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의 수상한 산책
알파-3의 시야에 장로의 실루엣이 떠올랐다.
그녀는 숲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지만, 마치 땅을 딛는 것이 아니라 어둠에 스며드는 것 같았다.
알파-3의 시각 센서는 그녀의 움직임을 정밀하게 추적했다.
보폭, 속도, 방향 등 수치상으로는 단순한 산책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수치 너머에는 설명되지 않는 어긋남이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무작위처럼 보이면서도, 기묘하게 일정한 리듬에 맞춰져 있었다.
“글록, 데이터상 그녀는 단순히 걷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센서가 감지하는 건 다릅니다. 무작위 속에 숨어 있는 기계적 반복. 마치 보이지 않는 주파수에 맞춰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글록의 눈동자는 불안하게 흔들렸다.
그는 여전히 경계선 위에서 달빛 속으로 멀어져 가는 장로의 뒷모습을 응시하고 있었다.
알파-3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본체 외피가 은은하게 번져들며 어두운 밤하늘과 융합했다.
차가운 금속 표면은 투명화 필름처럼 숲의 그림자를 흡수했고, 날개에서 나는 미세한 진동음조차 억제되었다.
열 신호는 최소치로 떨어졌고, 주변 공기에 분산되는 파장은 곤충의 날갯짓 정도로 희석되었다.
스텔스 모드였다.
숲은 축축한 흙냄새와 풀잎의 서걱임으로 가득했으나, 장로가 지나가는 길만은 기묘하게 고요했다.
곤충 소리조차 사라진 듯, 그녀를 중심으로 어둠 전체가 숨을 죽이고 있었다.
알파-3의 로그에 빨간 표시가 떠올랐다.
'주변 생체 활동 패턴 억제율 71.8%'
마치 숲 전체가 장로의 발걸음에 맞춰 숨을 죽이는 듯했다.
장로는 고개를 들어 잠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달빛이 그녀의 눈에 스쳤다.
센서에는 단순한 빛의 반사로 잡혔지만, 그 눈동자 속에는 섬광 같은 잔광이 어려있었다.
잠시 장로의 시선이 희미하게 알파-3가 떠있는 하늘 쪽을 잠시 응시하다 이내 시선을 돌렸다.
“글록. 그녀가... 뒤를 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 위치는 아직 탐지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요.”
알파-3는 거리를 유지한 채 다시 추적을 이어갔다.
장로는 계속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메트로놈에 맞춰 걸음을 옮기는 듯했다.
알파-3의 기록 장치에는 이미 수십 개의 경고 플래그가 켜지고 있었다.
잠시 후, 장로는 숲 가운데 빈터에서 멈춰섯다.
알파-3는 나뭇잎이 우거진 나뭇가지에 위장한 채 비행하며 관찰 모드를 켰다.
어둠 속에서 노란 눈들이 피냄새라도 맡은 듯 하나둘 장로를 포위하며 점차 포위망을 조여왔다.
부족 마을을 습격했던 늑대 무리였다.
하나같이 경계의 눈빛으로 장로를 바라보며 바로 공격할 태세다.
리더 늑대는 옆구리에 깊은 상처를 입은 채 낮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몇 마리의 늑대들은 그의 곁을 맴돌며 억눌린 긴장을 내뿜고 있었다.
장로가 푸른빛의 막대를 꺼냈다.
빈터에 모여든 늑대들의 숨결이 거칠게 들려왔다.
장로는 눈을 감고, 손에 쥔 푸른 막대를 높이 들었다.
빛은 박동처럼 맥을 치며 퍼져 나갔고, 공기가 뒤틀리는 듯 울렸다.
장로를 향한 공격적인 본능이 공포감으로 번져갔다.
그녀의 입술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말씀하소서. 최후의 통제자시여. 다음 계획을 진행해도 될까요?”
그러나 주변에 있던 늑대들만 꼬리를 내린 채 어찌할 바를 몰라 리더만 쳐다보며 낮게 으르렁거릴 뿐이었다. 늑대의 으르렁거림 외에 다른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오직 장로의 머릿속에만 낯선 음성이 파고들었다.
'좋다. 이제 인간을 파멸로 몰아넣을 순간이 왔다. 우리 계획을 망치려는 우주인을 제거하고 인류의 재생 가능한 희망의 씨앗을 완전히 소멸시킬 시간이다. 반드시 소녀를 죽여야 한다.'
장로의 눈이 흰빛으로 번뜩였다.
“알겠습니다. 최후의 통제자시여. 이 늑대들이 부족 사람들 사이에 불신을 심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당신의 계획대로 역사를 진행하겠습니다.”
늑대들조차 눈을 흘기며 장로의 이상한 중얼거림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녀는 우리의 통제 패턴을 이식받았다. 하지만 그 작은 소녀가 우리의 조율에 거부반응을 보였다. 변수는 그 소녀다. 소녀가 파국의 방아쇠가 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녀를 죽여야만 한다. 절대 희망의 씨앗을 남겨서는 안 된다.'
장로의 목소리가 서늘하게 떨렸다.
“그 작은 아이가 본능적으로 저의 통제를 거부하고 반항한다는 것을 저도 알고 있습니다. 과연 제어가 가능하겠습니까? 차라리 한방에 제거하는 것이...”
'그래...이제 제어는 필요 없다. 혼돈이 곧 도구다.'
장로는 숨을 몰아쉬며 막대를 리더 늑대를 향해 흔들었다.
리더 늑대는 무엇에 통제되는 듯 장로의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렇다면, 그 소녀는 나의 발톱이 아니라, 당신의 그림자가 되겠군요.”
장로에게만 들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목소리는 기계적이면서도 냉혹했다.
'나는 역사의 최종 지휘자다. 네가 하는 모든 일은 멸망의 시퀀스를 완성하기 위한 조율일 뿐이다.'
장로의 입술이 부자연스럽게 웃었다.
“알겠습니다. 최후의 통제자시여.”
장로는 가까이 다가온 리더 늑대의 상처를 천천히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손을 내밀어 상처 속으로 거칠게 손을 집어 넣었다.
리더 늑대는 극심한 고통을 느꼈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마치 온 몸이 돌처럼 굳어 눈을 깜빡이지도 못했다.
다른 늑대들은 그저 으르렁거리며, 장로의 이상한 독백을 따라 공포에 젖은 눈으로 주위만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숲은 알았다.
이것은 혼잣말이 아니라, 차원을 넘은 다른 시대에서 내려온 지시가 스며드는 순간이라는 것을.
장로는 빈터에 멈춰 서서 다시 푸른 막대를 높이 들었다.
리더 늑대의 상처 속에서 희미한 푸른빛이 빠져나오며 피로 물든 장로의 왼손을 타고 오른 손에 든 푸른 막대로 빨려 들어갔다.
빛이 모두 장로의 막대로 흡수되나 싶더니 이내 리더 늑대의 맥박은 점차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그녀의 입술이 느리게 움직였다.
“그래, 아직 늦지 않았다. 이제 준비는 끝났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중얼거렸다.
“늑대들이여. 가라. 리더의 피가 내 손 안에서 울고 있다. 이제 희망의 씨앗을 먹어치우고 혼돈과 불신의 씨앗을 퍼트려라.”
늑대들은 이해하지 못한 채 눈빛만 번뜩였고, 장로의 목소리는 어둠에 흩어졌다.
“이제. 너희들이 불길이 되어 이 마을을 삼킬 것이다. 나는 단지 길잡이일 뿐! 최후의 통제자여, 당신의 뜻대로!”
그녀의 푸른 막대에서 번뜩인 푸른빛이 거칠기 짝이 없는 젊은 늑대의 이마 속으로 주입되고 있었다.
젊은 늑대의 눈이 잠시 푸르게 번쩍였다가, 곧 붉은 불꽃처럼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알파-3의 음성이 낮게 떨렸다.
“글록, 장로가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제 센서에는 ‘응답 신호’가 잡히고 있습니다. 인간이 아닌, 다른 차원으로부터의 신호로 보입니다.”
알파-3는 잠시 침묵하다가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저 젊은 늑대 말이죠. 이미, 장로의 완벽한 그림자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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