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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cide Mio Aug 30. 2024

검은 고양이 네로

며칠 전 저와 비슷한 또래의 이탈리아인 친구와 이탈리아 칸소네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둘 다 그 시기 음악을 좋아하던 터라 여러 가수와 그들의 노래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60년대 말과 70년 대 초 한국에서 이탈리아 칸소네가 인기 있었다는 이야기, 한국 가수들이 이탈리아 칸소네에 한국 가사를 붙여서 불렀다는 이야기 등을 했지요. 그러다가 성인들을 위한 노래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의 동요도 한국에서도 불린 적이 있다는 기억을 했습니다.


1970년에 한국에서 박혜령이라는 어린이가 불러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노래가 있습니다. 기억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요. "검은 고양이 네로"라는 노래인데 저도 어린 시절에 어른들이 시켜서 불렀던 기억이 있습니다. 부끄러움을 많이 탔지만 노래를 하면 10원이라는 '거금'을 주겠다는 유혹에 빠져 종종 부르곤 했었죠.  춤까지 추면 10원을 더 얹어 주겠다고 했지만 그건 차마 못하겠더군요.

https://www.youtube.com/watch?v=GtduAiKZP8o


이 노래의 인기와 관련하여 당시 '선데이 서울'이라는 잡지에는 아래와 같은 기사 가 실렸었습니다.

「이탈리아」의 「칸조네」 한국판 『검은 고양이 네로』가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며 「베스트·셀러」로 등장. 홍현걸(洪鉉杰) 역사·편곡에 5살짜리 박혜령 양이 부른 이 노래가 의외의 좋은 반응을 불러일으키자 몇몇 「레코드」사에서는 뒤쫓아 『검은 고양이-』제작에 열을 올리고 있는가 하면 이를 복사한 도용판까지 등장하고 있는 판국이다.
맨 처음 「디스크」를 낸 지구(地球)는 판을 찍기가 무섭게 팔려 『동백아가씨』이후의 경기라고 즐거운 비명을 올리고 있다. 정확한 숫자는 밝히지 않고 있으나 발매 2주 만에 1만 장 정도는 팔렸을 거라는 추측.
『유아(幼兒)를 상품화시켰다』는 비난(?)이 없지도 않으나 『아이들도 좋아하고 어른들은 귀엽게 받아들여 화제가 되고 있다』는 것이 이 노래의 역사(譯詞) 편곡 그리고 박양을 「픽·업」한 작곡가 홍현걸 씨의 말이다.
지구「레코드」사 쪽은 『검은 고양이 네로』복사판이란 것을 내세울 뚜렷한 증거물은 입수하지 못했으나 「크리스머스·카드」 형식으로 「레코드」에 복사된 『검은 고양이 네로』의「소니·시트」가 대학가 주변에서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는 것.
『검은 고양이 네로』는 서울뿐만이 아니고 차차 지방 도시에 까지도 파급되면서 「붐」을 일으키고 있다.
그래서 최근 계속 「슬럼프」 상태였던 지구「레코드」를 돈방석위에 올려놓게 되었다고.
[선데이서울 70년 12월 6 일호 제3권 50호 통권 제114호]

https://web.archive.org/web/20090815180300/http://www3.seoul.co.kr/news/newsView.php?id=20070730550004

한국에서 알려진 이 노래의 원곡은 1969년 이탈리아에서 발표된 "Volevo Un Gatto Nero"라는 노래입니다. 1959년부터 이탈리아에서는 "제키노 도로(Zechhino D'oro)"라는 이름으로 어린이 동요제를 매 년 개최했는데 1969년 이 대회에서 1등을 한 노래가 바로 빈첸자  파스토렐리(Vincenza Pastorelli)라는 어린이가 부른 이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소개된 직후 유럽 전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국에도 바로 그다음 해에 노래가 번안되어 소개되었지요.


인터넷과 각종 통신망으로 연결이 된 21세기가 아니라 1969년에 이렇게 빨리 유럽의 노래가 한국에 소개되었다는 것이 의아할 정도입니다. 물론 이 노래가 당시에 일본에서 먼저 엄청난 인기가 있었다는 점이 한국에서도 인기를 얻은 이유가 될 수 있을는지는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과 일본의 문화 교류가 공식적으로 쉽지 않았던 시기라고 알고 있습니다.    


한국어 판에서는 "네로"가 고양이의 이름이 되었지만 이탈리아어에서 '네로(nero)'는 검은색을 의미하는 형용사입니다. 그래서 가또 네로(Gatto Nero)라고 하면 "검은 고양이"라는 의미이지요. 노래의 원 제목 "Volevo Un Gatto Nero"는 "나는 검은 고양이를 원했는데" 정도로 번역이 됩니다. 노래도 노래지만 원곡의 가사 역시 재미있어 아래에 소개해 봅니다.


Volevo Un Gatto Nero


Un coccodrillo vero, un vero alligatore

ti ho detto che l'avevo e l'avrei dato e te.

Ma i patti erano chiari: il coccodrillo a te

e tu dovevi dare un gatto nero a me.

진짜, 진짜 악어 한 마리, 내가 가지고 있는 그걸 네게 주겠다고 그랬잖아.

하지만 우리 계약은 분명했어.

너에게는 악어를 주고 대신에 내게는 검은 고양이 한 마리를 주기로 했잖아.


(후렴)

Volevo un gatto nero, nero, nero,

mi hai dato un gatto bianco ed io non ci sto più.

Volevo un gatto nero, nero, nero,

siccome sei un bugiardo con te non gioco più.

검은 고양이를 원했었는데 너는 하얀 고양이를 내게 주었고  난 이상 너를 참을 수가 없어.

검은 고양이를 원했었는데 너는 거짓말장이니까, 더 이상 너랑은 안 놀 거야!


Non era una giraffa di plastica o di stoffa:

ma una in carne ed ossa e l'avrei data e te.

Ma i patti erano chiari: una giraffa a te

e tu dovevi dare un gatto nero a me.

플라스틱이나 천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진짜 살아있는 기린을 네게 준다고 했잖아.

하지만 우리 계약은 분명했어

너에게는 기린을 주고 대신에 내게는 검은 고양이 한 마리를 주기로 했잖아.


<후렴>


Un elefante indiano  con tutto il baldacchino:

l'avevo nel giardino  e l'avrei dato e te.

Ma i patti erano chiari: un elefante a te

e tu dovevi dare un gatto nero a me.

가마까지 달린 진짜 인도코끼리 한 마리가 우리 정원에 있고 네게 그걸 준다고 했잖아.

하지만 우리 계약은 분명했어

너에게는 코끼리를 주고 대신에 내게는 검은 고양이 한 마리를 주기로 했잖아.


I patti erano chiari: l'intero zoo per te e tu dovevi dare un gatto nero a me.

Volevo un gatto nero, nero, nero, invece è un gatto bianco  quello che hai dato a me.

Volevo un gatto nero,  ma insomma nero o bianco il gatto me lo tengo e non do niente a te.

우리 계약은 분명했어. 동물원 하나를 통째로 네게 주고 대신에 너는 내게 검은 고양이를 줘야만 했어.

검은 고양이를 원했었는데 네가 내게 준 것은 하얀 고양이였어.

검은 고양이를 원했었는데,..

검든 히든 고양이는 어쨌든 내가 가질 거야. 그리고 네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을 거야.   


노래의 마지막까지 들어보시면 아시겠지만 분명 이건 쌍방에서 계약을 위반한 겁니다. 과연 악어, 기린 혹은 코끼리를 집에 가지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검은 고양이와 맞교환이 될 수 있는 비슷한 가치가 있는지는 의문입니다만 검은 고양이를 가지고 싶어 하는 어린이의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마음이 그려지시지요?

   

"제키니 도로(Zechhino D'oro)"라는 이 대회는 아직까지도 매 년 개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1976년부터는 국제적인 대회로 확대되어 이탈리아의 동요와 함께 다른 외국의 동요도 소개가 된다고 합니다. 아래에는  1969년 "제키니 도로(Zechhino D'oro)"에서 빈첸자가 불렀던 '검은 고양이 네로'입니다. 이 노래를 들으시면 이 대회의 성격을 단박에 아실 수 있습니다. 노래를 들으시는 분들의 얼굴에 떠오르는 미소가 상상이 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EYkPlHT3f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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