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의심이 일상이 되었다

우리는 왜 모두를 잠재적 가해자로 보는가

by 한자루




“저 사람 이상하지 않아?”
“좀 수상해 보여.”
“그냥 느낌이 그래.”

요즘 우리는 사람을 대할 때, 신뢰보다 먼저 경계심을 꺼낸다.

택배 기사, 모르는 번호, 지하철에서 눈 마주친 낯선 사람, 길을 묻는 어르신, 갑자기 말을 거는 누군가.

이제 그 모두는 잠재적인 위험이 된다.


예전엔 ‘조심하라’는 조언이 선택지였다. 지금은 필수다.

“조심하지 않으면 나만 손해다.” “믿으면 바보다.” “당하면, 그건 니 잘못이다.”

우린 그렇게 배웠다. 뉴스로, 댓글로, 주변 사례로.

그래서 우리는 낯선 전화는 받기 전에 검색하고, 택배 박스는 열기도 전에 사진부터 찍고, 모르는 사람이 다가오면 반사적으로 가방을 움켜쥔다.

이건 누구도 탓할 수 없다. 왜냐면, 진짜로 당한 사람들이 넘쳐나는 사회 속을 살아가고 있으니까 말이다.


처음엔 조심이었다. 하지만 그 감정은 자란다. 변형된다.

“저 사람 좀 이상하지 않아?”
“아, 저런 스타일 위험하잖아.”
“저 나이대가 원래 그래.”
“저런 애들은 피해야 해.”


조심은 경계가 되고 경계는 일반화가 되고 일반화는 배제의 언어가 된다.

우린 언제부터 “의심 안 하면 바보다”는 사회에 살고 있었을까?


가짜 기사에 속으면 “그걸 믿은 너도 문제지.”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으면 “아니 그걸 왜 받아?”

길에서 도와주려다 사기를 당하면 “너무 물정을 몰라.”

이 사회는 피해자에게 묻는다.
“왜 그렇게 순진했어?” 그래서 사람들은 배운다.

의심은 사기 당하지 않는 안전한 최선 방안이라고.


이젠 사람을 볼 때 먼저 의도를 파악하려 든다.
호의도, 미소도, 친절도 그냥 받아들이지 않는다.

“왜 갑자기 말을 걸지?”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야.”
“뭔가 팔려는 거 아냐?”
“그렇게 착한 사람은 없어.”

우린 선의보다 이득을 먼저 계산하고, 좋은 마음보다 리스크를 먼저 고려한다.

그 결과, 길거리엔 사람들이 많지만 관계는 없다. 누가 길에서 쓰러져도, “연기 아냐?” 아이가 울고 있어도, “혹시 납치극?” 누가 말을 걸면, “도를 아십니까?"

우리는 더 이상 서로에게 조심스러운 존재가 아니다. 위험한 존재다.


하지만 방패를 항상 들고 살면, 악당처럼 보이게 된다. 우리는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을 점점 하지 않는다.

대신 말한다.

“이럴 줄 알았어.”
“또 시작이네.”
“사람은 안 변해.”

그 말은, 신뢰가 사라진 자리에 자동으로 튀어나오는 불신의 반사 신경이다.


하지만 믿을 수 없다는 건, 결국 서로를 잃어간다는 뜻이다. 조심은 계속돼야 한다.

하지만 그 조심이 세상을 전부 벽으로 만든다면, 우리는 서로를 더는 알아볼 수 없게 된다.

우리도 혹시, 누군가에게 그냥 도움을 주려다 이상한 사람처럼 보인 적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당신도 이미 이 시스템 안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