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에서 청와대로 ②

권력은 추락했고 시민은 환호했다

by 김코알라

2016년 12월 9일 아침이 밝았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 의결이 있던 날, 나는 여의도를 찾았다.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라 주장해온 각종 시민단체는 이른 시간부터 구름같이 모여들어 국회의사당역 공원을 가득 메웠다. 제각기 목적이야 어떻든 이날을 위해 총력을 다해온 시민, 정치인, 언론인의 앞날이 결정되는 운명의 날이었다.

앞선 12월 초, 새누리당의 비박계 인사들은 무조건적 탄핵 표결 참여 의사를 밝혔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야당 의원 전원은 "탄핵 부결 시 총사퇴" 카드까지 꺼내 들고 결의를 다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마지못해 '4월 퇴진 6월 대선' 시나리오를 수용하였지만 이미 출발해버린 탄핵 열차를 멈춰 세울 수는 없었다.


국회 본회의는 예정된 시각에 개의하여 별다른 어려움 없이 순조롭게 진행됐고 이윽고 16시 10분,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가결됐다. 재적 300석 중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의 불참을 제외한 299표가 행사됐고, 찬성 234표, 반대 56표, 기권 2표, 무표 7표였다.


당시 시민들은 국회의사당을 마주하고 설치한 대형 스크린을 통해 국회 생중계를 지켜보고 있었다. 한 목소리로 "박근혜를 탄핵하라!" 구호를 외치고 민중가요를 목놓아 부르던 그때 화면에 정세균 국회의장이 투표 결과를 발표하려 모습을 나타냈고 대형 스피커에서는 "음악 줄여!"라는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군중은 순식간에 침묵에 싸였고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정말이지 목이 타는 긴장감이 느껴졌다.

"찬성 234표..." 정세균 국회의장의 목소리가 들리자 투표 결과를 지켜보던 시민들은 터질 듯한 함성을 내질렀다. 마치 축제와 같은 분위기로 서로를 얼싸안았고 눈동자에는 환희가 가득했으며 오열하며 눈물을 왈칵 쏟아낸 사람도 있었다.


그날 서울역에서 만난 30대 회사원 J 씨는 대통령 탄핵 소추안 가결에 대해 "이제 황교안 총리를 비롯한 관계자도 모두 내려와야 한다"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의 요직에 있던 모두가 "공범"이라는 인식이었다.

본인이 근무하는 기업이 미르 재단과 K스포츠 재단에 "돈을 뜯겼다"라고 주장하는 20대 회사원 C 씨는 "국민의 퇴진 요구는 앞으로도 누그러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탄핵이 되었음에도 퇴진을 요구하는 이유를 묻자 "대통령이 자기 발로 나간 것이다. 시민이 원한 것은 자진 사퇴였다"라고 강조했다.

한편으로, 대통령 탄핵 이후의 사회적 혼란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오랜 기간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최근 명예퇴직했다는 50대 S 씨는 "탄핵 이후 마땅한 대안이 있기는 한 것인지 의문이다"라며 "더욱 큰 혼란이 오지 않을까 대단히 불안하다"라고 우려했다. 이어서 탄핵을 주도한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에 대해 "대안 없이 민심을 이용해 여론을 호도했다"라고 일갈했다.


결국 돌이켜 보면, 부패한 지도자의 도의적 법률적 실책과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여야 정치인의 피 말리는 싸움에 피해를 본 것은 또다시 우리 '일반 시민'이었다. 누구를 위한 대통령이었으며 누구를 위한 탄핵이고 그 결과 무엇이 어떻게 정의로워졌는지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차가운 겨울바람에 얼어붙은 손을 녹이며 촛불을 들어 올렸던 이들에게 '대통령 탄핵'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2016년 12월 9일 오후 16시 10분. 이 순간은 누군가에겐 '시민의 힘으로 국가 최고 권력을 끌어내린'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가장 역사적인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고, 누군가에겐 좌파 노조와 종북 정치인들의 반국가적 공작에 '고결한 박근혜 대통령이 희생된' 참극으로 기억될 것이다.


많은 생각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이 글은 필자 개인의 생각이며 소속사 및 특정 집단과 관계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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