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색이 목숨을 구할 수도...
간만에 느긋한 금요일 저녁이었다.
내일 회사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더 마음을 푸근하게 했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잔디와 산책을 나섰다.
잔디는 우리 집 반려견이자, 내 인생의 마지막 활력소 같은 존재다.
귀는 쫑긋, 꼬리는 흔들, 오늘도 세상사에는 관심이 없다.
마을 아파트 단지를 따라 걷다가 보니 어느 한적한 골목을 지나고 있었다.
가로등은 어정쩡하게 어두웠고, 하늘은 이미 거의 검은색에 가까웠다.
나는 이어폰 귀에 끼운 채 한 손에 리드줄을 쥐고 걷고 있었다.
하루치 피로가 종아리에서 뚝뚝 흘러내릴 즈음, 갑자기 쓱 하고 지나가는 그림자 하나.
검은 SUV 한 대가 아무 경고도 없이 횡단보도 없는 코너를 슬쩍 돌아 나왔다.
소리도, 불빛도 없이. 마치 그림자처럼.
나는 본능적으로 한 걸음 물러섰고, 잔디는 멈춰 서서 나를 올려다봤다.
그 눈빛이 말하는 것 같았다.
'아빠… 방금 그거, 진짜 아슬아슬했어요.'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더는 걷고 싶지 않았다.
몸도 마음도, 뭔가 딱 그 SUV처럼 스치듯 어긋난 느낌이었다.
그래서 산책은 거기서 끝났다.
잔디 줄을 살짝 당겨 공원 안쪽 벤치에 앉았다.
잔디는 내 발밑에 누워 꼬리를 감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고개를 들어 회색 하늘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차가 만약… 분홍색이었다면? 그랬다면, 더 눈에 띄었을까? 내가 놀라서 피하지 않아도 됐을까?”
어처구니없는 생각 같았지만, 이상하게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 퍼즐 조각처럼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고 보니 요즘 길에 색이 너무 다양하다.
하얀 차, 회색 차, 검정 차, 검정보다 더 검은 차, 은색인데 반사광 때문에 하얗게 보이는 차…
차들 사이를 걸을 때마다 내 뇌는 언제나 ‘경고등'을 켜두고 있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만약 모든 차가… 정말 하나같이 분홍색이라면?
이건 단지 색의 문제가 아니었다.
주의력과 혼란, 인지 피로, 그리고 다 똑같아 보이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리는 감각에 관한 문제다.
잔디가 가볍게 하품을 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멀리서 헤드라이트 불빛이 하나 지나갔다.
이번엔 은색이었다. 다행히 천천히 달렸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상상했다.
모든 차가 핑크색인 세상.
그 안에서 벌어지는, 도로 위의 아주 진지한 실험.
아무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기에 더 진지하게 파고들고 싶은 실험.
핑크색 교통 혁명 가설이 뇌 속에서 가동되기 시작했다.
가제: “자동차 도색 단일화 특별법” 시행에 따른 국민 인지 행동 변화 실험
상상 전제 :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자동차 색상 일원화 정책인 전국 도로 색채 시야 안정화를 위한 자동차 도색 단일화 특별법
간단히 말해, 이제 모든 자동차는 분홍색으로만 출고된다.
기존 차량도 반드시 3개월 이내 분홍색으로 재도색해야 한다. 위반 시 벌금 300만 원.
정부의 설명 : 시각 정보의 혼란을 줄여 교통사고를 감소시키고, 국민의 도로 집중력을 향상시켜… 어쩌고 저쩌고.
국민의 반응 : 그래, 이제라도 뭔가 통일하자. VS 아니 왜 내 벤츠를 핑크로 칠하라고…?
나의 뇌 속에는 이미 거대한 가상도시가 펼쳐져 있다.
마치 영화 속 장면처럼 그 위로 오직 분홍색 자동차들만이 오간다.
날짜 : 상상 실험 D+1
장소 : 상상의 도심 – 분홍 차량 단일화 시범 도입 1일 차
피실험자 : 나 (50세 초반, 배 나온 중년, 핑크색과는 거리 둬왔던 삶)
상황 : 법률에 따라 차량 전체 도색 완료, 첫 운행일
아침 6시 40분. 주차장에 섰다.
내 차가… 분홍색이다. 정확히는 ‘샴페인 핑크’.
도장소 사장님이 그러셨다.
“남성분들은 은은한 핑크톤이 은근히 잘 받습니다~”
나는 복잡한 심정이 되어 속으로 되받아쳤다.
"그래? 받긴 뭘 받아... 이 핑크빛 차를 어떻게 소화할 수 있다는건지..."
자동차를 바라보며 심호흡을 한 번.
문을 여는 순간, 나는 이미 이 세상의 한 조각 분홍이 되어 있었다.
운전석에 앉으며 나는 중얼거렸다.
“이게 다 안전을 위한 거야…”
물론 속으로는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라는 말이 메아리쳤다.
그러나 막상 도로에 나와 보니, 기분이… 이상하게 괜찮았다.
도시의 도로는 마치 어느 아이돌 팬덤의 단체 응원 현장 같았다.
분홍 승용차, 분홍 SUV, 분홍 배달 오토바이까지.
눈이 부실 정도로 통일된 색. 온통 하나의 팔레트에 들어간 느낌.
그리고… 신기하게도 조용했다.
경적 소리가 줄었다. 급브레이크가 사라졌다. 끼어들기도 줄었다.
어디선가 “분홍색은 공격성을 낮추는 색”이라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났다.
사람들이 확실히 조심하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다들 ‘분홍색 탄 게 부끄러워서 조용한 건가’ 싶을 정도로 얌전했다.
골목길에 접어들 때 였다. 좁은 길 맞은 편에서 다른 한대의 분홍색 차량이 동시에 들어섰다.
서로 눈치를 보며 누가 먼저 지나갈지 눈치싸움이 시작될 것 같았다.
그때 맞은편 차에서 창문이 스르륵 내려갔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남성. 역시나 약간 배가 나와 있었다.
차량색이 통일되니 운전자도 모두 비슷비슷하게 닮아 있는 느낌이다.
그리고,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가시죠.”
나도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형님 먼저, 아우는 나중에.”
이유 없이 서로 배려하고, 이유 없이 유대감을 느끼는 순간.
아, 이거 괜찮은데? 나중엔 괜히 “핑크 동지” 같은 느낌도 생겼다.
조금 더 지나니 창문 너머로 다른 차들에서 퍼져나오는 부드러운 말투가 뒷가에 들린다.
“왼쪽 깜빡이 켜셨던 것 같아요, 먼저 가세요~”
평소 같으면 싸웠을 길에서 차량 간 미소 교환 발생하고 있었다. “같은 색이면, 같은 편이다.”라는 착시현상 같은 것 말이다.
분홍색이 주는 효과는 단순히 색의 통일이 아니었다.
‘눈에 띄지 않음’이 오히려 신중함을 유발했고, ‘나만 튀지 않는다.’는 안정감이 도로 위의 협동심을 만들어냈다.
나는 핑크를 좋아하진 않는다. 지금도 그렇다. 그 색이 나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하지만 이 도로 위에선, 분홍색이 마치 교통의 평화조약서 같았다.
분홍이 마음을 말랑하게 만든 게 아니라, 사고 날 확률이 줄었다는 믿음이 내 마음을 부드럽게 만든 거다.
그리고 그날 저녁, 공원 벤치에 앉아 핑크색 리드줄을 문 잔디를 내려다보며 나는 말했다.
“야 잔디야, 이거 진짜 괜찮은 정책일지도 몰라.”
잔디는 묘하게 나를 외면했다.
그리고 풀숲에 분홍색 전동 킥보드가 하나 나뒹구는 걸 보고 낮게 짖었다.
“... 그래. 아직 완벽하진 않지.”
날짜 : 상상 실험 D+5
장소 : 상상의 도시, 역 주변 사거리
피실험자: 나 (50대 중년, 분홍차 적응 완료, 이제 살짝 우쭐해짐)
상황: 출근길, 좌회전 시도 중 예상치 못한 위기 상황 발생
아침 7시 20분. 출근길.
아메리카노를 한 손에 들고, 이제는 제법 당당한 자세로 분홍차에 올라탔다.
백미러도, 블루투스도, 마음가짐도 매끄럽다.
도로 위 90% 이상이 분홍이 된 지금, 나도 그 일부가 된 기분이다.
신호등 아래에서 깜빡이를 켰다. 좌회전 대기. 그리고 나는 확신했다.
“이제 모두가 서로를 더 잘 보게 될 거야.”
그런데… 좌회전 신호가 바뀌고, 나는 서서히 꺾기 시작했다.
그 순간, 오른쪽에서 분홍색 SUV가 쌩 하고 내 앞으로 돌진했다.
끼익!
급브레이크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자 차 안 컵홀더에 얌전히 잠들어 있던 텀블러가 아메리카노 반을 토해 냈다.
나는 외쳤다. “야야야야야야야!!”
물론 창문은 닫혀 있었고, 내 외침은 차량 내부를 왕복했을 뿐이다.
잠깐, 뭐가 잘못된 거지? 나는 분명 깜빡이를 켰다. 방향도 정확히 맞았다.
그런데 그는 내가 좌회전을 할 줄 몰랐다고? 그때 깨달았다.
우린 모두 너무 비슷해서, 서로를 못 본다.
사고는 나지 않았지만, 사고보다 더 큰일이 일어났다.
‘내가 확실하게 알렸는데, 아무도 못 알아봤다.’
이건 단순한 오해가 아니라, 정보의 실종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거울을 더 자주 보게 되었다.
내 얼굴도 너무 평범해진 건 아닐까?
회사에서의 내 존재도, 내 말도, 깜빡이처럼 그냥 스쳐 지나가는 건 아닐까?
분홍의 질서는 있었지만, 차이의 언어는 사라지고 있었다.
도로 위에선 내 신호가 묻혔고, 사는 곳에서도, 일하는 곳에서도… 내 표현이 튀지 않을까 봐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분홍은 안전했지만, 너무 오래 보면 눈에 뭐가 들었는지도 모르게 되는 색이었다.
날짜: 상상 실험 D+9
장소: 마트 주차장
피실험자: 나 (중년, 분홍차 소유자, 사고 경험 이후 살짝 예민해짐)
상황: 내 차를 누가 박고 도망감. 하지만 CCTV엔 ‘분홍차’만 찍혀 있음
토요일 오후.
반려견 잔디의 사료가 떨어졌다는 통보를 받고 나는 동네 대형마트로 향했다.
주차장 한편에 익숙하게 내 분홍차를 세우고, 사료 1봉, 라면 4봉, 간식 3종, 아이스크림 2개를 사고 나왔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차 뒤 범퍼가 살짝 찌그러져 있었다.
아니 이건 분명히 누가 ‘쿵’ 받고 도망친 거다.
나는 당장 보안실로 달려갔다.
“CCTV 좀 볼 수 있을까요? 분명히 누가 박고 갔어요.”
5분 후, CCTV 영상 앞. 화면 속에서, 분홍색 SUV가 천천히 후진하다 내 차를 박았다.
그리고 머뭇거리다 그대로 줄행랑이다.
내가 외쳤다. “저거요! 저 차예요!”
직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음… 그런데요, 손님.
저 시간대에 그 모델, 그 분홍색 SUV만 12대가 드나들었어요. 심지어 번호판도 안 보이네요.”
정적. 아이스크림이 살짝 녹았다.
12대... 같은 모델, 같은 색. 그중에 누가 박았는지… 아무도 모른다.
나는 무너졌다. 내가 좋아한 안정과 질서가, 내 차를 찌그러뜨리고 증거를 숨겼다.
도망친 건 차 한 대였지만, 그날 사라진 건 책임감, 개성, 그리고 내 보험료 할인 혜택까지였다.
분홍색은 튀는 색이었지만, 전부가 튀면 아무도 튀지 않는다.
나는 갑자기 사람들이 전부 회색 옷을 입고, 같은 말투를 쓰고, 같은 리액션을 하는 회사가 떠올랐다.
그 속에서 내 잘못을 남이 뒤집어쓸 수도 있고, 남의 실수를 내가 대신 사과해야 할 수도 있다는 걸.
날짜 : 상상 실험 D+12
장소 : 대형마트 지하 주차장
피실험자 : 나 (분홍차 소유자, 시력은 정상이지만 자존감은 조금씩 흐려지는 중)
상황 : 장을 다 보고 돌아왔지만… 내 차를 못 찾음.
일요일 오후.
아내의 지령에 따라 손에 무겁게 들린 비닐봉지엔 두부, 각종 야채와 고기, 부침개 믹스, 그리고 참기름 한 병.
잔디 간식도 있었지만, 중요한 건 이 무게를 가능한 한 빨리 내려놓는 것.
그런데... 차가 안 보였다.
아니, 차는 있었다. 아주 많았다. 문제는 전부 다, 분홍이라는 것이다.
어디를 봐도 분홍, 조금 진한 분홍, 아주 연한 분홍, 햇빛에 바랜 분홍…
그러니 ‘내 차는 어디 있는지’는 도무지 구분이 안 됐다.
주차장 통로 끝까지 걸었고, B2 구역부터 C4까지 차례차례 둘러봤다.
내 차랑 같은 모델이 열 다섯 대, 같은 연식으로 추정되는 게 여섯 대.
“분홍이면 눈에 띄니까 사고가 줄겠지”라는 건 도로 위 이야기였다.
여긴 전부가 눈에 띄니까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았다.
나는 마치 딸기 우유 공장에 갇힌 소처럼 30분째 같은 구역을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잠깐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야… 이게 내 차냐, 너냐, 뭐냐… 다 똑같잖아.”
그때 옆에 있던 누군가도 말했다.
“요즘 주차장 들어오면 진짜 정신 나갈 것 같아요.”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끄덕였다.
그때 깨달았다.
분홍색은 ‘안전’을 위해 강제된 색이었지만, 개성을 지운 안전은, 오히려 실용을 해친다.
자동차 사고는 줄었을지 몰라도 사람은 자기 차도 못 알아보는 존재가 되었다.
번호판? 생각은 안 났다. 왜냐면 그건 항상 차가 알아서 해주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결국 아내에게 전화해서 차를 못 찾겠다고 울먹였다.
“차 키로 경적 좀 울려봐…”라는 아내의 답변에 눈물을 닦고 차 키에 손가락을 얹었다.
그 순간 들려온 ‘빵빵’ 소리에 나는 반가움보단 자괴감이 더 컸다.
‘내가 내 차를 찾기 위해 경적을 울리는 날이 올 줄이야…’
어쩌면 안전은 통일로 생길 수 있지만, 지나친 통일은 인식의 실패를 부른다.
나는 분홍색 바닷속에서, 내 존재를 조금씩 잃어가고 있었다.
날짜: 상상 실험 D+15
장소: 초등학교 앞 도로
피실험자: 나 (아들 하교 픽업 미션 중)
상황: 온 세상이 분홍색일 때, '누군가'를 찾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체감함
금요일 오후.
나는 오늘 학교 앞에서 아들을 기다렸다.
“아빠가 데리러 갈게”라는 말에, 아들이 “진짜?” 하고 반짝 웃었기에.
하지만 지금, 나는 30분째 그 반짝이는 아이를 못 찾고 있다.
왜냐면 학교 앞 도로엔 차가 20대 넘게 줄지어 있고, 모두 분홍색이다.
나는 내 차 앞에 서서 팔을 흔들었다. 모자챙을 눌러쓴 초등학생들이 줄지어 나왔다.
아이들은 한 번 나를 훑어보곤 지나쳤다.
다른 분홍차 앞에서 멈춰 섰고, 누군가는 “아빠!” 하고 반가워했다.
그 반가움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게 조금 서운했다.
결국 아들은 내 차를 스쳐 지나갔다. 나는 조심스럽게 창문을 열고 말했다.
“아들… 너 아빠도 못 알아보고 지나가는 거냐?”
아들은 차창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말했다.
“아, 아빠 여기 있었구나. 너무 비슷해가지고… 미안!”
그 순간, 나는 차를 내려다봤다.
맞다. 이건 내 차였지만, 딱히 내 차 같진 않았다. 남들 다 타는 그 분홍 금속 덩어리 중 하나.
번호판이 내 주민번호였다고 해도 ‘나’라는 표식은 없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차가 튀면 사고 난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사람이 안 튀어서 사고가 났던 건 아닐까?”
모두가 안전해지자, 모두가 비슷해졌다. 비슷해지자, 누군가를 알아보는 일이 어려워졌다.
심지어, 내가 나를 알아보는 것도 어려워졌다.
그날 밤, 나는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분홍색 차를 한참을 바라봤다.
내가 살아온 인생이 결국 이 주차장 같진 않았을까.
어딘가에는 분명히 나만의 고장난 부분, 나만의 흔적이 있었는데 표준화된 안전, 평균적인 무해함 속에서 그 모든 차이가 깎여 나가진 않았을까.
나는 잠시 차 안에 앉아, 창밖을 봤다.
사람들은 조용히 출차하고, 분홍차는 질서 정연했다.
사고도 없다. 분쟁도 없다. 혼돈도, 없다. 그리고 문득 심심했다.
안전한데, 숨이 막혔다. 평등한데, 외로웠다. 조용한데, 내가 없었다.
나는 공원 벤치에서 천천히 일어나며 이제 이 실험을 멈춰야겠다고 생각했다.
분홍의 목적은 ‘주목’이 아니라 ‘소거’였고, 그 소거는 결국 ‘사람’을 지워버렸다.
나라는 사람, 그리고 너라는 개성, 우리가 서로를 알아보는 신호들.
그 모든 게 사고를 피한 대가로 조금씩 사라져 버렸다.
우리는 다 다르기 때문에 서로를 알아볼 수 있었던 건 아닐까.
그날, 나는 집으로 돌아와 현관 거울 앞에 잠시 멈췄다.
낯익었지만, 낯설었다. 분홍빛 조명 아래, 나는 내가 아닌 ‘누군가’처럼 보였다.
이름 없는, 너무 익숙한 중년의 실루엣.
그래서 그 순간, 나는 다시 회색의 거리가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조금 시끄럽고, 조금 복잡하지만 그곳엔 분명 나만의 존재감이 있었다.
자동차가 흰색이든, 검정이든, 민트빛이든, 먼지를 뒤집어쓴 회색이든, 결국 중요한 건 색이 아니다.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어떻게 다름을 알아보려 애쓰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나로서 살아가고 있는지.
안전은 소중한 일이지만, 그것이 내 존재를 흐릿하게 만들고 누군가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대가라면 그건 과연 안전한 삶일까.
사고를 줄이는 방법은 모든 차를 같은 색으로 칠하는 게 아니라, 저마다 다른 색을 보고도 놀라지 않을 줄 아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질서는 똑같은 것들 사이에선 쉬이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 다른 존재들이 서로의 다름을 의식하며 살아갈 때, 그 사이에 조심스러운 배려가 피어난다.
삶도 마찬가지다.
누구의 색도 지우지 않고, 모두가 저마다의 색으로 도드라질 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이 진짜 안전하고 좋은 세상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