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하나님의 계획과 자수의 뒷면

고난을 해석할 언어를 잃어버렸을 때

by 한자루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바라게 하시고, 그 일을 실제로 하도록 힘도 주십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




살다 보면 누구나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말이 유난히 무겁게 느껴지는 순간을 만납니다.
간절히 두드리던 문이 이유 없이 닫힐 때, 이해할 수 없는 상실이 삶을 덮칠 때, 우리는 하늘을 향해 묻게 됩니다.

“이것이 정말 하나님의 계획입니까? 그렇다면 왜 이렇게 아픈 것입니까?”

신앙을 가진 이들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고난 그 자체보다, 그 고난을 해석할 언어를 잃어버렸을 때 찾아오는 막막함일지도 모릅니다.

의미가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하나님과 삶 사이에서 길을 잃은 기분이 듭니다.


우리는 종종 인생을 하나의 자수에 비유합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언제나 그 자수의 뒷면입니다.
엉켜 있는 실, 이해할 수 없는 매듭, 방향 없이 가로지르는 선들.
아무리 들여다봐도 그림은 보이지 않고, 실패한 작품처럼 느껴질 뿐입니다.

그러나 뒷면의 엉킴은 앞면의 무늬를 완성하기 위한 과정입니다.
끊어진 것처럼 보이는 실도 사실은 다른 색의 실과 연결되어 있고, 무질서처럼 보이는 매듭도 결국 하나의 형상을 떠받치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앞면을 볼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묻게 됩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면, 도대체 그 계획을 나는 어떻게 압니까?”

우리의 고민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분명히 있다면, 왜 그것은 아버지처럼 옆에 앉아 “너는 이 학과로 가면 좋겠다.”, “이번에는 이 선택을 해라.” 이렇게 물리적으로 확인 가능한 방식으로 주어지지 않는 걸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을 자주 완성된 설계도로 상상합니다.
이미 정해진 답이 있고, 우리는 그것을 맞히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꾸 묻습니다.
“이게 맞습니까?”, “저게 하나님의 뜻입니까?”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계획은 그런 방식이 아닙니다.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기성품처럼 포장해 건네주신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설계도라기보다 동행에 가깝습니다.
어디로 갈지 미리 다 보여주는 지도라기보다, 어두운 밤길에서 발밑만 비추는 작은 등불과 같습니다.

한 걸음을 내디뎌야 다음 빛이 주어지고, 멈춰 서 있으면 길은 여전히 어둡습니다.

씨앗이 땅에 심겨질 때를 떠올려 봅니다.
어둠 속에서 보내는 시간은 버려진 시간이 아니라, 뿌리를 내리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결과보다 과정을, 목적지보다 함께 걷는 시간을 더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묻는 질문 속에는 종종 숨은 마음이 있습니다.
사실은 방향을 알고 싶다기보다, 책임을 피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라고 하셨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혹시 실패하더라도 그 짐을 덜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미 마음속에 욕심이 있는데, 그 욕심을 정당화할 명분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펼치지만, 그 성경을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답을 뽑아내기 위해 읽고 싶어 집니다.

그러나 성경은 점괘가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 직장을 택해라.”, “저 길로 가라.”는 식의 즉답을 주지 않습니다.
대신, 성경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줍니다.

말씀을 읽다 보면 우리는 점점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사랑하시는지, 무엇을 아파하시는지, 어떤 삶의 방향을 기뻐하시는지.

그렇게 하나님을 이해하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습니다.

“아, 나는 이런 삶을 살아가고 싶다.”

“이 선택은 내 욕심만을 키우는 길인 것 같다.”
“이 길은 힘들지만, 내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을 것 같다.”

그때 비로소 하나님의 뜻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명령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자라나는 분별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성과 사고를 실수로 주신 분이 아닙니다.
생각하지 말고 끌려다니라고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분별하며 살아가라고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소원을 두시고, 그 소원을 행하게 하신다고.

하나님은 밖에서 우리를 두드려 펴며 조종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으로 다가오셔서, 새로운 열망과 새로운 기준을 심어 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획은 어느 순간 보면 내 생각을 정돈해 가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그 생각이 내 욕망을 중심으로 정돈되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묻는 방향으로 정돈되는가.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변화된 마음으로 하나님이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검증해 보아야 합니다.

뜻은 미리 완성되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며 확인하고, 때로는 수정하며,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두 개의 길이 놓여 있을 때가 있습니다. 한 곳은 연봉이 높고, 다른 한 곳은 시간이 조금 더 자유롭습니다.
한 길은 안정적이고, 다른 길은 불확실합니다.

그때 우리는 기준을 세웁니다.
그 기준이 돈인지, 시간인지, 가족인지, 신앙인지, 혹은 이 모든 것의 균형인지.

중요한 것은 선택 그 자체보다, 그 선택을 가능하게 만든 기준입니다.

모든 선택이 도덕적 시험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경우에는 이 길로 가도, 저 길로 가도 괜찮을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불안해서 자꾸 하나님의 뜻을 묻습니다.
혹시 나중에 “왜 그렇게 했느냐.”라고 책임을 물을까 봐 두려워서입니다.

그러나 이미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내가 정직하게 고민하고, 기도하며, 최선을 다해 내린 결정은 그 자체로 하나님 앞에 올려 드릴 수 있는 선택입니다.

실수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회개의 제목이 되고, 다시 길을 조정하면 됩니다.
그 과정마저도 하나님의 계획 바깥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은 아직 쓰이고 있는 소설과 같습니다. 중간 장만 읽고 그 결말을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당신이 붙잡고 있는 이 고통스러운 문단은, 훗날 누군가에게 가장 깊은 위로가 되는 문장이 될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묻고 있는 당신에게 이렇게 말해 주고 싶습니다.

모든 것을 이해하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앞면을 보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오늘 내 앞에 놓인 이 한 걸음을 정직하게, 성실하게, 하나님을 향한 마음으로 걸어가십시오.
그 길 위에서 하나님은 이미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어느 날 갑자기 알려지는 비밀문서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통해 천천히 읽혀 가는 이야기입니다.

아직 마침표가 찍히지 않았기에, 우리의 이야기는 여전히 소망을 품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