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에서 청와대로 ③
그리하여 대한민국은 반으로 쪼개졌다
대통령 탄핵의 칼자루는 이제 헌법재판소의 손으로 넘어갔다.
필자에게 있어 3개월간 이어진 탄핵 심리는, 매일 아침 8시부터 헌법재판소 2층 브리핑룸에 자리를 잡고 10시간이 넘는 재판을 지켜보던, 정말이지 고통스러운 나날이 아닐 수 없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권성동 의원을 필두로 한 소추위원단과 이후 형사재판까지 담당하게 될 유영하 변호사를 중심으로 한 피청구인 대리인단의 법리 공방은 마치 검투사의 대결처럼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치열하게 진행됐다. 당시의 양측 주요 주장을 살펴보면 탄핵의 이유와 절차에 대해 얼마나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우선, 피청구인 대리인은 대통령 탄핵 자체가 "절차에 있어서 심각한 법적 흠결이 있고 소추 사유는 사실이 아니며 이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없다"라며 "청구는 각하 또는 기각되어야 한다"라는 입장이었다. 국회의 탄핵 소추는 객관적 증거 없이 이루어졌으므로 부적법하며, 박근혜 대통령의 방어권을 보장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으며 또한 탄핵 소추 사유로 거론된 헌법적 법률적 위배 행위는 "모두 사실이 아니다"라고 전면 부인하였다. 한 발 물러 탄핵 소추 사유를 인정할 자료가 있어 위법성이 입증된다 하더라도 "대통령 직을 파면할 정도의 중대한 위법이 없다"라는 견해였다.
반면, 청구인 측은 이 사건 본질을 "국가의 공조직과 헌법 시스템을 사익 추구의 도구로 전락시킨 것"이라 정의 내렸다. 박근혜 대통령과 '특수한 관계'를 맺고 있는 최순실의 사익 추구를 조장 방조하면서 "대통령으로서 국가 조직과 국가 권력을 '최순실 등의 사익 추구'에 동원하였다"라는 것이다. 또한 헌법을 준수하고 직책을 성실하게 수행해야 하는 '대통령의 의무'를 저버린 행위라 평가하였다. 피청구인 대리인이 주장하는 탄핵 소추 절차의 부적법성에 대해서도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적정 절차에 따라 이루어진 과정을 애써 외면하는 것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국가적 대사를 결정하는 일이기에 탄핵 심리 과정 또한 규모가 남달랐다. 2016년 12월 9일 사건이 접수된 이후 3차례의 준비기일과 17차례의 변론기일을 진행하였으며 청구인과 피청구인이 요청한 증인이 총 29명, 사실조회 결정이 69건이었다. 이 과정에서 조사된 자료는 48,000여 쪽에 달하였고 탄원서 등의 자료도 40박스 분량이 이르렀다. 헌법재판관 전원은 휴일을 제외하고 매일 재판관 평의를 진행하였으며, 모든 결정 사안에 있어 재판관 전원의 논의를 거치지 않은 사안이 없었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 탄핵 절차나 박근혜 대통령을 둘러싼 각종 형사적 의혹들을 이해하기 위한 법률 공부가 너무나도 절실했고, 매일같이 법전을 뒤적이며 지식을 채워나가기 급급했다. 기자의 삶은 그저 말을 잘한다고, 글을 잘 쓴다고 성립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윽고 심판의 날이 밝았다. 3월 10일 아침, 헌법재판소 브리핑룸에는 지금껏 맛보지 못한 고도의 긴장감이 흘렀다. 평소였다면 작게 대화를 나누거나 간식을 먹거나 흡연실을 들락거리며 여유로웠을 기자들 또한 한껏 상기된 표정으로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켰다.
오전 11시, 예정대로 판결이 시작됐고 그날의 대한민국 모든 시민이 그러했듯 필자를 포함한 모두가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선고 초반 "인정하기 어렵다", "보이지 않는다" 등의 각종 의혹들에 대한 부정적인 표현이 이어졌고 '어쩌면 탄핵이 어려울 수도 있겠다'라는 아찔한 생각이 잠시 스쳤다.
그러나 이내 선고된 주문은 예상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브리핑룸의 기자들은 일제히 술렁였고 개중에는 손뼉을 치는 사람도 있었다. 소속사에 속보를 타전하랴 전화를 돌리기 위해 브리핑룸 밖으로 우르르 몰려나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분명 예상된 결과였음에도 지난 3개월간의 마라톤에서 해방되는 순간이었기에 나도 모르게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헌정 사상 유례없는 대통령 탄핵 결정을 당시의 시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서울에 거주하는 50대 직장인 K 씨는 "헌재의 인용 소식을 듣고 아주 행복했다"라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고, 40대 회사원 S 씨 또한 "무언가 해낸 것 같고 정말 뿌듯하다"라고 밝은 표정으로 소감을 말했다. 매주 토요일 촛불집회에 참석했다는 대학생 A 씨는 "그간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 같아 기쁘다"라며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좋은 나라를 만들었다고 회상할 수 있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앞으로의 우리 사회에 대한 필자의 물음에 "나라 전체에 갈등이 너무 심하다"라면서도 "차근차근 잘 해결한다면 미래는 희망차다"라고 낙관적 미래를 전망했다.
한편으로, 안국역 인근에 운집한 태극기집회 참석자들은 폭도로 돌변했다. 시위의 안전을 위해 '산성'을 쌓아놓은 경찰 버스에 우르르 올라탔으며 "헌법재판소로 진군하자!", "국회로 돌격하자!"라며 어긋난 전의를 불태웠다. 이미 이성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선고가 있은 지 한참이 지난 시간이었지만 그들의 흥분은 가라앉지 않았고, 고령의 참석자들이 줄줄이 의식을 잃어 구급차에 실려나갔다. 무대 위에 올라선 남성은 쉬어버린 목소리로 "진군하자! 돌격하자!"라며 연신 과격한 행동을 종용했다. 종국에는 경찰 버스를 탈취한 시위대가 차 벽을 뚫으려 들이받는 과정에서 스피커가 추락해 밑에 있던 시위 참석자가 사망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또한 그들에게 '젊은 사람'은 모두 JTBC와 MBC의 기자였으며 북한의 간첩이었다. 카메라 기자의 사다리를 빼앗아 구타를 가했고, 취재를 위해 기자 신분을 밝히자 멱살을 잡아끌고 가 폭행하였다. 혼돈과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그래서 필자는 살아남기 위해 작은 태극기를 가방에 꽂고 다녔다. 일종의 피아식별 위장이었다.
그날의 안국역에는 민주시민도 애국 시민도 없었다. 구급차의 사이렌 사이로 시위대의 고함만이 울려 퍼졌으며, 시큰한 막걸리 냄새와 낭자한 선혈, 부서진 무대와 찢겨나간 태극기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도대체 누가 이들에게 광기를 허락하였으며 무엇이 이들을 그토록 미치게 만들었을까.
"오늘의 선고로 더 이상의 국론 분열과 혼란이 종식되기를 바란다"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탄핵 선고에 앞서 말한 절절한 당부가 공허하게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 글은 필자 개인의 생각이며 소속사 및 특정 집단과 관계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