는 물, 가공과 유통 과정에서 쓰이는 모든 물을 포함한 수치다.

물은 우리가 없으면 살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자원이다.

하지만 우리는 매일 엄청난 양의 물을 ‘보이지 않는 형태’로 낭비하고 있는 셈이다.

냉장고 속에서 시든 채소, 남은 밥 한 공기, 다 먹지 못한 배달음식을 버릴 때마다, 우리는 사실 수천 리터의 물을 함께 버리고 있는 것이다.


배달을 시킬 때, 1인분을 주문하면 배달비가 아깝다.

그래서 2~3인분을 시키고, 다 먹지 못한 음식은 냉장고로 향한다.

그리고 3일 후, 결국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

마트에서 장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1+1 행사 상품을 보면 손이 먼저 움직인다.

‘싸게 샀다’는 만족감은 크지만, 정작 유통기한이 지나 냉장고에서 발견되었을 때 우리는 그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다.

결국 우리는 돈을 절약한 것이 아니라, 음식물 쓰레기를 사 온 셈이 된다.


유통기한이 지나면 우리는 자동 반사적으로 버린다.

하지만 유통기한은 ‘판매할 수 있는 기한’일 뿐, ‘먹어도 되는 기한’과는 다르다.

우유, 달걀, 빵, 요거트 같은 음식은 유통기한이 지나도 멀쩡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리는 상태를 확인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버린다.

한 번의 선택이, 한 줌의 자원을 낭비하는 순간이 된다.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겠다는 결심은 다이어트 선언과 비슷하다.
“이제부터 절대 안 버릴 거야!”라고 다짐하지만, 며칠 뒤면 냉장고에서 또다시 의식을 잃은 채소들이 발견된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같은 말을 반복한다.

“아깝지만 어쩔 수 없지.”

그렇다고 완벽한 실천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냉장고에 있는 모든 재료를 한 톨도 남김없이 소비하는 경지에 오를 필요는 없다.

하지만 몇 가지 작은 습관만 바꿔도 음식물 쓰레기를 크게 줄일 수 있다.


마트에 가면 갑자기 식탁 위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몰려온다.
‘혹시 모르니까’라는 생각으로 장바구니에 이것저것 담고, 집에 돌아와 냉장고 문을 열면… 아뿔싸. 방금 산 것과 똑같은 식재료가 이미 들어 있다.

"아, 맞다. 저번에도 혹시 몰라서 사 왔었지."

이제부터 마트에 가기 전 냉장고 문을 먼저 열어보자.
거기에는 우리가 ‘혹시 몰라서’ 사 둔 것들이 이미 자리 잡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계획 없이 장을 보면, 결국 불필요한 음식이 냉장고로 들어가고, 그중 일부는 유통기한이 지나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운명을 맞이한다.

장보기 전에 냉장고를 확인하는 것은 단순한 일이지만, 음식과의 이별을 줄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마트에서 ‘1+1 행사’나 ‘대용량 할인’ 같은 문구를 보면 머릿속에서 두 개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성적인 나는 "이걸 다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한다.
하지만 이내 흥분한 나는 "하지만 평소보다 싸잖아! 안 사면 손해야!"라고 외친다.

그리고 대개는 흥분한 내가 승리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을 기억하자.
할인된 가격이 아니라, 우리가 실제로 먹는 양이 중요하다.

‘싸게 많이 샀다’는 기쁨은 오래가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그 기쁨은 유통기한이 지나 냉장고에서 발견되는 순간 사라지고, 우리는 할인받은 가격만큼의 음식물 쓰레기를 사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니 할인 행사를 볼 때마다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자.

"이걸 정말 다 먹을 수 있을까?"

이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의외로 많은 불필요한 구매를 줄일 수 있다.


배달음식은 우리를 ‘합리적 소비자’로 착각하게 만든다.
배달비 4,000원이 아까워서 2인분을 시킨다. "이건 절약이야!"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시킨 2인분이 실제로는 1.3인분 정도밖에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중에 먹어야지"라는 생각으로 냉장고에 넣지만, 현실은 다르다.
그 음식이 다시 테이블로 돌아오는 일은 많지 않다.

냉장고에 넣었다는 것은 90% 확률로 버려질 예정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냉동고에 넣었다면 90% 확률로 음식물이 다시 살아남을 가능성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니 남은 음식이 있다면 미루지 말고 바로 냉동하는 습관을 들이자.
내일 먹어야지, 내일 먹어야지… 하다 보면, 결국 ‘내일’이 아닌 ‘쓰레기 날’에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유통기한이 하루만 지나도 자동 반사적으로 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유통기한이 ‘폭탄의 타이머’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어제까지는 멀쩡했는데, 오늘은 먹으면 죽는 거 아냐?"

하지만 유통기한과 ‘먹어도 되는 기한’은 다르다.

유통기한은 판매할 수 있는 기한이고 소비기한 실제로 먹어도 괜찮은 기한이다.

요거트, 달걀, 빵 같은 식품은 유통기한이 지나도 충분히 먹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우리는 냄새를 맡아보거나 상태를 확인할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버려버린다.

냉장고를 열었을 때, 날짜만 확인하지 말고 직접 눈으로 보고, 냄새를 맡고, 상태를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자.

"이거 먹어도 되나?" 고민될 때는 우리 할머니가 하셨던 말을 떠올려 보자.

"코가 있으면 냄새를 맡고, 눈이 있으면 색깔을 보고, 손이 있으면 만져 보면 되지!"

그렇게 한 번의 확인만 거쳐도, 음식물 쓰레기는 놀랍도록 줄어든다.


음식물 쓰레기를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몇 가지 작은 습관만 바꿔도, 우리는 더 적게 버릴 수 있다.

냉장고를 열 때마다 ‘무엇을 버릴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덜 버릴까’를 먼저 고민해 보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장을 보러 가기 전, 혹은 배달음식을 시키기 전, 한 번 더 질문해 보자.


"이거, 정말 다 먹을 수 있을까?"

이 질문 하나가, 냉장고 속 음식의 운명 뿐 아니라 지구와 우리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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