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악산의 주인 ①

하나의 권좌, 다섯의 도전자

by 김코알라

대한민국은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을 거치며 갈등과 혐오의 구렁텅이로 곤두박질쳤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과정에서 불거진 사회적 갈등은 정치권에만 머무르지 않았고, 정당을 기준으로 내편이니 네 편이니 나누는 '여의도식 편 가르기'가 시민의 삶 속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가까운 친구 사이에서 마저도 지지하는 정치인과 정당이 피아식별의 척도가 되었고, 나와 정치적 성향이 같지 않다면 무조건적으로 배척하며 대화조차 하려 하지 않는 적대적 인간관계가 자리 잡았다.


그 시절 우리나라는 대립과 갈등을 끝내 사회를 통합하고 시민들의 상처 입은 마음을 보듬어줄 사람,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은 지독한 혼란을 잠재우고 화합의 미래로 나아갈 지도자가 필요했다. 우리 시민은 그 어느 때보다 정치에 관심이 많았고 참여 의지도 높았기에 그에 걸맞은 정부와 지도자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2016년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가결되자 정치권은 요동쳤다. 머지않아 공석이 될 대통령의 권좌를 꿰차기 위한 눈치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촛불집회를 지나오며 존재감을 과시했던 정치인도, 확실한 노선을 잡지 못해 우물쭈물했던 정치인도, 모두 시민의 선택을 받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를 비롯하여 이재명 성남시장, 안희정 충남도지사,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 유승민 바른정당 상임고문, 남경필 경기도지사, 홍준표 경남도지사 등 거물급 정치인들이 출사표를 던졌다.


당시 제1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은 '박근혜 탄핵 사태'를 주도하며 급부상했고 타락한 보수 세력을 심판할 유일한 대안책으로 받아들여졌다. 여론 또한 민주당의 집권으로 기울었으며 '민주당의 경선이 사실상 대선'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민주당 경선은 문재인 전 대표,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의 삼파전 양상이었다. 치열한 경쟁 끝에 4월 3일, 문 전 대표가 대통령 후보로 선택됐다.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패배해 이번이 두 번째 도전이었던 문 후보는 전통적 친노 세력의 좌장 격으로 전폭적인 당내 지지를 받고 있었으며 이른바 '촛불 정국'에서 선하고 따뜻한 인간적 면모를 보이며 국민의 인기를 모았다.

문 후보는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 "분열의 시대와 단호히 결별하고 정의로운 통합의 시대로 나아가겠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인간과 평화, 화합을 중시하는 '사람 냄새나는' 철학이 돋보이는 연설이었다.

비록 경선에서 탈락했지만, 안희정 충남지사는 젊은 감각과 신사적 이미지로 인기를 얻었고 이재명 성남시장은 거침없는 행보와 뚜렷한 소신으로 지지를 확보해 차기 대권주자로서 입지를 공고히 했다.


하지만 '사실상의 대통령'을 뽑는 자리로 이목을 끈 더불어민주당의 경선은 예상치 못한 숙제를 낳았다. 문재인 후보의 팬카페 등 열성 지지자들은 상대 후보에게 '문자 폭탄'을 던져 업무를 마비시키거나 '18원 후원금'을 보내 모멸감을 주고 인터넷 기사에 상대 후보를 비방하는 댓글을 다는 등 조직적으로 부적절한 행동을 보였다. 이에 문 후보는 "경쟁을 흥미롭게 만들어준 양념"이라며 독려로 해석될 평가를 내려 상대 후보 측을 비롯한 정계의 비난을 불려 일으켰다.


특정 정치인에 대한 직접적 의사 표현은 시민의 권리이자 민주적 정치 참여로 매우 바람직하다. 하지만 도를 지나친 과격한 표현과 인신공격, 조직적 방해 공작은 오히려 민주주의의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스마트폰의 보급과 문자 메시지, 온라인 메신저, SNS 등 다양한 의사 표현 통로가 발달함에 따라 익명의 다수에 의한 폭력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시민의 정치 참여라는 명목 하에 특정 정치인의 지지자들이 벌이는 '사이버불링(Cyberbullying)'이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선 결과는 내부 갈등으로 이어지는 듯했다. 이언주 민주당 의원은 경선 과정에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하며 "안철수 후보를 돕겠다"라며 민주당 탈당을 선언, 즉각 '국민의당'에 입당했다. 이 의원은 민주당 핵심 당원의 '문자 폭탄'에 대해서도 "굉장히 폭력적"이라고 비판했다. 이후 '문재인 vs 안철수' 양강 구도가 굳어질 것이라는 전망 아래 탈당 러시가 발생하지 않겠냐는 우려가 당 안팎에서 나왔다.


안철수 후보는 19대 총선에서 호남을 '싹쓸이'하며 상승기류를 탔고 단숨에 대권주자로 올라섰다. 토크 콘서트를 통해 쌓아 온 청년층 지지와 양당 제체를 타파하겠다는 거시적 정치 슬로건에 더해 합리적이고 전문가적인 이미지를 내세워 인기를 모았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자리에는 어딘가 2% 모자랐던 안 후보였으나, 민주당 경선에서 이탈한 표를 대거 흡수하며 문재인 후보를 턱 밑까지 추격했다. 주요 정당 5인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안 후보가 34.4%의 지지를 확보하며 38%의 문재인 후보를 오차범위 안쪽까지 몰아붙였다(2017년 4월 6일 엠브레인).


한편, 보수 진영도 동분서주 바쁘게 움직였다. 새누리당 비박계가 모여 창당한 '바른정당'은 기존의 낡고 고여버린 보수의 이미지에서 탈피하기 위해 노력했다. 유승민 상임고문과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전국을 돌며 '권역별 토론회'를 개최했고, 노타이 복장에 걷어올린 소매로 열정과 젊음을 피력했다. 이러한 참신한 시도를 통해 청년층, 특히 청년 보수층에서 호평을 얻어냈으나 더 이상의 외연 확장은 어려웠다. 당내 경선 결과 유승민 상임고문이 대통령 후보로 최종 결정됐다.


여당 '자유한국당'의 상황은 처참했다. 20대 총선 패배로 원내 제1당 지위를 민주당에게 내어준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역대 최다 규모 분당 사태를 겪었으며 기존 새누리당에서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교체하는 등 내부적 혼란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었다. 또한 본인들이 배출한 대통령의 과오로 치러지는 대선이니 만큼 정권을 재창출할 가능성이 매우 희박했다.


줄곧 출마설이 나돌았던 황교안 국무총리가 불출마를 선언하며 김진태 의원, 김관용 경북도지사, 이인제 전 의원 등 대표적 '친박' 인사들이 도전장을 던졌고 이러다 '도로 친박당'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하지만 경선 결과 54.2%의 압도적 득표율을 기록한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

홍 후보는 수락 연설에서 "좌파에서 둘, 얼치기 좌파에서 하나, 그리고 우파에서 홍준표가 나간다"라며 이번 대선이 진보 진영으로 기울어졌다는 점을 지적하고 보수의 단결을 호소했다. 집 나간 형제인 바른정당에 대해서는 "탄핵의 원인이 된 사람들"이라 하면서도 "문을 열어놓고 돌아오도록 기다리겠다"라며 보수 우파 대통합의 의지를 천명했다.


이후 홍준표 후보는 특유의 시원시원한 발언으로 대중에게 어필하는 데 성공했고, 전통적인 TK 보수 세력 결집을 이뤄냈으며, 안철수 후보에게 흩어졌던 영남권 지지를 여당으로 돌려오는 등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정제되지 않은 언행에 매일 같이 '막말' 논란이 터져 나왔고 종래부터 이어져온 '수구 꼰대' 이미지에서 탈각하지 못했다. 보다 신사적인 화법과 유연한 전략을 취했다면 문재인 후보와 치열한 경쟁을 벌여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한편으로, 자유한국당이 홍준표 경남도지사를 대선 후보로 확정한 3월 31일은 공교롭게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날이기도 하다. 자유한국당에게 있어 경사스러운 날인지 개탄스러운 날인지. 정치라는 게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이 글은 필자 개인의 생각이며 소속사 및 특정 집단과 관계가 없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광장에서 청와대로 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