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공유

퍼나름의 끝에 남는 것들

by 한자루



“이거 진짜일까?”
“그냥 봐봐. 말도 안 돼.”
“어디서 돌던데? 너도 봐.”

누군가의 실수, 누군가의 영상, 누군가의 비명.

그건 누가 먼저 찍었는지 모르고, 누가 처음 유출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가 퍼뜨렸는지는 분명히 많다.

우리는 매일 타인의 삶을 클릭하고, 저장하고, 공유한다.
그리고 말한다.
“나는 그냥 퍼왔을 뿐인데.”


가짜 뉴스, 유출 영상, 자살 보도, 몰카, DM 캡처, 비난 게시글.
처음엔 ‘누가 이걸 올렸나’가 중요해 보인다.
하지만 실은 그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퍼날랐는지가 결과를 만든다.

잘못된 루머는 퍼날라졌기 때문에 ‘사실처럼’ 보인다. 고통스러운 영상은 사람이 봤기 때문에 ‘화제가’ 된다.

피해자는 ‘대응’할 틈도 없이 공론장의 한복판에 끌려나온다.


공유의 특징은 이것이다.
발신자보다 유통자가 더 많다는 것. 그래서 모든 폭력은 “내가 시작한 건 아니야”라는 말로 정리된다.

그런데 피해자는 안다. 정작 자신을 가장 아프게 한 건, 그걸 퍼뜨린 사람들의 무심한 클릭이었다는 걸.


사람들은 공유하면서 말한다.

“나도 방금 봤어. 너도 봐봐.”, “정말이래. 그렇다고 하더라.”, “진짜든 아니든 요즘 이런다더라.”


이건 정보 전달이 아니다. 소속감의 표현이다.

우리는 공유함으로써 ‘이 사건을 나는 알고 있다’는 증거를 남기고, ‘이 감정을 나도 느꼈다’는 리액션을 증명한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서 사람 한 명쯤은 무너져도 된다고 여긴다.

공유는 가해의 도구이자, 면책의 언어다.

“나는 만든 사람 아니니까.”, “모두가 보는 건데 뭐.”, “이미 떠돌고 있던 거라서.”

이 말들은 모두 한 문장으로 수렴된다.
“나는 책임 없다.”

그리고 그 말은 한 사람의 삶이 회복할 수 없게 부서진 후에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도록 만든다.


모두가 공유한 그 장면 뒤엔 누군가의 얼굴이 있고, 누군가의 관계가 있고, 누군가의 하루가 있다.

우리가 클릭한 순간, 그건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공유는 흔적이 남는다. 다만, 그 흔적을 감당하지 않는 사회가 문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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