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더 나아질 수 있을까?
그날 저녁도 평소처럼 조용했다.
아들은 숙제를 하다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아빠, 근데… 왜 시간은 앞으로만 가?”
나는 밥을 씹던 턱을 잠시 멈췄다. 그 말투가 심상치 않았다.
이 아이가 또, 과학적이며 동시에 철학적인 영역으로 진입하려고 한다.
“음… 그건, 음… 왜냐면…”
나는 당황을 숨기며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아내는 내 눈치를 슬쩍 보더니 조용히 물컵을 들었다.
도움의 손길 같은 건 기대하지 말고 알아서 현명하게 대처하라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시간은… 왜냐하면 말이쥐...미래로만 가는 성질을 갖고 있어서 그렇지.”
그 말이 내 입에서 나오자마자, 나 스스로도 민망했다.
아들은 고개를 갸웃하다가 조용히 말했다.
“음… 그래? AI한테 물어볼게.”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뭔가를 놓친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의 권위, 아니 체면… 아니, 존재감?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사실은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한 피난이었다.
그러나 나는 거기서 더 깊이 무너졌다.
변기에 앉은 채, 나는 AI의 검색창을 열어 이것 저것 묻기 시작했다.
“시간이 왜 앞으로만 흐르나요…?”
“10년 뒤 나는 뭘 하고 있을까요…?”
“중년이 되면 왜 아들보다 말과 행동이 느려질까요…?”
결국은 이런 막무가내식 질문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었다.
“지금 내가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 나는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진짜 10년 후 미래의 내가, 내 미래에 대한 질문에 직접 답해줄 수 있다면?”
검색창이 아니라, 진짜 내 미래가, 딱 한 문장으로. 하루에 단 한 번.
그 질문이 바보 같아도, 슬퍼도, 유치해도… 그 사람이 말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변기 위에 앉은채로, 혼자만의 조용한 상상 실험을 시작하며 혼자 흐뭇한 미소를 짓어본다.
실험 명칭: 미래 자기 대상 1문장 인터뷰 실험
실험 도구: 스마트폰 / 감정적 몰입 / 의자 하나
피실험자 : 2025년의 나 (본인)
응답자는 2035년의 나
실험 조건:
하루에 한 문장만 질문 가능
상대는 정확히 10년 후의 같은 날짜의 ‘미래 자아’
응답은 반드시 ‘한 문장’으로만 수신됨
실험날짜 : D+1
실험 시간: 오전 10시 30분
실험장소: 회사 화장실
그날은 목소리가 컸다.
내가 아니라 나를 향한 상사의 목소리가.
회의실을 나와 복도로 향하던 내 어깨 위에는 사실 목소리보다 더 무거운 ‘시선’들이 얹혀 있었다.
나는 내 자리에 앉지 못하고, 한 박자 늦게 책상 앞에 섰다.
말없이 모니터를 켰고, 서류 더미를 옆으로 밀어봤지만 불안한 눈빛으로 머리가 흔들린다.
10년 뒤.
지금 내 표정은 그대로일까?
지금 이 책상은 그대로일까?
이대로 가도 괜찮은 걸까?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질문이 머릿속에만 쿵쿵 울렸다.
그 질문들은 생각보다 빨리 나를 화장실로 이끌었다.
나는 조용히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쭈구려 앉는다.
가끔 회사의 책상보다 편한 자리는 이곳 회사 화장실 변기 위일 때가 있다.
스마트폰을 꺼냈다. 메모장을 켰다. 눈을 감고, 한 문장을 타이핑했다.
“10년 후, 나는 아직 회사에 있어?”
질문은 날아갔다.
화장실 천장 위로, 형광등 불빛을 통과해, 상상의 구름을 지나 미래의 내게 닿았다.
조용했다.
그런데 이내, 내 머릿속 어딘가에서 그가 (10년 후의 내가) 대답했다.
“응. 아직 앉아 있지. 그런데 요즘은 잘 모르겠어, 왜 앉아 있는지..”
나는 멈칫했다.
‘아직 있다’는 말은 분명 위안이어야 했다.
자리에서 밀려나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세계에 내 이름이 여전히 적혀 있다는 뜻이니까.
그런데 이상하게, 그 말이 안심보다는 맥 빠짐을 안겼다.
"왜 앉아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
그건 마치, 가야 할 곳이 어딘지도 모른 채 그냥 의자에 남아 있는 사람의 독백처럼 들렸다.
10년 후에도 그 자리에 붙들려 있는 건지, 혹은 스스로 일어날 힘을 잃어버린 건지 정확히는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게 느껴졌다. 그 의자는 이제 푹신하지만은 않다걸.
나는 자리로 돌아와 무심코 내 책상을 바라보았다.
모니터 옆에 오래된 물컵 자국, 책상 밑에 슬리퍼, 그리고 다 쓴 듯한 펜 하나.
이것들이 10년 뒤에도 그대로일까? 아니면 이미 다른 누군가가 앉아 있을까?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지금 이 순간, 2035년의 나도 또 같은 화장실에 앉아 나의 질문을 곱씹고 있진 않을까?
말하자면, ‘현재의 나는 미래의 질문을 보내고, 미래의 나는 현재를 회고하며, 둘 다 똑같이 화장실에 앉아 있다.’
그리고 그건 어쩐지 슬프면서도 조금 웃긴 일이었다.
실험 날짜: D+2
실험 시간: 오후 11시 12분
실험 장소: 안방 화장실
밤 11시. TV에선 경제 채널이 떠들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반도체 들어가셔야 합니다!”
“○○ AI 관련주는 아직 초입이에요!”
그 말에 화들짝 놀라 스마트폰을 들고 주식 앱을 열었다가 닫고, 검색창에 ‘2035 대박 종목’ 치려다 멈췄다.
문득, 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 맞다… 내일 아침보다 더 빠른 미래가 있었지.”
나는 조용히 침대에서 나와 안방 화장실을 향한다.
쭈구려 앉아 이어폰을 꽂고 스마트폰 메모장을 열었다.
그리고 적었다.
“어이 이봐. 지금 어떤 주식을 사야 할까?”
질문이 날아갔다.
전송 완료. 손끝이 약간 떨렸다.
5초, 10초... 15초?
그때, 내 머릿속 어딘가에서 그 익숙한 목소리 10년 후의 내가 차분하고, 건조하게 한 문장을 던졌다.
“돈은 결국 벌었지… 다만 그걸로 무엇을 잃었는진, 시간이 지나야 알게 될 거야.”
나는 멍하니 그 문장을 다섯 번쯤 읽었다.
‘돈은 벌었지’가 먼저 들어왔다. 잠깐... 그래도 벌긴 했나보네?
아니지. 근데 뭘 잃었다는거지? 건강?, 가족? 친구? 아니면 돈?
왜? 어떻게? 뭘 샀길래? 아니… 도대체 얼마나 벌었길래?"
하지만, 돌아오는 건 정적뿐.
질문은 단 하나만 가능하고, 응답도 단 한번만 가능하다. 게임은 거기서 끝이었다.
나는 변기 뚜껑에 기대어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이건 투자도 아니고, 상담도 아니고, 그저… 아주 고요하고 비싼 독백이었다.
밤은 조용했고, 그 조용함 속에서 유튜브 주식 채녈 속 그 열띤 예측들이 슬그머니 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맨발로, 아무것도 못 들은 사람처럼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정확히 한 문장. 딱 그만큼의 미래.
그리고 너무도 많은, 대답 없는 현재.
날짜: D+3
시간: 토요일 오후 3시 47분
장소: 집 근처 카페
간만에 휴식이었다. 아내는 결혼식 행사에, 아들은 학원에 갔다.
혼자 멀뚱 멀뚱 집에 있기가 뭐해서 집 근처 카페에 가서 앉아 있었다.
그냥 커피 마시는 건데… 내 자세가 너무 ‘커피 마시는 중입니다’ 같은 느낌이었다.
허리를 적당히 펴고, 팔은 테이블 위에 부드럽게 얹고, 휴대폰은 열었지만 집중하진 않는 표정.
이게 뭐냐고.
왜 난 ‘자연스러움’을 이렇게 연기하고 있냐고. 순간 알았다.
나는 지금 커피를 마시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보기에 괜찮은 중년 남성 1’을 연기 중이었다.
그리고 그때 문득 내 머릿속에 한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아직도 이렇게 눈치 보며 살아?”
그래서 또 스마트폰 메모장에 질문을 끄적인다.
“야, 나야. 나는 10년 후에도 아직도 남 눈치 보며 살고 있어?”
5초쯤 뒤, 미래의 내가 대답했다.
늘 그렇듯 건조하고, 다소 비꼬는 말투로.
“남 눈치는 덜 보는데, 요즘은 아내 눈치랑 내 눈이 더 무서워.”
그렇지. 그렇긴 하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때 문득 스쳐간 풍경 하나. 어젯밤, 티비 볼륨 줄이며 아내 눈치 살피던 나.
그날은 아내가 새로 산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고, 나는 그걸 알아채지 못한 채 마늘쫑 무침 리필을 부탁했다.
아내는 그날 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늘 그렇지만 아내의 침묵, 그게 더 무서웠다.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사람 눈치는 읽는 거고, 아내 눈치는 해석하는 거지…”
그리고 또 한 가지. ‘내 눈’
요즘은 거울 볼 때마다 내가 내 눈을 가장 먼저 피한다.
그게 남보다 더 차가운 눈이다.
눈치를 본다는 건, ‘보여지는 나’를 조정하는 작업이다.
하지만 그게 오래되면, 보여지는 나와 ‘진짜 나’ 사이에 묘하게 습기 찬 거리가 생긴다.
그리고 그 거리만큼 말수는 줄고, 한숨은 늘고, 커피는 식는다.
마무리로, 나는 커피잔을 들어 올리며
창밖 강아지를 보며 속으로 외쳤다.
“부럽다, 눈치 안 보고 살잖아.”
그 강아지는 딱 내 눈치를 한 번 쓱 보고, 뒤돌아섰다.
날짜: D+4
시간: 오후 8시 42분
장소: 퇴근길, 버스 정류장 벤치
버스가 늦는다.
다리가 아프고, 어깨는 누군가 앉아 있는 것처럼 무겁다.
운동화를 신은 발바닥에서 인생 피로도가 바닥까지 밀려 올라오는 중이다.
정류장 벤치에 앉아 조용히 숨을 돌리는데 어느 순간, 마음속 어딘가에서 오래된 질문 하나가 깨어난다.
“그때… 사표를 냈어야 했나?”
아. 그 ‘그때’가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도 안 난다.
하지만 그 질문은 유통기한 없이, 늘 제자리에 있다.
오늘은 그냥 혼잣말로 넘기지 않고 정식으로, 미래의 나에게 물어본다.
휴대폰을 꺼내, 어김없이 이어폰을 꽂고 메모장에 타이핑한다.
“야… 그때 사표 냈어야 했을까?”
질문은 전송되었다.
버스도 안 오고, 대답도 안 온다. 가로등만 깜빡인다.
그리고, 1분쯤 뒤 미래의 내가, 익숙하게 무심한 어조로 대답한다.
“그때 냈으면, 네가 후회했을걸. 근데 안 냈으니까 지금은 나한테 그걸 물어보는 거고.”
……뭐야. 반칙 아니야? 근데 맞는 말이잖아?
나는 입술을 꽉 다물었다.
내가 원한 건 해답이었는데 돌아온 건,
“넌 뭘 해도 후회할 거다.”는 식의 인생 사용설명서였다.
순간, 멍해졌다. 다른 건 다 몰라도 그 말 하나만은 선명했다.
“선택을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
그렇다면 결국, 후회는 행동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가 아닐까?
나는 스마트폰을 넣으며 중얼거렸다.
“이러나저러나, 결국은 내가 나한테 답을 묻고 있었네…”
그때 버스가 도착했다. 늦게 와서 고맙기도, 밉기도 한 타이밍이었다.
문이 열리고, 나는 천천히 발을 들였다.
이제 더 이상 미래에 나에게 질문하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미래는 도망간 과거가 아니다.
그건,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모든 길들이 뒤늦게 말을 거는 시간이다.
나는 실제로 10년 후의 나와 연결된 적은 없다.
그저 어떤 날엔 너무 지치고, 어떤 날엔 너무 불안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었던 것뿐이다.
그 질문에 돌아온 대답들은 어쩌면 내가 스스로 가장 듣고 싶었던 말들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대답들은 결국 현재의 내 안에 있는 것들이었다.
변화는 위대한 계시가 아니라, 하루에 하나씩 내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오늘도 나는 스스로에게 조심스레 묻는다.
“지금의 내가, 괜찮은 사람인가요?”
그리고 언젠가 미래의 내가 작게라도 고개를 끄덕여줄 수 있기를 바라며, 나는 이번 실험을 조용히 종료한다.
에필로그 : 질문을 남기는 존재에게
매일의 삶은 예측 불가능한 실험 같고, 우리는 그 속에서 묻고, 잊고, 다시 묻는 존재다.
10년 후의 나에게 던진 질문들은 사실, 미래를 향한 탐색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흔들리는 나 자신을 붙잡기 위한 애씀이었는지도 모른다.
‘행복하냐’는 물음은 결국 ‘지금 나는 괜찮은가’라는 되묻음이었고, ‘무엇을 잃었냐’는 물음은 아직 내가 소중히 지켜야 할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었으며, ‘눈치 보며 살고 있느냐’는 농담 같은 질문 속엔 나답게 살고 싶은 진심이 숨어 있었다.
때로는 화장실 구석에서, 때로는 퇴근길 버스 정류장에서, 우리는 몰래, 작게, 그러나 간절하게 “나는 지금 잘 가고 있는 걸까?” 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게 된다.
그리고 그 답은 10년 후의 내가 아니라, 지금 이 질문을 던지고 있는 나에게 이미 어렴풋이 도착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 실험은 실패도 성공도 아니다.
단지, 자신에게 묻는 법을 기억하기 위한 연습일 뿐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정답을 아는 존재가 아니라, 질문을 남기는 존재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