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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리아의 각성

장로의 폭주

by 한자루




땅이 터지는 듯 울렸다.
붉은 눈을 번뜩이며 튀어나온 늑대의 앞발이 공기를 찢었다.

글록이 몸을 틀자, 턱 밑을 스쳐 지나간 늑대의 송곳니가 허공에서 하얀 증기를 토했다.
냄새는 짐승의 숨결을 넘어, 썩은 피와 흙이 섞인 지독한 악취였다.

다시 땅에 닿은 늑대의 발이 진흙을 파헤쳤다.
흙탕물이 튀며 리아의 뺨을 덮쳤고, 리아의 눈동자가 공포로 얼어붙었다.

그러나 늑대는 멈추지 않았다.
피로 젖은 이빨 사이에서 거품이 일며 침이 흘러내렸다.
그 침방울이 공중에서 반짝이는 순간, 다시 폭발처럼 몸이 솟구쳤다.

글록의 손은 허리춤의 장비를 움켜쥐었지만, 늑대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늑대의 송곳니가 그의 팔뚝에 닿으며 보호복이 갈라지는 듯한 마찰음이 울렸다.
충격이 뼛속까지 파고들었고, 그 힘에 글록의 어깨가 꺾이며 땅 위로 굴러 떨어졌다.

젊은 늑대는 누런 이를 드러내고 뒷 발의 근육에 온 힘을 집중했다.

금방이라도 날아들어 글록과 리아를 물어뜯을 기세였다.

한편 언덕 아래에서는 아침부터 보이지 않는 리아를 찾는 리아 엄마의 발걸음이 분주했다.

그러다가 언덕 위에 글록과 리아가 위험에 처한 모습을 보고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그 비명 소리에 부족 사람들도 언덕 위로 시선을 모았다.

다급한 상황을 알아챈 부족 사람들은 이내 돌도끼와 몽둥이를 들고 언덕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인류가 생존하며 성장했던 동력은 서로를 지키려는 따뜻한 마음과, 두려움을 함께 이겨내려는 연대였다.

그러나 언덕 위에 당도한 사람들은 광분해서 날뛰는 늑대 무리의 기세에 눌려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 채 그 광경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젊은 늑대는 부족 사람들이 몰려오자 더욱 분노에 찬 눈빛으로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시간을 끌면 불리하다는 것을 알았는지 글록을 향해 또 한 번 뛰어올랐다.

그 찰나, 리아의 입술이 떨리며 미세한 숨결이 흘러나왔다.

“안돼. 그만해... 멈춰. 제발!”

소리는 너무 약해, 인간의 귀로는 잡히지 않을 만큼 희미했다.
그러나 그 말은 소리가 아니라, 진동이었다.

뼈와 피, 공기마저 흔드는 미세한 파장이 늑대의 신경계를 꿰뚫었다.

광분하던 턱이 갑자기 공중에서 멈추더니, 늑대의 발톱이 허공을 긁은 채, 땅 위로 나가떨어졌다.

핏발 선 숨소리가 흐트러지고, 그 몸은 미세하게 떨렸다.

알파-3의 시스템에 경고창이 잇달아 떠올랐다.

주파수 간섭 감지
패턴 유사율 87%, 장로의 동일한 신호 데이터.


알파-3의 목소리가 격앙되었다.
“글록! 리아의 목소리 주파수가 장로의 주파수와 일치합니다. 저 아이, 장로와 같은 파장의 주파수로 늑대를 통제하고 있어요.”

글록은 혼란 속에서 소름 끼치는 진실을 느꼈다.

‘이 아이가... 늑대를 멈췄어. 이것은 희망인가, 장로의 조작인가?’

글록의 심장이 묘하게 죄어왔다.
리아의 얼굴 위로 피로와 공포가 뒤섞였지만, 그 눈빛은 분명히 살아 있었다.
죽음의 그림자를 밀어내고, 불가능한 희망을 불러내는 듯한 눈빛.

순간, 공터 전체가 숨을 죽였다.
늑대조차 더 이상 울부짖지도 못한 채, 그 작은 소녀의 한마디에 묶여 있는 듯했다.

그것이 희망이든 조작이든 이제 역사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둠은, 더 깊은 침묵으로 닫혀가는 것 같았다.


늑대는 몸을 떨며 뒷걸음을 치고 있을 때 부족 사람 중 누군가가 늑대를 향해 돌을 던졌다.

그러자 사람들의 손에서 돌도끼며, 돌창이 늑대를 향해 던져졌다.
늑대들의 눈동자 속엔 공포와 분노가 동시에 뒤엉키며 뒷걸음질 치다가 이내 숲으로 달아났다.

늑대들이 숲으로 사라지자 부족 사람들의 시선은, 리아에게 꽂혔다.
짧은 순간, 어린 소녀의 존재가 늑대를 멈추게 한 광경은 그들의 믿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저 아이가... 늑대를 멈췄다.”

“신의 기적이다.”

그러나 한편에서 낮은 웅성거림이 터져 나왔다.

“아니야, 저건 불길한 징조야... 늑대가 아침부터 나타난 것도 그렇지만 늑대가 리아의 말에 복종하다니 리아는 악마에게 먹힌 것이 분명해.”

어느새 나타났는지 장로는 사람들 뒤에서 눈을 가늘게 뜨며 그 흐름을 놓치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기적과 저주, 둘은 언제나 같은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저 아이는 악마의 저주를 받고 말았군요. 그 힘은 저 아이의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세요. 내가 저 아이를 회복시킬 것입니다.”

그 말은 진정처럼 들렸지만, 그 속엔 “이 아이를 의심하라.”는 암묵적인 유도가 담겨 있었다.

리아는 뺨에 말라붙은 진흙을 닦지도 않은 채 고개를 숙였고, 글록은 그녀 앞에 서서 사람들의 시선을 받아냈다.

그때 마을에서 한 소년의 다급하게 언덕 위로 달려오며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와주세요! 우리 집에 염소 두 마리가 죽었는데 뭔가 이상해요!”

부족 사람들은 또 무슨 일이 생겼는가 하여 소년을 따라 우르르 마을 쪽으로 몰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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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란 캔버스 위에 사색을 담고, 감성으로 선을 그어 이야기를 만듭니다. 제 글이 누군가에게 작은 쉼표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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