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에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그해 마지막 날에 포스팅했던 글을 찾았습니다. 그 글에서 인터넷의 미래, 정확히는 2020년의 인터넷에 대한 전문가들의 예상을 소개했는데 2020년으로부터 4년이나 지난 지금 과연 그 예상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한 번 살펴보고 싶었습니다. 2006년에 올렸던 제 포스팅을 바탕으로 그 아래에 지금 생각하는 것을 적어보겠습니다. 2006년 무렵을 기억하시는 분들이시라면 한 번 그때를 회상해 보시지요.
지난 9월에 Pew Internet & American Life Project에서는 2020년의 인터넷에 대한 전망을 현재 인터넷과 관련된 일에 종사하고 있는 700여 명의 전문가들에게 물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예상들이 나왔는데 그 가운데 많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동의한 내용들을 소개해 봅니다. 과연 이 사람들의 전망대로 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이것을 통해 우리도 인터넷의 미래 모습을 한 번 예상해 보고, 할 수만 있다면 그러한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1. 저렴한 광대역 네트워크가 더욱 확장되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인터넷을 제공하게 될 것이고 이것이 통해 전 세계를 무대로 경쟁하고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평등한 정보 고속도로를 반대하는 세력들도 있는데 그들은 대기업과 정부 권력들로서 기존의 통신 수단에 대한 독점권을 인터넷으로 확대하려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포스팅을 올리는 저는 미국의 뉴욕 주 북부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한국에도 계시고 아마 세계의 다른 곳에서 보시는 분들도 계시겠지요. 지리적인 거리는 점점 더 의미가 없어지고 있고 이것은 2020년이 되면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크레디트 카드를 비롯한 미국의 각종 서비스 회사에서 사용하는 24시간 고객 서비스 전화번호들이 사실은 인도에 있는 교환원들을 연결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는 분들은 많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미국에서 야간에 근무하는 교환원을 고용하는 것보다는 저렴해진 통신 기술을 이용해 인도에서 영어를 할 줄 아는 싼 노동력을 이용하는 것이 회사로서는 훨씬 더 경제적이기 때문이라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지리적인 공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예입니다.
광대역 네트워크가 제공하는 기회들은 이제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디지털 노매드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인터넷이 연결된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늘었습니다. 그리고 코로나 기간 동안 확대되기 시작한 원격 근무는 돌이키기 힘든 경향이 된 것 같습니다. 물론 서서히 예전의 직장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지만 그대로 돌아가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네트워크의 확장이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혜택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분명해집니다. 나라마다 기반 설비의 차이가 있는 점도 이유가 되겠지만 한 나라 안에서도 계층에 따라 네트워크와 컴퓨터 기술의 활용이 균일하게 퍼져있는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활용하는 일은 이용자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기도 합니다만 그러한 기술을 모든 사람이 쉽고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려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정보 기술의 전문가는 아니며 사람마다 배우고 이해하는 방식이 다르고 처한 환경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기업이 하는 것은 사적인 영역이므로 제외하더라도 정부나 공공 기관에서 이러한 최신 기술과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국민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때 반드시 명심해야 할 부분입니다. 기술의 혜택이 공평하게 모든 이들에게 돌아갈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단순한 기술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그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이 가진 생각과 원칙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99%의 이용자들이 다 문제가 없으니 정보 접근에 어려움을 겪는 1% 를 무시해도 좋을지 아니면 단지 1%라고 하더라도 그들을 고려하여 100%,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지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어려움을 겪는 1%의 사람들까지도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면 나머지 99%도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입니다.
2. 비록 컴퓨터가 알아서 업무를 처리하는 자동화가 더욱 진행이 되겠지만 2020년에도 여전히 인간이 기술을 지배하고 있을 것이라 합니다. 하지만 응답자들 중의 42%는 미래의 인간이 기술을 통제하는 능력에 대해 비관적인 응답을 했다고 합니다. 점점 기술에 의존함에 따라 이로 인한 위험성도 증가할 것이라 하는군요. 즉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통제력을 넘어설 수도 있다는 전망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그 기술을 적절하지 못한 방법으로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80년대에 개봉되었던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터미네이터가 날아온 미래가 2029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으스스하군요. 제가 기술적인 문제에는 문외한이라 하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이러한 상황은 인간이 통제력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편리하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 기술에 대한 통제를 포기할 때 발생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그것에 영향을 받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더욱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예상도 아직까지는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2006년의 전문가들 중에서 인공 지능의 등장과 그것이 우리 사회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한 사람은 많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공 지능의 등장과 함께 위에서 언급한 위험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기계에 의존하면 편하고 빠르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겠지만 과연 그 과정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언제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런 일에는 기술적인 지식도 도움이 되겠지만 그것과 함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공감 능력도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인간에 대한 이해와 가치 존중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언제라도 기계에만 의존하는 세상으로 갈 수 있고 또 그 길은 밝고 쉽게 갈 수 있게 보입니다. 하지만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 언제나 조심하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3. 2020년에 인터넷을 사용할 이용자들은 더욱더 종합적이고 기술적으로 진보한 가상현실의 세계를 접하게 될 것이고 이것은 근로자들의 생산력을 높이는 등 많은 이들에게는 혜택으로 나타나겠지만 이로 인해 새로운 중독의 문제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가상현실에 중독되는 것으로 인한 피해는 이미 여러 사람들에게서 나타나고 있으니 부연할 필요가 없겠지요. 어쩌면 저도 블로그에 중독되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인터넷 서비스 제공 회사의 문제로 집에서 이글루스를 접속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사무실 컴퓨터를 가상 네트워크로 연결하여 이 해가 가기 전에 이 글을 꼭 포스팅 하겠다고 안간힘을 쓰고 있으니 말입니다.
컴퓨터와 네트위크를 이용한 정보의 공유, 그리고 최근 등장한 인공 지능까지, 우리고 의존하고 있는 기술과 기계들을 생각한다면 2006년의 경고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하겠습니다. 당장 저만 하더라도 2006년에는 차로 처음 가는 곳을 여행할 때 늘 지도를 가지고 다녔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길을 잃고 헤매기도 했지만 그것도 즐거운 경험으로 치면서 웃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내비게이션의 안내 없이는 이미 한두 번 가본 곳도 다시 찾아갈 때는 헤매고 있고 또 안내가 불명확하거나 내가 제대로 안내를 알아듣지 못해 길을 잘 못 찾으면 예전에 느끼지 못하던 짜증과 분노를 느낍니다. 중독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더 이상 기계가 없이는 일을 하지 못하게 되는 상태는 결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겠지요.
위에서 말한 개인의 "중독" 뿐만 아니라 네트워크를 통해 늘 접하는 정보와 기술들로 인해 만들어지는 각 종 사회 문제들을 생각해 보면 일부 개인이 겪는 중독 이상의 문제들이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듯합니다.
내가 동의하고 좋아하는 정보만을 접하면서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을 무시하거나 심한 경우 악마화하면서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은 이전보다 훨씬 더 증폭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거짓 정보들을 믿고 내리는 결정과 그것을 믿고 실제 현실에서 행동하는 이들이 일으키는 사건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자극적인 정보들을 받아들이면서 나 자신도 점점 더 자극적인 정보만 찾고 그것들에 대한 나의 반응도 점점 더 극단적으로 변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돌이켜 볼 때가 많습니다.
4. 정보 과잉에 대항해서 더 나은 삶의 방법으로 네트워크와 무관하게 살아가는 삶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구성하고 살아갈 것이며 이들 중의 일부는 기술적인 발전에 대항해 테러와 같은 폭력적인 행동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사실 기술적인 발전에 대한 저항은 19세기 산업 혁명의 시기에도 있었습니다. 물론 그때는 기계로 인해 오히려 삶이 어려워진 사람들에게서 반대 운동이 생겨났지만 인터넷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성향은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제 주위에도 이메일을 거부하는 사람이 몇 명 있습니다. 정부가 자신들의 이메일과 통신 내용을 도청하고 있다고 믿고 가능한 한 자신의 존재를 네트워크상에 노출시키지 않으려 하더군요. 그런데 제가 도서관 일을 하면서 배운 것 중의 하나는 이러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최대한 남들과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도서관의 서비스 정신이었습니다.
99%의 이용자가 이메일을 사용하고 이메일을 통해 도서관의 모든 사항을 전달받지만 나머지 1% 의 사람들을 위해 여전히 전통적인 편지를 이용한 정보 전달을 하고 또 이들도 도서관의 모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고 있습니다. 기술적인 사항을 서비스 제공자가 일방적으로 정하고 서비스를 받는 이용자들이 무조건적으로 따르기를 명령하는 어느 나라 은행과 공공기관의 온라인 서비스와는 출발점에서부터 많은 차이가 있는 생각이었습니다.
기술적인 발전에 대한 테러를 하는 이들은 아직 등장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피해를 입는 이들이 생기고 그들의 움직임이 늘어난 것도 사실입니다. 지난해에 인공 지능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방송 콘텐츠에 우려하면서 할리우드의 작가들이 파업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이들에게 유리한 협약이 맺어졌다고 하는데 이런 일이 점점 더 많아지지 않을까요?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세상 속에서 남들과 살아가기 위해서는 정보 기술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도 사실입니다. 저 역시 때로는 불만스럽고 불안하지만 다른 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메신저나 SNS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좋은 정보를 얻고 긍정적인 결과를 찾기도 하지만 때로는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스스로 가질 때도 있습니다.
적어도 제가 하고 있는 행동에 대해 스스로 계속해서 살피면서 조심하려고 애쓰고 있고 특히 그런 기술을 이용하지 않거나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고려는 늘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 직업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런 이들을 소외시키는 결정은 최대한 피하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그런 결정을 내려야 한다면 별도의 다른 방법을 만들어서라도 그들을 포함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모든 이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세상입니다.
5. 사람들은 의도적이던 의도적이지 않던 자신의 신상 정보를 더 많이 공개하게 될 것이고 이처럼 프라이버시를 잃는 대가로 일부 혜택도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미래가 더 나은 사회가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응답자들의 의견이 반으로 갈렸습니다.
미국인들에게 프라이버시에 관한 문제는 언제나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 앞에 더 이상 프라이버시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나 마찬가지가 되어버렸죠. 물론 많은 사람들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아서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않지만 현재의 기술과 능력으로도 정부는 국민들의 여러 면을 감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화 회사들이 통신 기록을 고스란히 정부 기관에 제공을 하고 그것에 대해 일반인들이 그리 큰 저항을 하지 않는 것이 9/11 이후의 미국입니다.
애국법이 제정된 이후 미국 도서관계에서 문제 삼았던 것 중의 하나는 이 법 이 도서관의 대출 기록을 정부에서 볼 수도 있게 허용한다는 점이었는데 이미 현재 가진 기술만으로도 도서관을 방문해서 영장 제시하고 하는 일 없이 정부에서는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행할 수 있으니 더 큰 문제이지요. 그래서 사서들 간의 이야기는 "바로 그것 때문에라도 더욱 목소리를 높여서 이 법을 반대하 여 기술을 가진 정부가 그 기술을 남용할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야기가 조금 다른 곳으로 흘렀습니다만 프라이버시에 관해서는 아마 미래에도 여전히 논쟁이 계속될 것 같습니다.
프라이버시에 관한 이야기는 이제 오래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프라이버시는 없다고 자조적으로 말하는 이들이 많을 만큼 우리 개인의 정보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남들에게 알려지고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어떤 서비스나 상품을 무료로 사용하고 있다면 여러분이 즉, 여러분의 관심과 시간, 그리고 개인 정보가 바로 그 기업에서 다른 곳에 파는 상품입니다. 우리의 관심과 시간은 광고와 연결이 되고 인터넷 웹브라우저를 통해 수집되는 나의 정보는 데이터가 되어 팔리고 있습니다. 결국 프라이버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게 되어 버렸습니다.
물론 내가 원해서 공개하는 개인정보는 저의 선택이니 그렇다고 치더라도 내가 원하지도 않은, 혹은 나도 모르고 있는 사이에 공개되고 공유되는 개인 정보는 여전히 많습니다. 과연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할까요? 이런 상황에서도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다음 글에서는 그 이야기를 해보아야 갰습니다.
2006년의 예상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크게 어긋난 것은 아닌 듯합니다. 그리고 기술 발전의 속도를 생각하면 10년 아니 5년 후의 세상도 예상하기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2006년 마지막 날에 제가 생각했던 것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때 제가 가졌던 마음과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새해에도 인터넷에는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고 과연 다음 달에 어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여 우리들의 이목을 끌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터넷으로 연결된 무수한 컴퓨터들 앞에는 나와 똑같은 사람이(인간이) 앉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우리가 접하는 것이니 결국 인터넷은 사람 '인'자 인터넷입니다.
사람에 대한 기존의 가치는 아무리 인터넷이 발전한다고 하더라고 바뀌지 않을 것이고 또 바뀌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제 블로그를 방문해 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드리는 새해 인사로 제가 바라는 새해의 모습을 그림으로 담아 보냅니다. 최근 몇 년간 매 달 리더스 다이제스트 잡지의 뒷 커버에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린 C.F. Payne의 그림 중 "Word Power" 란 작품입니다. 긴 설명이 없더라고 그림을 보시면 쉽게 의미를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그리고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