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꼭 해야 할 이야기

한일 관계

by 김코알라

"국민 여러분, 일본과 우리 사이에는 과거 불행했던 역사가 있었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 한국의 성장은 일본의 발전에 도움이 되고 일본의 성장은 한국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1년 3월 1일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열린 102주년 3.1절 기념식에서 이같이 말했다. 문 대통령의 말처럼 한국과 일본은 불행한 과거사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서로를 도우며 상생 발전해온 가장 가까운 이웃이다.


「102주년 3.1절 기념식에서 연설하는 문재인 대통령 」=대한민국 청와대=


필자는 2016년 가을 일본계 언론사에 입사했다. 당시 한국 사회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국정농단 사태가 한창이었다. 이후 치러진 조기 대선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승리했고 우리 사회는 '적폐 청산'이라는 이름 아래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한국과 일본 사이에 자리한 해묵은 과거사의 청산이었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한일 관계를 논하거든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더불어 가장 앞에 오는 한일 간의 뼈아픈 사건. 필자는 주로 강제동원 사건 취재를 담당했다. 창피한 이야기지만, 나는 외신기자가 되기 전까지 일제의 전쟁 야욕에 강제로 동원된 피해자가 이렇게 많은지 알지 못했다. 그저 역사 수업 시간에 배운 '일본제국의 폭압적 식민지배가 있었고 그로 인해 헤아릴 수조차 없이 큰 피해를 입었다'는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이후 취재를 거듭하며 여러 자료를 접하고 나름대로 공부를 하고 있자니 그 피해 규모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박인환 건국대 교수가 2018년 '아시아 태평양의 평화 번영을 위한 국제대회'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대일항쟁기피해조사지원위원회'의 심의 의결을 거쳐 인정된 피해 사례는 21만 8,639건에 달했다. 자료 부족 등으로 피해 여부를 판정하지 못한 사례 또한 6,000여 건 존재했다. 일제에 의한 강제동원 피해자는, 당사자의 사망 또는 자료의 부족 등으로 인하여 조사 주체에 따라 다르긴 하나, 대체로 20~40만 명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많게는 200만 명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한편으로 2016년 가을 당시에만 해도 이미 대한민국 법원에 계류 중인 강제동원 피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15건, 피해 당사자 및 유족으로 구성된 원고가 900여 명에 달하는 상황이었다. 그동안 나름대로 국사, 근현대사를 잘 알고 있다 생각해왔건만 참혹한 역사 앞에 겸허해지는 나날이었다.


박근혜 정부 당시에도 일본 전범기업에 의한 강제동원 피해자 손해배상 소송이 몇 건이고 법원에 계류 중이었는데, 법원이 한일 관계의 정치적 외교적 영향을 고려해 VIP의 눈치를 살피며 '깔아뭉개는' 중이었다. 이후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의 '재판 거래', '사법 농단' 등의 문제가 밝혀지며 몇 년간 묵혀두었던 강제동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2018년 5월 31일 부산 일본총영사관 인근에 놓여있던 강제동원 '노동자상'이 철거돼 시내 역사관에 임시 보관 중인 모습」


2018년 10월 30일, 한일관계의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를 가르는 역사적 판결이 있었다. 대법원은 이날 강제동원 피해자 4명에 대한 일본 기업의 가해 사실을 인정하고 위자료를 지급하라며 확정 판결했다. 지난 2005년 2월에 시작해 장장 13년이라는 세월이 걸린 판결이었다.


오랜 시간 한일 간의 외교적 정치적 갈등의 중심에 서있었던 만큼 이 사건은 수많은 쟁점과 논란을 안고 있었다. 그 가운데 본 사건의 근원적 쟁점이자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피해자들에게 과연 '청구권'이 존재하는가"라는 문제였다. 일본은 그동안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근거로 피해자들의 모든 재판 청구권이 소멸되었음을 주장해 왔다. 대법원은 이러한 쟁점에 대해 비록 대법관들 사이에 의견이 갈리기는 하였으나, '청구권 협정' 당시 일본 정부는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강제징용을 원천적으로 부인하였다는 점을 들어 "강제동원 위자료 청구권이 협정 적용 대상에 포함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판단했다. 이는 수십만 수백만의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재판을 통한 구제'를 받을 권리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귀중한 근거가 됐다.


재판의 원고였던 강제동원 피해자 이춘식 할아버지는 판결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말할 것도 없이 감사한 심정이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소송 제기 당시에는 네 명의 피해자가 모두 생존해 있었는데 이날 승소를 손에 쥔 사람은 이춘식 할아버지 단 한 명뿐이었다. 이 할아버지는 "나 혼자 오늘 재판을 받아서 마음이 아프다. 조금만 참고 견디지... 눈물이 나오고 서럽기 짝이 없다"라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90세를 훌쩍 넘긴 노인의 타들어가는 목소리를 달래주기에 우리나라 사법부는 지극히 정치적이었고 일본 정부, 일본 기업은 너무나도 무책임했다.


「2018년 9월 11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고노 다로 일본 외무대신이 악수하고 있다」=외교부=

일본 정부는 판결 직후 고노 다로(河野太郎) 외무대신 명의 담화를 발표해 "결코 수용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 대법원의 판결이 "일한청구권협정(日韓請求権協定) 제2조에 반하며, 일본 기업에 부당한 불이익을 줄 뿐만 아니라 65년 국교정상화 이래로 쌓아온 우호협력관계를 뿌리부터 뒤집는 것"이라고 거세가 반발했다. 이어 한국 정부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국제재판을 포함한 모든 선택지를 시야에 두고 의연하게 대응해 나가겠다"라고 엄포를 놓았다.


일본제국의 저지른 반인륜적 범죄에는 시효가 없으니 일본 스스로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진정한 사죄와 배상을 해야 한다 말하는 한국. 모든 것은 과거의 일이며 지난 세월 몇 번이고 사죄와 배상을 위한 노력을 다 해왔고 이미 정치적 외교적 수단을 통해 모든 문제가 해결됐으니 그만 좀 하라는 일본. 양국 사이를 가로지르는 견해 차이는 현해탄 보다 깊고 험하다.


지난 5년간 일본계 언론사에서 외신기자로 일해오며 마주한 한일관계는, 솔직히 말하자면 "해결 방법이 없다"라고 요약하고 싶다. 해묵은 반일감정과 한일 간 경쟁의식이 팽배한 한국 사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국민들은 조속한 문제 해결과 관계 개선을 통해 건전하고 우호적인 양국 관계로 나아가길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중에는 분명히 한일 갈등, 역사 갈등을 정치적 재료로 활용하는 비열한 자들이 존재하고 이를 통해 금전적 이득과 사회적 영향력을 주머니에 챙긴 자들이 존재한다. 한국도 일본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저열하고 반 사회적인 이득에 눈이 멀어버린 자들이 존재하는 한 한일 관계의 건전한 해결은 요원하기만 하다.


필자는 역사학자도 아니고 전술했다시피 역사의 단편만을 바라보고 자라온 일개 소시민에 불과하다. 어쭙잖은 실력으로 주워 담은 취재 자료에 의존하고 있기에 앞으로 연재할 글에 팩트에 어긋나는 내용이 담길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잘 알지도 못하는 놈이 썼네' 하며 따끔하게 지적해 주길 바란다.


*이 글은 필자 개인의 생각이며 소속사 및 특정 집단과 관계가 없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연극이 끝나고 난 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