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에서 청와대로 ①

촛불과 태극기

by 김코알라

2016년 하반기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역동적인 시기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2016년 10월 말, JTBC가 보도한 이른바 '태블릿 PC 의혹'의 여파는 너무나도 강력했다. 선거를 통해 국민이 부여한 대통령의 권한을 특정 개인에게, 그것도 자신의 숨겨진 친구에게 나눠주고 사적으로 남용하게 했다는 전대미문의 '국정 농단 사건'은 진위 여부를 떠나 사회를 혼란의 구렁텅이로 내던지기에 충분했다. 국내 언론은 너 나 할 것 없이 앞다투어 권력자의 부정부패 폭로 기사를 연신 터뜨렸고, 이에 보다보다 참지 못한 성난 민심은 결국 촛불을 들고 광장을 향해 쏟아져 나왔다.


입사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던 나는 너무나도 빠르게 돌아가는 상황에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었다. 당시 나의 소속사는 '무엇이 한국 시민을 분노하게 했는가', '한국 시민은 무엇을 원하는가'에 대하여 일반 대중의 목소리를 듣고자 했고, 덕분에 나는 매주 토요일을 광화문 광장에서 보내야 했다.

광화문 광장에는 일련의 미증유의 사태를 취재하기 위해 필자를 비롯한 전 세계의 각종 매체들이 집결해 집회 현장을 있는 그대로 본국에 생중계했으며 뜨겁게 달궈진 민중의 열망을 담아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수십만 시민과 정치인, 언론인이 한 데 모여 터질 듯 뒤섞인 광화문 광장은 발 디딜 틈이 없었고 그야말로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광화문 광장 '촛불집회'에는 전국 각지에서 시민들이 몰려들었고 주최 측 추산 연인원 100만 명을 기록하는 등 지난 '6월 민주 항쟁'을 보는 듯하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흔한 광화문의 직장인부터 교복 차림의 학생, 가족 단위 참석자와 연인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양한 연령대의 시민들이 함께했다.


집회의 주축은 민주노총을 비롯한 진보 단체였다. 개중에는 환수복지당, 민중당 등 정당해산 판결을 받은 '통합진보당'의 후신과 대학 내 극단적 진보주의 집단의 참가도 눈에 띄었다. 특히 과거 '민중총궐기'를 주도하며 불법 폭력시위를 야기한 혐의로 수감 중인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과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도모하는 등 이적행위를 했다는 혐의로 수감 중인 통합진보당의 이석기 전 의원을 "즉시 석방하라!"라는 구호가 곳곳에서 들렸다.


거리 인터뷰를 진행하다 마주친 수많은 시민들은 대체로 박근혜 정부에 대한 심판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지만 그들이 촛불을 들어올린 이유는 다양했다.


서울에 거주하는 대학생 Y 씨는 '국정 농단' 의혹 앞에 침묵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국민의 의견을 듣지 않고 의혹에 답하지 않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라며 국민과 소통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 꼬집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 내내 지적된 문제였다.

경기도 안양에서 광화문 광장을 찾은 L 씨는 "나라가 비선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라며 대통령이 '꼭두각시'가 된 거 같다고 평가했다. 국정 농단 의혹의 핵심은 '비선 실세'로 불린 최순실을 비롯한 몇몇 인물이었다. 숭고한 국가 권력을 이름 없는 누군가가 마음껏 휘두르고 있었다는 사실은 시민의 분노를 야기했다.

8살 아들에게 촛불을 쥐여주던 40대 개인 사업가 S 씨는 "아이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다"라고 말했다. 더 나은 세상이 무엇이냐는 필자의 질문에 S 씨는 아들의 얼굴을 살짝 돌아본 뒤 "자신의 주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나라"라고 힘주어 말했다.


비록 진보 단체를 중심으로 시작된 촛불집회였지만, 그곳에는 언제나 시민이 있었다.

"그저 궁금해서 구경하러 왔다"라는 사람들도 간혹 있었지만, 그들이 자발적인 의지로 광화문 광장을 찾지 않았다면 집회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을 것이다. 정권 심판이라는 공통분모에 더해 각자의 정치적 신념과 작은 바람이 어우러졌고, 이는 시민을 광장으로 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한편으로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또 다른 국민이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과 보수 정권 수호를 외친 이른바 '태극기' 세력이다. 박사모, 어버이연합, 재향군인회, 기독교 단체 등 보수 세력은 "불법적 종북 집회"에 대응하겠다는 애국의 의미로 태극기를 양손에 들고 덕수궁 대한문 앞으로 집결했다. 일부 산업화 세대의 소규모 집회로 시작되었으나 횟수를 거듭할수록 그 규모는 점점 커졌고, 종국에는 주최 측 추산 50만이 넘는 인원이 대한문부터 서울시청 광장까지 빼곡하게 메울 정도였다.


이들에게 있어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된다는 것은 곧 민주주의 체제의 붕괴였으며, 대한민국이 '종북 좌파'들에 의해 북한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것과 다름없었다. 아직 사실로 밝혀지지도 않았고 유죄 판결을 받은 것도 아닌, 순전히 언론 보도에 불과한 의혹들을 빌미로 '빨갱이'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리려 한다는 것이다. 어긋난 애국심과 민주 시민에 대한 맹목적 불신, 종북몰이의 재현이었다.


이렇듯 광화문 광장을 중심으로 한 '촛불집회'와 대한문을 거점으로 하는 '태극기집회'는 세종대로 사거리 8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매주 토요일 일촉즉발의 팽팽한 긴장감을 연출했다. 마치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격렬히 대립하는 남과 북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말 그대로 대한민국의 양극단이었다.


양 측 모두 평화집회를 표방했지만 점점 과격해지는 모습은 숨길 수 없었다.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청와대로 행진하겠다며 광화문 광장에서 그치지 않고 효자동 로터리, 청와대 분수대 방면으로 나아갔다. 일부 참석자들은 행진을 저지하는 경찰과 충돌하거나 경찰의 차단벽을 기어오르고 횃불을 휘두르는 등 눈살이 찌푸려지는 행동을 보였다.

태극기집회 또한 마찬가지로 왜곡된 분노를 표출했다. JTBC, MBC 등 박근혜 정부를 비판적으로 보도하는 매체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했고 '젊은 세대는 모두 좌파다'라는 인식하에 태극기를 묶은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기자를 폭행하는 등 도를 넘은 애국심의 말로를 보여줬다.


극과 극은 결국 통한다는 게 과연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 글은 필자 개인의 생각이며 소속사 및 특정 집단과 관계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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