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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cide Mio Jul 08. 2024

카루소와 달라

엔리코 카루소(Enrico Caruso, 1873-1921)는 이탈리아의 항구 도시인 나폴리에서 태어나 유럽과 미국을 무대로 활약한 테너 가수입니다. 1895년 부터 본격적인 테너 가수로서 활동을 시작한 그는 1900년에 오페라 무대의 최고로 꼽히는 밀라노의 스칼라 극장에서 당시 최고의 지휘자 중 한 사람인 아르투로 토스카니니가 지휘하는 오페라 무대에 데뷔를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1903년 뉴욕의 메트로 폴리탄 오페라에 처음 출연한 이래, 1920년 까지 거의 매 년 메트로 폴리탄 오페라의 시즌 개막작에 주연을 맡았습니다.


카루소가 특히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것은 20세기 초반에 등장한 축음기와 녹음 기술의 발달에 힘입은 바가 큽니다. 축음기의 보급과 함께 그의 레코드는 공연장을 찾지 못하는 일반인들의 가정에도 보급되었고 이를 통해 카루소는 20세기 초반 클래식과 대중 음악을 통틀어 수퍼 스타가 되었으며 그의 이름은 테너의 대명사가 됩니다.


아래에 링크된 곡은 카루소가 부르는 레온 까발로의 오페라 팔리아치 중에서 '의상을 입어라(Vesti La Giubba)' 입니다. 자신의 고통과 슬픔은 뒤로 한 채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하고 관객들 앞에서 광대 역을 해야 하는 까니오(오페라의 주인공 이름)의 노래는 어쩌면 카루소 자신의 노래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노래 중간에 나오는 웃음 소리는 결코 기뻐서 웃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한숨이라고 해야겠지요. 그리고 이 노래는 제가 본격적으로 하려고 하는 이야기와 많은 관련이 있습니다. (아래의 영상은 무성으로 찍은 화면에 소리를 덧붙인 클립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Rg7jtp8WP0


1921년 카루소는 늑막염으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전해집니다. 한 해 전 뉴욕의 무대에서 세트가 쓰러지면서 콩팥에 상처를 입었고 그 후 페렴이 찾아와서 심각한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습니다. 하지만 1921년 봄이 되면서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되었던 카루소는 가족들과 함께 이탈리아로 돌아왔고 나폴리 만 건너편에서 자신의 고향인 나폴리를 마주보고 있던 쏘렌토라는 도시의 한 호텔에서 요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그의 상태가 여름이 되어 갑자기 악화되면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당시 이탈리아의 국왕이었던 빗토리오 엠마누엘레 3세는 왕실의 대성당을 열어 그의 장례식을 치렀고 방부처리된 그의 시신은 유리로 만들어진 관에 담겨 나폴리로 옮겨져서 그 후로도 한 동안 사람들의 조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때 그의 나이가 마흔 여덟, 세상을 떠나기에는 너무나 젊은 나이였습니다. 물론 그 후에도 그는 20세기를 대표하는 테너로 알려져 왔지만 다시 한 번 그의 이름이 클래식을 자주 접하지 않는 일반인들의 입에 오르게 된 것은 1986년 루치오 달라(Lucio Dalla, 1943-2012) 라는 이탈리아 가수가 카루소의 이름을 제목으로 한 노래를 발표하면서 부터입니다.


카루소가 세상을 떠나고 20 여년이 지난 1943년 볼로냐에서 태어난 루치오 달라는 재즈 밴드에서 클라리넷 연주자로서 음악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음악적인 재능을 알아본 지인들의 권유로 그는 본격적인 가수로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루치오의 첫 번 째 히트곡은 1971년에 발표한 “1943년 3월 4일생”이라는 제목의 노래인데 이 노래에서는 한 미혼모의 아들이 자신이 태어난 이야기와 자신의 삶에 대해 담담하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1943년 3월 4일은 루치오 달라의 생일이기도 한데 루치오 역시 7 살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는 일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이 노래의 작사가는 원래 제목이었던 “아기 예수(Gesu' Bambimo)” 에서 루치오의 생일을 제목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아래는 1971년 산레모 가요제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 루치오 달라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5FTMTbVpoI


그런데 루치오 달라라는 이름은 들어 보지 못했어도 이 노래의 멜로디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 노래는 이탈리아에서 발표된 것과 거의 같은 시기에 한국에서도 번안이 되어 이용복이라는 가수가 불러 인기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가수 이용복의 생애를 바탕으로  당시에 발표되었던 영화에 주제가로도 사용이 되었다고 하는데 원곡의 가사와는 달라졌지만 이용복이라는 가수가 처한 특별한 상황때문에 “어머니 왜 날 낳으셨나요.” 라는 한국 가사의 내용이 사람들의 마음에 와닿았다고 합니다. 70년대 초반 통키타와 포크 송의 바람이 불고 미국의 팝송이 알려지던 무렵의 한국에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이탈리아의 노래가 한국에서 인기가 있었다는 생각을 하면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c6MNtKu0yU

이렇게 본격적으로 솔로 가수로서 활동하던 루치오 달라는 1986 년에 "DallAmeriCaruso" 는 미국 공연 실황 음반을 기획했는데 그 음반의 첫 곡으로 소개된 노개가 'Caruso(카루소)' 였습니다. 앨범의 타이틀이 아주 재미있는데요. Dalla, America, Caruso 라는 세 단어의 끝을 이어 사전에도 없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었습니다. 사실 Dalla 는 본인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이탈리아어에서 'Da' 는 영어의 From 과 같은 의미로도 쓰입니다. 예를 들어 Leonardo Da Vinci 는 빈치 출신의 레오나르도라는 의미가 되지요. 그래서 Da 에 여성형 관사인 La 가 같이 붙어 Dalla America (Dall'America)라고 하면 "미국으로부터" 라는 의미도 됩니다. 그렇게 되면 앨범 타이틀은 "미국에서 (온, 도착한) 카루소" 라는 의미로 해석이 될 수도 있지요. 그리고 동시에 자신의 이름과 카루소의 이름이 한 단어에 들어가기도 하구요. 


1986 년에 발표된 이 음반은 900만 장 이상이 팔린 밀리언 셀러가 되었고 '카루소'는 루치오 달라의 대표적인 곡이 됩니다. 많은 가수들이 이 곡을 자신들의 음반에 녹음 했고 한국에 잘 알려진 것 처럼 파바로티도 이 노래를 자주 불렀습니다. 심지어 90년대 초반 어느 해에는 이탈리아 국영 방송국이 추최한 어린이 장기자랑 프로그램에 한 초등학생이 나와 이 노래를 불러 입상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덕분에 저도 그 때 처음으로 이 노래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 어린이가 노래도 잘 했지만 노래를 듣는 내내 저는 애절하고 서정적이면서도 어떤 부분에는 격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이 노래에 온 정신을 빼앗겼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 노래는 제가 언제나 곁에 두고 듣는 그리고 때로는 부르는(물론 혼자 있을 때 입니다.) 저의 애창곡이 되었습니다. 90년대 중반 한국에서 한 개그맨이 이 노래를 흉내내며 개그를 할 때 제 마음이 얼마나 아팠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Lv4lG2o9is


그런데 왜 루치오 달라는 이 노래에 카루소라는 제목을 붙였을까요? 인터넷 상에 돌아다니는 카루소의 가사 번역을 보면 전설적인 테너 가수 카루소와는 큰 관련이 없어 보입니다. 사실 번역의 오류도 있지만 이 노래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을 알지 못하고는 이 노래의 의미가 다 전달되지는 않을 것 같네요. 그래서 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 보려합니다. 이제부터요.  

* 이 글을 처음 온라인에 소개했던 것은 2007/8년 즈음입니다. 그 이 후 여러 사람이 이 노래를 다시 소개하는 글을 보았습니다. 제대로 된 가사를 소개하는 분들도 많아 졌고 또 한국의 많은 가수들이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고 저도 좋았습니다. 아래에는 로커 김종서가  부르는 카루소를 연결해 봅니다. 

 https://youtu.be/ppWVrFO8p8I?si=m-aq37d-sLh8QnGv

미국에서 얻은 부상과 폐렴으로 앓고 있던 카루소는 1921년 뉴욕에서 이탈리아로 건너 옵니다. 어쩌면 생의 마지막을 고향에서 보내려 했는지도 모르지요. 아내와 어린 딸을 데리고 고향 나폴리에 도착한 카루소는 나폴리 만의 남쪽에 위치한 또 다른 항구도시 쏘렌토로 건너갑니다. 그리고 쏘렌토의 유서 깊은 Grand Hotel Excelsior Vittoria 에서 생의 마지막 몇 개월을 보냅니다. 


카루소의 마지막 몇 개월은 그의 아내 도로시가 1945년에 출판한 카루소 전기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호텔에서 지내면서 일시적으로 카루소의 건강이 회복되는 것 같기도 했지만 죽음을 예감한 카루소는 '죽는 것은 두렵지 않지만 어린 딸이 자라는 것을 보지 못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프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이 호텔에서 카루소가 묵었던 방에는 넓은 테라스가 있고 그 테라스에 서면 가까이 나폴리 만의 푸른 바다와 그 너머 나폴리가 보인다고 합니다. 물론 이 호텔에는 아직 그 방이 보존되어 있고 카루소가 사용한 피아노와 집기들을 그대로 둔채 계속해서 손님을 받고 있다고 하는 군요. 하루 밤 숙박비가 엄청나지만 몇 년째 예약이 밀려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방이 바로 카루소와 루치오 달라를 이어주는 고리가 됩니다. 80년대 초 어느 날 루치오는 쏘렌토에 있는 이 호텔을 방문해 카루소의 방을 둘러 보았다고 합니다. 루치오가 방문한 시간은 밤이었다고 하는데 달빛이 은은하게 비치는 나폴리 만의 바다를 바라보며 이 호텔에서 생의 마지막 순간을 보낸 카루소를 생각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마침 호텔 방에 있던 피아노에 앉아 거의 즉석에서 '카루소'를 작곡했다고 합니다.


남녀간의 사랑을 노래하고 있는 듯 한 이 노래에는 카루소의 삶을 연상시키는 많은 요소들이 있습니다. 제가 시적인 사람이 되지 못해서 가사를 산문으로 번역하겠습니다. 괄호 안은 뜻을 통하게 하려고 제가 추가한 말들입니다. 한 편의 아름다운 시로 바꾸어 주실 분을 기다려 봅니다.


Qui dove il mare luccica

e tira forte il vento

su una vecchia terrazza davanti al golfo di Sorrento

un uomo abbraccia una ragazza

dopo che aveva pianto

poi si schiarisce la voce e ricomincia il canto:


(달빛)이 빛나고 있는 바다에서 바람이 세차게 불어 나오고 있는 이 곳,

쏘렌토 만을 앞에 둔 테라스에서 (슬픔에 젖어)울고 난 한 남자가 한 소녀를 껴안는다.

그리고는 목소리를 가다듬어 노래를 시작한다.


장면이 머리에 떠올려지시죠? 카루소가 묵었던 방의 테라스에 어느 날 밤 달이 바다를 비추고 한 남자와 한 소녀가 같이 그 바다를 보며, 남자가 노래를 시작합니다. 왜 소녀(Ragazza) 인지 궁금하군요. 한 남자( Uomo) 의 상대로는 한 여자(Donna)가 맞을 것 같은데 마치 나이 많은 남자와 어린 여자가 같이 있는 모습이 연상되는 가사입니다. 아마 남자는 카루소일 수도 있겠네요. 이제 후렴부분입니다,


Te voglio bene assai

ma tanto tanto bene sai

e' una catena ormai

che scioglie il sangue dint' e' vene sai...


너를 정말 사랑해 정말 너무너무 사랑해. 알아?

이제 (이 사랑은) 혈관 속의 피를 녹여 내는

(그래서 펄펄 끓게 만드는) 사슬과 같이 되어 버렸어. 알고 있니?


너무나도 절실하게 사랑을 고백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특히 후렴의 첫 소절은 가에타노 도니제티(Donizetti)가 작곡한 것으로 알려지는 나폴리 가곡 "Te voglio bene assai" 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합니다. 흔히 이탈리아어로 사랑해를 'Ti Amo (띠아모)'라고 한다고 알고 계시는데 틀리는 말은 아니지만 이탈리아 연인들끼리는 'Ti Voglio Bene (띠 볼료 베네)" 라는 말을 더 많이 합니다. 그리고 이 노래에서는 그것을 “혈관에 흐르는 피를 녹여내는 사슬”이라는 도저히 번역이 되지 않는 나폴리 특유의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몇 몇 이탈리아 친구들에게 물어 보았지만 아무도 제대로 설명해주는 이를 아직 만나지 못 했습니다. 어쩌면 그토록 절실한 사랑을 논리적으로 이해하려는 제 생각이 잘 못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Vide le luci in mezzo al mare

pensò alle notti la in America

ma erano solo le lampare

e la bianca scia di un'elica

sentì il dolore nella musica

si alzò dal Pianoforte

ma quando vide la luna uscire da una nuvola

gli sembrò più dolce anche la morte

Guardò negli occhi la ragazza

quegli occhi verdi come il mare

poi all'improvviso uscì una lacrima

e lui credette di affogare.


바다 한 가운데에서 반짝이는 빛을 보며

미국에서의 (화려했던) 밤들을 생각했다네.

하지만 (반짝이는)그것들은 지나가는 배에서 비춰진 불빛과 하얀 포말들이었지.

음악 속에서 아픔이 느껴지자 그는 피아노에서 일어났어.

하지만 구름 속에서 나타난 달을 보니

죽음도 그에게는 달콤하게 생각되었네.

(그리고는) 그녀의 눈동자를 보았어.

바다처럼 초록색 그녀의 두 눈동자를 (말이야).

그 눈동자에서 갑자가 눈믈이 한 방물 흘러나오자

그는 (물에 빠진 사람처럼) 숨이 막혀옴을 느꼈어.


노래를 하다가 바다에서 반짝이는 불빛을 보며 미국에서의 화려한 생활을 생각해 봅니다. 만일 이 남자가 카루소라면 테너 가수로서 관객들의 갈채를 받았던 화려한 밤들을 생각했겠지요. 그러다가 그 반짝이는 것이 지나가던 배에서 비치는 불빛과 배가 지난 간 뒤 생겼다가 곧 없어지는 하얀 파도임을 깨닫게 되자 자신의 화려한 미국 생활도 그렇게 덧없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그 사실이 아픔을 주지만 구름 속에서 나타나는 달을 보며 다시 편안한 마음을 가집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그녀의 눈동자를 보고 그녀가 흘리는 눈물에 숨이 막혀 옵니다. 죽음을 앞둔 카루소가 과거의 영광에 대한 부질 없는 미련에서 벗어나 사랑을 통해 마음의 평안을 그런 의미로 해석이 될 것 같기도 합니다. 후렴이 이어집니다.


Te voglio bene assai

ma tanto tanto bene sai

e' una catena ormai

che scioglie il sangue dint' e' vene sai...


Potenza della lirica

dove ogni dramma e' un falso

che con un po' di trucco e con la mimica

puoi diventare un altro

Ma due occhi che ti guardano

così vicini e veri

ti fanno scordare le parole

confondono i pensieri.


모든 드라마(인생의 극적인 일들이)가 허구인(허구로 만들어 버리는) 가사(오페라)의 힘.

그 곳에서는 약간의 화장과 표정의 변화만으로도 딴 사람이 될 수 있지 .

하지만 그토록 가까이에서 진실하게 너를 바라보는 두 눈동자는

(거짓으로 가득 찬) 노랫말들을 잊게 하고

너의 생각들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버리지.


카루소의 오페라 가수로서의 삶이 연상되는 부분입니다. 이 글 시작에서 소개드린 오페라 팔리아치의 아리아처럼 무대에서는 분장과 의상 그리고 부르는 노래말에 따라 원하던 원하지 않던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해야 합니다. 그리고 대중의 사랑을 받는 인기인으로서 그의 삶은 남들 앞에 서 있는 모든 순간이 허구였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처럼 거짓으로 가득찬 모습은 사랑하는 사람의 진실한 눈동자 앞에서 가식의 탈을 벗게 되지요.


Così diventò tutto piccolo

anche le notti la in America

ti volti e vedi la tua vita

come la scia di un'elica.


(그래서) 모든 것들이 그렇게 작아지고

미국에서의 밤들도 마찬가지로 (작아져 버리지).

고개를 돌려보면 너의 인생도

배가 지나간 뒤에 (생겼다 없어지는 하얀) 포말들과 같아 보일거야.


Ah si, e' la vita che finisce

ma lui non ci pensò poi tanto

anzi si sentiva felice

e ricominciò il suo canto:


아 그래. 이게 바로 끝을 향해 나아가는 인생이지.

하지만 그는 (이제 인생이 끝나가는 것)을 크게 걱정하지 않고

오히려 행복을 느끼네.

그리고는 그의 노래를 다시 시작했어.


아마 허구에 가득 찬 인생의 허망함을 깨닫게 되자 죽음에 대해 담담해 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절실한 사랑을 노래하는 후렴이 이어집니다.


Te voglio bene assai

ma tanto tanto bene sai

e' una catena ormai

che scioglie il sangue dint'e vene sai...


어떻습니까? 이 노래를 이미 들으셨던 분 들은 가사의 내용을 아시고 나니 노래가 좀 달리 생각되나요? 죽음을 앞둔 한 사람이 겪는 생각의 변화가 어찌 보면 상당히 동양적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노랫말 속의 남자가 카루소라면 그 소녀는 누구일까 하는 것입니다. 실제 카루소의 곁에는 마지막 순간까지 아내와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어린 딸이 있었습니다. 물론 둘 다 소녀라고 보기에는 나이가 걸맞지 않지요. 그렇다면 혹시 이 소녀라는 존재는 카루소가 평생 사랑한 음악은 아닐까요. 진정한 음악은 마지막 순간에도 카루소의 곁을 지키며 죽음에 대한 공포와 지나간 인생에 대해 느끼는 회한 같은 것들을 이겨나가게 하는건 아닐런지요.


아래에는 루치오 달라가 부르는 카루소의 뮤직 비디오 입니다. 화면에 나오는 호텔 방이 바로 카루소가 마지막 순간을 보낸 쏘렌토의 엑셀시오르 호텔 방입니다. 노래말에 나오는 테라스도 나오고 중간 중간 생전 카루소의 모습도 보실 수 있습니다. 저는 루치오 달라가 부르는 카루소, 특히 후렴부를 가장 좋아합니다. 파바로티가 ' Te voglio bene assai ' 할 때에는 웬지 "사랑해. 알지? 모르면 말고." 하는 것 같은데 루치오 달라는 "사랑해. 알지? 모르면 네 앞에서 내가 칼 물고 죽어버리겠어."하는 비장함마저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qtSuL3H2xs


사족입니다만 위의  뮤직 비디오 시작 부분에 호텔 프론트에서 붐박스를 통해 나오던 음악을 기억하시는 분이 있으실런지요. 듀란 듀란 이라는 80년대 영국 그룹이 1984년에 발표했던 The Wild Boys 라는 노래입니다. 당시 한국에서도 여학생들 사이에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그룹입니다. 책받침에 자주 등장하던 그룹이었지요. :-)

카루소는 1921년에 세상을 떠났고 20여 년 후에 1943년에 태어난 루치오 달라도 지난 2012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에게 이 노래를 알린 파바로티도 마찬가지구요. 하지만 이 들이 남긴 음악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감동을 주고 우리 삶에 위안을 줍니다. 이 노래의 가사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우리 인생은 결국 끝을 향해 나아가는 어찌보면 짧은 시간일 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우리 인생을 의미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도 생기고, 이들이 우리에게 남긴 것처럼 우리가 다음 세대에 무엇인가를 남기는 일이 우리의 삶을 의미있게 만드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설사 아무 것도 남기지 않더라도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시간을 100 %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으로도 우리의 삶은 의미가 있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충실하게 살아가는 방법 중에는 내 주위에 있는 작은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남들이 신경을 쓰지 않는 것들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좋아하고 나에게 의미있는 것으로 내 주위를 채워나가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닐까요? 


그래서 100년 전에 죽은 테너를 생각하며 40년 전에 만들어진 노래를 30년 전에 처음 접하고 아직까지도 계속해서 들으며 감동받는 제 삶도 분명 저에게는 의미 있는 삶입니다. 그리고 다가올 삶의 끝을 알기에 지금 살아가고 있는 시간을 더 열심히 살아 갈 수 있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열심히 “일하자” 는 의미로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열심히 삶을 “즐기자.” 는 의미입니다. 죽음도 달콤하게 느껴질 만큼 말입니다. 그런데 운이 좋은 분들에게는 때로 일하는 것도 즐기는 순간이 될 수 있다는 점도 말씀 드립니다.       


*루치오 달라가 처음 발표한 이래 수 많은 가수들이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 중 일부를 모아 플레이리스트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NOD4qcWqmAtpdiy0PLuvsWSxUbME4pc7&si=brqHYcQQV6ssd5b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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