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카르도 코치안테(Riccardo Cocciante)
우리가 듣는 노래들 중에는 사랑과 이별, 기쁨과 슬픔 같은 인간의 감정을 이야기하는 노래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드물기는 하지만 노래를 통해 분노를 표출하는 가수들도 있습니다. 분노하는 가수들을 생각하면 러시아의 바드 가수인 블라디미르 빗초스키(Vladimir Vysotsky)가 먼저 떠오르는데 오늘 소개해드리고 싶은 이탈리아의 가수 리카르도 코치안테(Riccardo Cocciante)도 노래로 분노할 수 있는 가수라 생각합니다. 특히 그의 음악 중에는 배신으로 실패한 사랑에 대한 분노의 노래들이 있습니다.
코치안테의 이름이 한국에 얼마나 알려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가 만든 노래, 그중에서도 특히 한 곡은 많은 분들이 들어 보셨고 기억하시라 생각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K_SQoHhK14
한국에서도 성황리에 공연이 된 파리의 노트르담이라는 뮤지컬의 음악을 작곡한 이가 바로 리카르도 코치안테입니다. 하지만 이 뮤지컬을 만들기 전, 1970년대부터 그는 이미 이탈리아와 유럽에서 잘 알려진 싱어송라이터였습니다. 특히 그의 호소력 있고 감성이 풍부한 목소리와 한 편의 드라마가 담겨 있는 그의 음악은 한 번 들으면 쉽게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담담하게 옛이야기를 하듯 시작해서 격정적인 감정의 표출로 이어지는 그의 극적인 음악 드라마는 그만이 표현할 수 있는 독특한 음악 세계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는 저는 파리의 노트르담 뮤지컬에 대한 정보 없이 "Belle"라는 노래를 들으며 리카르도 코치안테의 음악을 떠올렸습니다. 그러고 나서보니 역시 그가 작곡 가였더군요. 이 글에서는 뮤지컬 작곡가가 아닌 가수 리카르토 코치안테의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코치안테는 이탈리아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그가 태어난 곳은 현재 호찌민 시로 불리는 베트남의 사이공이었습니다. 그곳에서 프랑스어를 집에서 쓰며 자라난 그는 11세에 이탈리아의 로마로 와서 프랑스계 국제 학교를 다녔습니다. 이런 어린 시절의 환경 덕분에 그는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 영어, 그리고 스페인어까지 여러 언어에 능통합니다. 실제 각 각의 언어로 여러 장의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특별하게 음악 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타고난 재능과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그는 60년대 말부터 로마의 여러 클럽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했고 영어로 된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1974년에 발표된 "아니마(Anima, 영혼)"이라는 앨범인데 여기에서 코치안테의 스타일이라 할 수 있는 자신 만의 음악 스타일을 드러내 보였습니다.
그 앨범에 실린 두 곡이 특히 흥미로운데요. 두 곡 모두 사랑에 실패한 한 남자의 이야기를 하면서 사랑을 배신한 여성에 대해 분노하고 있지요. "영혼 없는 미녀(Bella Senza L'anima)"라는 노래에서는 더 이상 기쁨도 슬픔도 존재하지 않는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녀가 파 놓은 함정에 빠졌다고 하면서 더 이상은 그 안에서 허우적거리지 않겠다고 노래합니다. 그리고 이제 곧 헤어질 그녀와 마지막 밤을 보내기에 앞서 내 진짜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하면서 조금은 성적인 연상을 하게 만드는 노래를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TZYhF8rUXA
노래 부르는 그의 표정과 후반부에 격정적으로 표현해 내는 감정은 그 당시까지 이탈리아 음악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코치안테를 대표하는 스타일이 되었습니다. 그의 이런 스타일은 처음 이 음악이 발표되고 50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합니다.
아래에는 올해 초 산레모 가요제 시기에 만든 TV 쇼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 코치안테의 모습입니다. 50년 전과 같은 통제할 수 없는 분노의 에너지는 느껴지지 않지만 여전히 그의 목소리와 표정에서 느껴지는 그의 분노는 여실히 전달이 됩니다. 노래 하나가 마치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것 같다고나 할까요.(*노래는 4분 정도에서 시작이 됩니다. 재생 위치를 지정한 링크가 잘 작동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https://youtu.be/TT37HFqhDxU?feature=shared&t=245
이 노래는 그 가사에서 여성의 이야기가 전혀 전해지지 않았고 매우 남성 중심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당시에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가사의 마지막에서 그녀에게 옷을 벗으라고 하고 이제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이겠다고 하는 부분의 가사는 한 때 삭제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스페인과 남미의 칠레로 이 노래가 펴져 유행하면서 이 노래 속에서 남자를 속이고 함정에 빠트린 여자의 이야기가 당시의 정치적인 상황을 비유하는 것으로 해석이 되면서 이 노래가 반정부 운동의 노래가 되기도 했습니다. 민중들을 유혹해서 독제적인 정권을 받아들이도록 한 사실이 남자를 유혹해서 함정에 빠트린 여성에 비유가 되면서 그 여성에 대한 분노와 그녀로부터 벗어나려는 남자의 노력이 독재를 타도하기 위한 민중의 노력과 분노로 연결이 된 것이지요.
이 앨범에 실렸던 또 다른 노래는 "사랑이 끝날 때(Quando Finisce un Amore)"라는 노래인데 이 노래에서는 사랑이 끝이 난 이후 한 남자의 절망적인 마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가사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끝나버린 사랑 때문에 고통을 받아 본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이해할 수 있는 가사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특별한 이유 없이 끝나 버린 사랑 때문에 무엇인가 목에 걸려 있는 것 같고 가슴이 뚫어진 것 같은 구멍이 남았고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깊이 생각하면 무엇인가 이유가 있을 것도 같지만 왜 사랑이 끝이 나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 절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술을 마시고 친구를 만나고 무엇인 든 해 보지만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얼굴을 바꾸고 사는 곳을 바꾸고 세상을 바꿀 수 있어도 그녀가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나를 이 절망에서 구할 수가 없습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내일은 또 다른 날이고 그녀는 더 이상 내 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나도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지만 저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
https://www.youtube.com/watch?v=t9IGHhrpFiM
위의 영상에서 노래를 소개하는 20대 후반 코치안테의 수줍은 듯한 목소리와 얼굴이 노래를 시작한 후 변화하는 것을 보면 자신의 노래에 대한 그의 열정이 보입니다. 비록 자신이 쓴 가사는 아니지만 그 가사에 걸맞은 멜로디를 만들고 그것을 해석해 내는 모습은 누구도 따라 하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특히 이 음악의 편곡은 이탈리아 영화 음악의 거장으로 잘 알려진 엔니오 모리코네가 맡았다고 합니다. 그의 음악이 느껴지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역시 50년 후에 부르는 같은 노래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j3XV99e844
이처럼 그의 노래들에는 이미 뮤지컬로 만들어질 수 있는 극적인 요소들이 들어 있습니다. 1975년에 발표한 "이미 모든 것이 예견되어 있었어(Era gia' tutto previsto)"라는 노래에서는 천천히 회한을 이야기하듯 그녀와 처음 만난 과정을 이야기합니다. "다른 사람과 같이 있으면서도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나에게 접근한 그녀, 그리고 이제 그녀는 더 이상 행복하지 않다고 하면서 나는 너무 착하기만 하고 자신을 만족시킬 수 있는 다른 남자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런 일이 생기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지만 배신감에 몸부림치는 나는 이 모든 것이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고 느끼고 이제 죽고 싶다"는 말로 노래를 마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9mJnNV8wT7I
아래에는 2022년에 같은 노래를 부르는 코치안테의 모습입니다. 50년 가까이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는 여전히 이런 노래를 하고 있고 사람들도 여전히 그의 음악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 노래를 부르는 그의 마음은 50년 전과 얼마나 달라졌는지, 아니면 노래를 부르는 동안 만은 여전히 20대의 자신으로 돌아가는지 궁금합니다. 비록 노래하는 그의 얼굴과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손에는 주름살이 생겼지만 노래하는 목소리는 50년의 시간이 흘렀다는 것이 그리 느꼈지 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pt-hIYp_Hw
우리는 하루에도 수 십, 수 백곡의 음악을 주위에서 듣습니다. 그런데 그중에는 철저하게 기획되어 시장에 출시하는 상품으로 존재하는 음악이 있지요. 그런데 기획사에서 오랫동안의 트레이닝을 거치고 시장 조사를 마쳐 판매 타깃으로 삼은 세대의 대중들이 좋아하는 모든 요소들을 갖추고 사람들 앞에 등장하는 음악인들의 모습은 제게 조금 낯설게 느꼈집니다.
물론 지금 우리 주위의 음악인들이 모두 상품으로 시장에 내어 놓은 존재가 아니라는 점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좀 더 많은 음악인들의 음악에서 그들의 순수한 음악에 대한 열정을 느끼고 싶습니다. 대중이 좋아할 만한 요소들만을 모아서 만든 음악이 아니라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음악인이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이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을 조금 더 많이 소개해 줄 수 있는 플랫폼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목소리들이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도 있고 또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진심이 담긴 그들의 목소리는 분명 듣는 사람들의 마음도 움직이고, 또 그렇게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음악을 듣고 소비하는 입장에서 언제나 마음을 열어 놓고 새로운 소리를 들으려 합니다. 설사 처음에는 귀에 끌리지 않는 소리라고 하더라도 틱톡 화면 넘기듯 2,30초만 듣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끝이 날 때까지 길게 들으면서 과연 이 음악인은 무슨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하려 하는지 느껴보려 합니다. 그렇게 내가 느끼는 것이 작곡가나 가수가 원하던 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만 무엇인가 내 마음에 울림을 준다면 저에게는 의미가 있는 음악일 것입니다. 그 음악이 대중적이건 아니건 간에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작곡가인 코치안테가 이탈리아어로 직접 부르는 Bella 를 연결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6sEhJbSniW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