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이다". 19대 대선은 많은 줄임말 유행어를 낳았다. 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이 될 것이라는 '어대문', 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을 뽑겠다는 '대깨문', 아버지가 나와도 문재인을 뽑겠다는 '아나문' 등 지금껏 이 정도로 대통령 선거가 축제화 된 적이 있던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민의 정치 참여 의지는 높았고 모두가 하나 되어 새로운 지도자를 맞기 위해 마음이 들떠있었다. 어쩌면 이러한 분위기는 부패와 불공정의 시대를 내 손으로 끝내겠다는 직접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의 표출이 아니었을까.
문재인 후보는 과거 18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대중적 인지도를 확보했고 진보진영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었다. 이러한 그의 존재감은 '촛불 정국'을 거치며 한 없이 팽창했으며 타락한 보수세력에 대한 실망감과 확실한 변화를 원하는 중도층의 좌클릭이 맞물려 큰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기타 대통령 후보들은 그저 문 후보를 공격하기에 급급했다. 어떻게든 문 후보의 결점을 찾아내어 파고들고자 했고 그를 통해 스스로의 선명성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이었다. 문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반대 편 국민'의 시선을 자신에게 가져오려 애썼다. 하지만 이미 공고하게 자리 잡은 콘트리트 지지 세력과 중도층을 대거 흡수한 문 후보는 흔들림 없이 북악산의 권좌를 향해 내달렸다. 말 그대로 파죽지세였다.
2017년 5월 9일 실시된 제19대 대통령 선거 결과, 문재인 후보가 41%의 득표율을 기록하여 24%에 그친 2위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를 가볍게 제치고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문재인 후보의 강점은 무엇이었을까? 그의 대통령 선거 공약을 살펴보자.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온통 '사람' 중심의 공약이라는 것이다. 경제, 사회, 정치, 안보, 모든 부문의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었다. 역대 가장 '사람 냄새나는' 후보가 아닐 수 없다. 권세에 취해 인간성을 잊어버린 여의도 정치권에 긴장감을 주는 인물이다.
문 후보는 공약집의 첫 페이지부터 중산층, 서민의 경제를 살리겠다 강조했다. 그를 위해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새로운 경제 정책 방향을 소개했다. 인프라와 제도가 갖춰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산층, 서민이 살기 힘든 것은 당장 내 주머니에 돈이 없기 때문이라는 발상이다. 국가가 나서 국민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만들어주면 자연스럽게 소비와 투자가 증진되고 이는 경제 발전을 위한 선순환의 토대가 된다는 말이다.
그는 이를 위해 우선적으로 대규모 공공부문 일자리를 창출해 '마중물'을 붓겠다고 공언했다. 5년간 21조의 예산을 투입해 약 81만 개 일자리를 만들어낼 것이며, 재원 조달은 재정지출의 개혁과 세입 확대로 충당하겠다는 계획이다.
4월 23일 열린 제4차 대선 TV 토론회에서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투입 금액과 목표 일자리 수의 단순 계산 결과 터무니없는 공약이라며 공격했고 "계산도 제대로 안 해보고 재원을 너무 낮춰 잡은 것이 아닌가"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문재인 후보는 예산에는 문제가 없으며 한국 전체 일자리 중 공공일자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7.6%에 불과해 OECD 평균 21.6%에 비해 "태부족하다"라며 공공일자리 확대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현재 많은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주52시간제'의 전면 시행과 비정규직 철폐, 최저임금인상 등도 대선 공약이었다. 국민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고 적게 일하지만 많이 버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생각이었다. 이러한 달콤한 공약을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기업 규모와 재정상황을 따지지 않은 '주52시간제' 도입은 중소기업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소상공인이 애를 먹는 작금의 사태가 벌어지리라 국민 대다수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예상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후일 명명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기점으로 폭발해버린 '공정'과 '정의'의 문제에 대해서도 문재인 후보는 강점을 발휘했다. 대기업의 횡포를 막고 중산층, 서민의 권리를 보장하겠다 공약했고 다중대표소송제와 같은 상법 개정을 예고했다. 또한 공직자의 윤리를 강조하며 특권을 없애겠다 역설했다.
이 부분에 있어서 문 후보는 역사상 가장 파격적인 제안을 했는데, 그것이 바로 '대통령 광화문 집무실' 공약이었다. 북악산 자락에 꽁꽁 숨어 있던 대통령의 집무실을 광화문으로 가져와 시민과 소통하고 국민과 밀접한 정치를 하겠다는 대찬 포부였다. 퇴근길에 국민들과 막걸리라도 한 잔 같이 하겠다고도 했다.
이처럼 거물급 정치인-대통령 후보 답지 않게 소탈하고 서민적인 모습으로 어필한 문 후보의 전략은 예상대로 큰 효과를 거두었다. 애초에 불가능한 공약이었든 어쨌든, 권력에 눈이 멀어버린 여타 정치인과는 다르다는 '사람' 문재인만의 '따뜻함'을 보여줄 수 있었다.
문 후보는 이에 더해 노인, 청년, 여성 등 사회적 약자를 챙기는 공약 또한 수 없이 내걸었다. 중년의 위기를 보듬어줄 '신중년 5060 안전망'이나 청년의 주거불안 해소를 위한 '청년주택 확보'를 비롯해 국군장병 급여 인상, 여성가족부의 강화, 남녀 동수 내각 구성 등 기존과는 무언가 다른, 확실히 '사람을 챙긴다'는 이미지를 줄 수 있는 공약을 선점했다.
문재인 후보는 줄곧 본인에게 제기되어왔던 '안보 불안' 이슈 또한 지혜롭게 대처했다. 단순히 국방력 강화를 통해 튼튼한 안보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안보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대화와 타협을 통한 '한반도의 평화'를 조성하겠다 강조했다.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여 비핵화와 남북관계 재정립에 힘써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전략이었다. 이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동안 어느 정도 가시적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활기를 띠었던 남북-미북 대화는 북한의 대화 테이블 걷어차기로 이내 정체기에 접어들었고 정권 후반기 최대의 과제가 되었다.
문재인 후보, 문재인 대통령은 여태껏 본 적 없는 정치인이다. 멋지게 차려입은 정장에 반짝이는 관용차를 타고 거드름을 피우며 불쑥 나온 배를 자랑하던 과거의 정치인들과는 다르다. 그는 정장보다 등산복이 어울리고 고급 구두보다 편한 운동화가 더 어울리는 사람이다. 이에 더해 멋진 헤어스타일과 청결감은 보너스다. 서민 냄새, 사람 냄새 풀풀 나는 정치인을 누가 싫어할까.
이렇다 보니 '문빠'로 불리는 팬덤 문화가 형성되지 않고 배길 수가 없다. 국가의 미래를 책임 질 지도자를 뽑는 대통령 선거가 아니라, 굿즈를 만들고 팬아트를 그려 '내 새끼' 아이돌을 뽑는 인기투표였다는 말이 나와도 어쩔 수가 없다. 그저 사람 자체가 인기가 많았던 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박근혜 전 대통령과 부패한 보수 세력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대한민국을 희망찬 미래로 이끌어 나가야 할 책임은 이제 문재인 대통령의 어깨에 짊어졌다. 정치 기계가 아닌 '사람' 문재인이 등장했으니 세상은 공정해질 것이며 정의로울 것이고 더 이상 눈물짓는 서민은 없을 것이다, 국민은 그렇게 기대했다.
국민은 이미 모든 준비가 돼 있었다. 과연 정치인들은 그들의 말처럼 진짜로 '준비'가 되어 있었을까?
어쨌든 대통령은 문재인이다.
*이 글은 필자 개인의 생각이며 소속사 및 특정 집단과 관계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