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재보궐 선거'의 판세는 이미 국민의힘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있었다. 코로나 19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고 백신 수급 미비, 방역 조치의 불명확성 등 정부에 대한 불신과 피로감이 쌓이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조국 사태 등 이전부터 현 정부의 발목을 잡아왔던 '내로남불' 시리즈가 다시금 수면 위로 올라왔고, LH 사태를 거치며 정부 여당 요인들이 외쳐온 정의와 공정은 결국 '그들만의 정의'였다는 실망감이 터져 나왔다.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는 애초에 더불어민주당 소속 공직자의 파렴치한 성범죄로 인해 치러지는 것이었다. 자당의 근간인 당헌-당규를 개정하면서까지 억지로 후보를 내세운 더불어민주당을 상대로 국민의힘이 이기지 못하는 게 말이 안 되는 판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어떻게든 판을 뒤집어보려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 여당과의 유기적 협조가 가능하다는 점, 재빠르고 강력한 정책 집행이 가능하다는 점, 나야말로 유능하고 확실한 후보라는 점을 내세웠어야 했다. 그러나 고작 한다는 게 '생태탕' 타령이 전부였다. TV 뉴스고 신문이고 어디에서도 민주당 후보의 정책과 비전은 보이지 않았고 '오세훈이 생태탕을 먹었냐', '신발이 페라가모냐 텐디냐' 하는 흑색선전만 즐비했다. 현재 2021년은 이 같은 저열한 선거 전략이 먹히는 시대도 아니고 먹혀서도 안 되는 시대라는 것을 망각한 듯했다.
이번 재보궐 선거는 여당 더불어민주당의 대규모 선거 5연승의 꿈이 깨졌다는 것과 1년여 임기를 남긴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심판론에 불이 붙었다는 점 등 주목할 만한 부분이 많았다. 그중에 대중의 이목을 끈 것은 20대 남자의 72.5%가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를 지지했다는 점이었다. 이는 KBS, MBC, SBS 지상파 방송 3사의 공동출구조사 결과에 따른 것인데, 한정적인표본을 조사한 만큼일정 부분 현실과 괴리가 있을 수 있기에 100% 그러하다 보기는 어렵지만,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는 의미심장한 결과였다.
문제는 이 결과를 가지고 "20대 남성의 보수화"라는 식의 해석을 내놓고 있다는 점이다. 분명 특정 세대의 특정 성별이 특정 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했다는 건 놀라운 사실이나, 다양한 요인이 널려있음에도 불구하고 "오세훈을 찍었으니 보수다!"와 같은 이분법적논리로 연결짓는 것은 옳지 못하다.
그렇다면 진짜로 '이대남'은 모두 보수가 됐을까? 서울 시내 대학원에서 재학 중인 A 씨는 '이대남'의 압도적 오세훈 지지의 배경에는 "다양한 요인이 있다"라며, 정부 여당의 실정에 더해 LH 사태, 조국 사태 등 불공정 이슈를 언급했다. 보수 진영의 어젠다에 공감했다기보다 정부 여당에 대한 실망감이 앞섰다고 말했다.
종로구에 거주하는 L 씨는 "20대 남성 중 72.5%가 보수 지지자여서 오세훈을 찍은 것이 아니라 오세훈을 찍은 20대 남성들을 모아보니 전체의 72.5%가 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20대 남성 유권자는 각기 다른 이유로 박영선이 아닌 오세훈을 지지했을 뿐이며 이들을 '20대 남성'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어 보수화 됐다고 표현할 수는 없다는 견해다.
종합해보자면, 실로 20대 남성이 보수 우파가 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더불어민주당과 정부의 실패에 반대표를 던진 것뿐이다. 지난 4년간 정부여당이 보여온 '우리를 위한 공정, 나를 위한 정의'에 학을 뗀 것이고 안과 밖이 다른 '내로남불' 위선자들에 분노한 것이다. 어떠한 혜택도 누리지 못한 20대 남성들에게 남성이라는 이유 하나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여성에게 양보하라, 불이익을 감내하라 하는 불공정한 처사에 참지 못한 것이다. 여성의 어깨를 짓밟고 올라 출세를 거머쥔 장본인들인 4050 세대, 586세대가 스스로의 죄악감을 20대 남성에게 전가하는 부당한 현실에 견딜 수 없던 것이다. 이것은 20대 남성의 '보수화'가 아니라 '탈민주당화'다.
선거가 있기 한참 전인 작년 여름의 어느 날, 더불어민주당의 한 관계자 C 씨와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C 씨는 이 자리에서 "이남자(당시 20대 남자를 지칭하던 용어)들은 도대체 왜 보수화 하는가"라고 필자에게 물었다. 이에 필자는 보수화가 아니라 탈민주당화라고,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으면 모두 보수가 되는 것이냐고, 이분법적 논리로 보지 말아 달라고 충언 아닌 충언을 전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 필자의 충언이 민주당 내 '높으신 분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던 것인지 아니면 C 씨의 귀에도 닿지 않은 것인지 알 길이 없다만,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20대 남성이 보수화 했다"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시중에 뿌려대는 꼴을 보고 있자니 그제나 이제나 정신을 못 차린 것은 매한가지인 듯하다.
결국 20대 남성 '이대남'의 보수화라는 주장은 4050vs2030, 남성vs여성, 보수vs진보 등 이분법적 대립 프레임을 씌우는 정치적 말장난에 불과하다. 기껏해야 소규모 표본을 기반으로 한 통계를 두고 이쪽에 붙이고 저쪽에 붙이고 내 입맛대로 해석하는 말도 안 되는 사고방식의 말로다.
20대 남성 72.5%가 오세훈 후보를 지지했다는 사실에 더불어민주당은 내심 웃고 있을 것이다. 조국, 윤미향, 추윤갈등, LH-부동산, 일자리, 경제, '내로남불' 등 손 대기 어렵고 자신들의 실패를 죽어도 인정하기 싫은 온갖 문제들은 다 묻어두고 '2030 남자들이 보수 꼴통이 돼서 우리가 졌다!'라며 '정신승리'해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선거 패배에 낙심하고 있을 당원 동지 여러분들을 다독이고 결집시키기에도 '보수화'라는 기가 막힌 단어가 또 없을 것이다. 20대 남성의 72.5%가 왜 박영선이 아니라 오세훈을 찍었는지 그 이유를 아무리 떠들어본들 듣는 시늉조차 하지 않는다. 그게 바로 박영선이 아닌 오세훈을 찍은 이유인데도 말이다.
다른 한편에서 20대 남성의 압도적 오세훈 지지에 어깨가 한껏 솟아오른 국민의힘도 정신 차려야 한다. 보수 우파를 지지하고, 오세훈을 지지하고, 국민의힘이 너무 좋고 예뻐서 뽑아준 게 아니라는 것은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알고도 모른 척하는 게 제일 나쁜 놈이다. 안다면 아는 만큼 행동하고 기껏 모아놓은 민심이 도망가지 않도록 눈치를 살펴야 한다. 오랜만에 선거에서 이겼다고 '뽕'에 취해 넋을 놓는 순간 민심은 이전보다 더 큰 몽둥이를 들고 와 정수리를 내려칠 것이다.
선택지가 둘 중의 하나뿐이라면, 어차피 그 둘 다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둘 중에 덜 못난 놈을 뽑아주는 게 인지상정이다. 우리가 언제부터 최선의 선택을 해왔다고 생각하는가. 최선의 선택지가 주어진 적이 없으니 민심은 늘 차악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 사실을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이고 국민의힘이고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옳다구나! 정치적 재료로 써먹어야겠다!' 주판을 튕기고 있다면 이제는 그만 좀 하길 바란다.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시민은 정치인의 생각보다 매서운 눈초리로 날카로운 판단을 내린다. 이 점 명심하고 알아서들 잘 처신하길 부디부디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