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손 잡을까요?
'적폐 청산'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문재인 정부의 정책은 크게 이 두 갈래로 요약된다.
지난 보수 정권 아래에서 알게 모르게 쌓여온 권력 기관의 부정부패와 구석구석 곪아버린 우리 사회의 병부를 도려내는 '적폐 청산'은 좀처럼 쉽지가 않다. 애초에 그저 이명박-박근혜 두 전 대통령을 철창에 구겨 넣어버리는 것만으로는 끝날 리 없었던 데 더해, 개혁 주체와 객체 간의 권력 갈등과 정치적 보복이 끊임없이 반복됐으며 그 과정에서 현 정부의 치부 또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야 말았기 때문이다. 간단히 서술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므로 '적폐 청산'에 대해서는 차후에 긴 호흡으로 다뤄보도록 하겠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 노선을 총괄하는 개념으로,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 정책', '대북화해협력정책'의 맥을 잇는다. 보수 정권 동안 단절되었던 남북 교류의 물꼬를 터 대화와 협력을 통한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을 목표로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7월 독일에서 이른바 '베를린 구상'을 발표하며 한반도 평화 체제의 로드맵을 공개했다. 공교롭게도 연설이 있기 며칠 전 북한이 미사일 시험 발사를 감행했고, 이는 김정은과 북한 정권은 여전히 대화 테이블에 나올 생각이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문 대통령은 연설에서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해 "매우 실망스럽고 대단히 잘못된 선택"이라면서 "북한이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경고했다. 이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결단만이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는 길"이라 말하며 "지금이 마지막 기회이며 가장 좋은 시기"라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의 정신을 기반으로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을 제거해 한반도의 평화를 만들어내고자 했다.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복귀시키기 위해 핵 미사일 폐기가 그들의 안보 불안 즉 '김정은 독재 체제의 붕괴'로 연결되지 않음을 약속하기도 했다. 어떻게 해서든 북한의 거듭된 무력 도발과 전쟁 위협을 끝내 평화의 길로 나아가고 싶었다.
쉽게 말해 '주먹보다 말로 해결하자'는 논리인데, 이를 위해서는 북한의 일관된 전향적 태도가 필요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장밋빛 미래를 쉽사리 상상할 수 없었다. 과거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대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몇 번이고 협상 테이블을 걷어차고는 핵 미사일을 휘둘러댄 북한의 전적이 화려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남북의 평화 무드 조성과는 별개로 UN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해제해야 하는 등 장애물이 즐비해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의 돌파구를 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남북이 손을 잡아야 한다며 몇 가지 제안을 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평창 올림픽에 북한이 참가하여 '평화 올림픽'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당장 실천할 수 있는 남북 교류의 카드가 전무한 상황에서 매우 획기적인 제안이었다. 하지만 베를린 구상을 발표한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7월 말 북한은 또다시 ICBM을 쏘아 올렸고 한반도의 평화 또한 저 멀리 먹구름 위로 날아가는 듯 보였다.
그런 북한으로부터 긍정적 시그널이 날아온 것은 2018년 1월 1일 새해 첫날이었다. "남조선에서 머지않아 열리는 겨울철 올림픽 경기 대회는 민족의 위상을 과시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며, 우리는 대표단 파견을 모함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으며 이를 위해 남북 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도 있을 것".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신년사를 통해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참가를 표명했다.
1988년 서울 하계 올림픽 이후 30년 만에 대한민국에서 개최되는 올림픽에 북한이 참가를 표명했다는 사실은 비단 국내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필자의 소속사를 포함한 국내외 언론사는 앞다투어 '북한의 올림픽 참가 표명'을 보도했으며 향후 어떠한 전개가 펼쳐질지 분석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개막식이 불과 1개월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북한의 참가를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신속한 조치가 필요했다. 우선 IOC의 의결을 통해 북한의 참가를 공식화하는 게 급선무였다. IOC와 남북 양측 NOC 그리고 평창올림픽 조직위원회는 1월 20일 스위스 로잔에서 '4자 회담'을 개최했다. 한국 측에서는 이희범 평창올림픽 조직위원장과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도종환 문화체육부장관이 참석했고, 북한에서는 김일국 체육상과 장웅 IOC 위원이 참석했다. 필자 또한 취재를 위해 로잔으로 향했으며 이는 외신기자 생활 중 첫 해외 출장이었다.
그동안의 촘촘한 물밑 작업 덕분이었는지 '4자 회담'은 무리 없이 마무리되었다. 회담 결과, 북한 선수단을 위해 3개 종목-5개 세부 종목의 추가 출전권이 제공됐으며, 남북 공동 입장 및 단일팀 구성, '한반도기' 사용이 결정됐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이와 같은 결정에 대해 "대단히 예외적"이라 평가했으며 "사상 최초로 한국과 북한이 스포츠의 이름으로 하나가 됐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이날의 결정은 그저 '북한의 올림픽 참가'라는 단순한 사건이 아니었다. 이는 북한의 지속적인 핵 미사일 도발과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나 대화와 상호 존중, 평화로운 공존으로 나아가는 아주 무거운 첫걸음이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반년 넘게 아무런 성과 없이 진통만을 거듭했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거두어낸 짜릿한 첫 쾌거였다. 드디어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이 글은 필자 개인의 생각이며 소속사 및 특정 집단과 관계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