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에도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문제

by 김코알라

2018년 11월 29일, 대법원은 이른바 '전범 기업'으로 불리는 미쓰비시중공업(三菱重工業)이 태평양전쟁 기간 중에 저지른 반인도적 불법행위를 인정하고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라 확정판결을 내렸다. 2018년 10월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역사적인 첫 배상 판결이 나온 지 꼬박 한 달만이었다.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피해자 김성주 할머니는 선고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우리를 위해 아낌없이 수고를 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하고 정말 감사하다"라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지난날의 고통과 피해를 법적으로 최종 인정받기까지 20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2017년 8월 11일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피해자가 광주지방법원으로부터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대법원의 연이은 확정 판결은, 그간 피해 보상 청구 수단이 마땅치 않아 가슴속에 묻어두고 견뎌왔던 피해자와 유족들이 비로소 '최후의 수단'으로 소송을 적극 활용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이들이 집단 추가 소송 제기를 검토하고 준비하는 동안에도 고등법원 이하에 계류 중이었던 사건들은 차근차근 움직였고, 연일 원고 승소 소식이 들려왔다. 일제 식민지배에 의한 고통을 법적으로 위로받을 수 있다는 희망감이 더해지는 나날이었다.


2019년 4월, 강제동원 피해자 및 유족들은 서울과 광주 지역을 중심으로 집단 추가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에 31명, 광주지방법원에 54명이었다. 이들이 소송 대상으로 하는 일본 기업의 수도 큰 폭으로 늘었다. 이전부터 소송을 진행 중이었던 신일철주금(現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 후지코시 등에 더해 니시마츠건설, 스미세키홀딩스, 니혼코크스 등 총 11개사의 이름이 피고란에 올랐다. 이후 광주에서는 원고 33명이 6개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 2차 추가 소송이 이어졌다.


대법원 및 지방법원의 판결을 권원으로 하는 강제집행 또한 진행 중이다. 원고들은 일본제철이 한국내에 보유한 '포스코 PNR'의 주식에 대한 압류와 매각 명령을 청구하였고,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은 2020년 8월 및 12월 공시송달을 통해 주식압류명령을 확정했다. 현재 매각명령에 대한 일본제철 측의 심문 답변서가 도착해있어 법원은 언제든 매각명령을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다.


「2019년 7월 23일 근로정신대 피해자 및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미쓰비시중공업의 자산에 대해 매각명령을 신청했다.」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근로정신대-강제동원 소송 또한 마찬가지로 미쓰비시중공업이 국내에 보유한 특허권, 상표권 등에 대한 압류 및 매각 명령 절차의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다.

이에 일본 정부는 여전히 자국 기업의 자산 매각이 이뤄질 경우 "심각한 상황을 초래한다"라며 "모든 선택지를 시야에 두고 의연하게 대응하겠다"라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근거로 한국이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소송을 통한 문제 해결에는 한계가 있다. 피해자의 대부분이 고령으로 그들에게는 더 이상 기다릴 시간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소송 제기부터 지방법원, 고등법원, 대법원 확정판결에 강제집행까지 이어지는 기나긴 여정을 견디고 버틸 여력이 없다. 그렇기에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2020년 1월 6일 강제동원 문제 해결 구상을 발표하는 이상갑 변호사(가운데 마이크)와 사진 좌측 끝부터 이국언 대표, 이동준 변호사 건너뛰고 임재성 변호사」


근로정신대 소송을 담당했던 이상갑 변호사는 과거 중국의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으로부터 배상을 받았다는 점을 언급하며 "중국은 받고 한국은 못 받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정부의 태도가 다르다는 것이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피해자들과 일본 기업들이 협의해 포괄적으로 화해하는 방법"이 되기를 소망한다며, "저희 노력 못지않게 한국 정부도 노력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현재 법무부 인권국장으로 있다. 정부의 요인이 된 만큼 나름의 역할을 다해주길 기대한다.


일본 정부는 직접 나서 피고 기업이 손해배상하지 말 것을 압박하고 있다. 한국의 개인과 일본의 기업 간의 소송임에도 불구하고 해당 사안의 정치적 외교적 영향을 고려해 정부가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일본 정부의 행태가 옳든 그르든, 자국민과 자국 기업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의 책임을 다 하고 있다 볼 수 있다.

반면에 대한민국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대법원 판결이 이치에 맞건 정의롭건 관계없이 분명히 양국 사이의 외교적 문제로 불거질 것이 분명함에도 손을 놓고 있었다. 일본이 길길이 날뛰며 반발할 때마다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라는 공허만 말만 앵무새처럼 되뇐다. 국민의 억울함에 귀 기울여야 할 정부가 책임과 의무를 방기한다면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한 채 눈을 감은 피해자들의 억울함은 과연 누가 달래줄 수 있단 말인가?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기 '2015 한일 위안부 합의'를 재검토하며 일제의 만행에 의한 피해를 정치적 외교적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못을 박았다. 이것이 치명적인 실책이었다. 이제는 솔직히 정치적 외교적 해결 말고는 손 쓸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때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21년 1월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동의를 전제로 "양국 간 외교적 해법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라고 말했다.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태도의 변화가 엿보였다.

지금부터라도 자신들의 잘못된 기본 인식으로부터 탈피하고, 해결 방법을 스스로 파쇄해온 과거를 돌아보며 수정할 것이 있다면 수정하여 일본과 적극 협의하길 바란다. 지금 이 순간에도 법정의 시계는 돌아가고 있다. 일본의 비겁한 '시간 끌기' 작전에 정부가 하염없이 휘둘리는 동안 피해 당사자는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고 있다.


*이 글은 필자 개인의 생각이며 소속사 및 특정 집단과 관계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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