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7년 1월 1일 00시, 부산 서면의 막걸리 주점에서 새해 첫 술잔을 들이켰다. 술집이 떠내려가라 새해 인사를 주고받으며 연신 술잔을 부딪히는 젊은이들의 열기에 취했는지, 하루 종일 취재에 시달린 두 명의 외신기자 아저씨는 그날의 피로도 잊은 채 연거푸 '생탁'을 목구멍에 밀어 넣기에 여념이 없었다.
'2015 한일 위안부 합의'가 있은 지 꼬박 1년이 된 2016년 12월 28일, 부산 겨레하나와 민주노총 부산지부 등 시민단체는 부산 일본 총영사관 후문 앞 인도에 '평화의 소녀상'을 기습적으로 설치했다. 일본 정부와 부산시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감행된 기습 공격이었다.
그러나 이를 지켜보고 있던 부산 동구청은 '소녀상'을 도로법상 '불법 적치물'로 판단, 경찰 병력을 대동해 강체 철거를 집행했다. 철거에 저항하는 시민단체와 이를 제지하는 경찰 병력의 충돌이 이어졌다. 예견된 아수라장이었다.
「부산 일본 총영사관 후문 앞 인도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 일장기를 마주 보고 있다」
'소녀상'의 철거 소식이 알려지자 부산 동구청에는 시민의 항의가 쇄도했다. 그 와중에 박삼성 당시 부산 동구청장이 휴가를 내고 잠적해버렸고, 이는 가뜩이나 불타오르던 부산 민심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됐다.
이틀 뒤인 30일, 박삼성 동구청장은 결국 고개를 숙였다. 박 청장은 기자회견에서 기습 설치가 있기 수개월 전부터 시민단체 관계자와 면담을 갖고 있었으며, 본인은 그동안 "소녀상에 대해 한 번도 거부해 본 적이 없다"라고 해명했다. 그는 "(소녀상을) 빨리 돌려드려서 시민단체 여러분들이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 좋겠다"라며 "여러분들의 입장에 따르겠다"라고 물러섰다. '소녀상'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2016년 12월 31일, 부산 최대 번화가인 서면에서 열린 촛불집회 참석자들이 행진을 시작했다. 선두 차량의 스피커에서는 연신 민중가요가 울려 퍼졌고, 꽹과리를 치며 노래하는 사람, 촛불을 양손에 들고 구호를 외치는 사람, 깃발을 흔들며 행진하는 각계각층의 시민단체들이 줄지었다. 빼곡히 모인 인파로 중앙대로는 말 그대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촛불 행렬은 부산 일본 총영사관 후문 앞 '소녀상'에서 멈춰 섰다. 누군가 감격에 찬 목소리로 부산 '소녀상'이 설치되었음을 알리자 수 천의 시민이 한 목소리로 카운트를 세었고 이윽고 흰 천막에 가려진 '소녀상'이 세상 밖에 모습을 드러냈다. '평화의 소녀상'이 2011년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 처음 등장한 이래로 일본의 재외 공관 앞에 '소녀상'이 세워진 두 번째 사례가 됐다.
이에 일본 정부는 '외국 공관의 안녕'을 보장해야 한다는 비엔나 협약 등을 근거로 들어 강하게 반발했다. 대응 조처로 나가미네 야스마사 일본대사와 모리모토 야스히로 부산총영사가 일시 귀국했으며, 양국 간 고위급 협의를 줄지어 중단시켰다.
부산 '소녀상' 설치에 부정적인 것은 비단 일본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사회 '내부의 적'들은 제막식 이후 '소녀상' 주변에 쓰레기와 폐가구를 적치했고, '소녀상'을 고의적으로 훼손하거나 "즉시 철거"를 요구하는 현수막을 내거는 등 악의적인 행위를 거듭했다.
「부산 '소녀상' 인근에 고의로 버려진 쓰레기」=페이스북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 갈무리=
이에 부산 동구청은 '소녀상' 주변에 CCTV를 설치하여 실시간 감시를 강화했으며, 시민단체는 '1인 시위'를 곁들인 '소녀상 지킴이' 활동을 전개했다.
이후 2017년 6월 말, 부산시의회가 '부산광역시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 및 기념사업에 관한 조례'(일명 소녀상 조례)를 제정함으로써 부산시가 나서서 '소녀상'을 관리하고 악의적 행위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녀상'을 훼손하고 조롱하려는 시도는 끊이지 않고 있다. 일본 총영사관 앞에 '소녀상'을 세우고 밤낮으로 지키는 부산 시민단체의 가슴 뜨거운 싸움은 언제까지나 현재진행형이다.
「부산 일본 총영사관 앞 중앙대로에서 시위대와 경찰 병력이 대치하고 있다」
2018년 5월, 다시 한번 부산 일본 총영사관을 찾았다. 이번에는 일본 제국에 의해 강제 동원된 피해자를 기리기 위한 '노동자상' 설치가 예정돼 있었다. 앞뒤 상황은 '소녀상' 때와 흡사했다. 총영사관 앞에 '노동자상'을 떡하니 설치하고 싶은 시민단체와 이를 저지하는 경찰 병력과의 몸싸움이 이어졌다.
다른 점이 있다면, 역시 시위와 집회에 익숙한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결집한 '노동자' 단체인 만큼 전투력이 남달랐다는 점이다. 그들은 뙤약볕이 이글거리는 부산 중앙대로 한복판에서 경찰 병력을 향해 욕설 섞인 고성을 지르며 몸을 내던졌다.
이윽고 부산 동구청이 행정대집행을 단행했고 '노동자상'은 부산 남구의 '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 임시 보관됐다. 지게차로 들어 올려 트럭에 싣는 등 강제 철거와 압수 과정에서 '노동자상'이 일부 훼손되기도 했다. 시민단체는 '역사관'으로 몰려들었고 '노동자상'을 되찾기 위한 몸싸움은 해질녘까지 이어졌다.
「경찰 병력에 둘러싸인 '노동자상'(안쪽) / 일제강제동원역사관 앞에서 경찰 병력과 몸싸움을 벌이는 민중당 당원」
서로 뺏고 빼앗기고, 기습 설치에는 기습 철거로 맞불을 놓던 시민단체와 부산시 동구청의 지난한 싸움은 이듬해 2019년 3월에서야 끝이 났다. 시민단체가 동구청으로부터 돌려받은 '노동자상'을 '소녀상'과 약 100m 떨어진 정발 장군 동상 앞에 두기로 함으로써 사태는 일단락됐다. '노동자상'이 치켜 든 횃불은 일본 총영사관을 향하고 있다.
시민단체는 이에 멈추지 않고 '노동자상'과 '소녀상'을 잇는 거리를 '항일거리'라 명명하며 현판을 꽂았다. 이번에도 물론 기습 설치였다. 경찰 병력과의 충돌은 불 보듯 뻔했고, 여태껏 몇 번이고 반복한 패턴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되풀이했다.
「부산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정발 장군 공원에 '항일거리' 팻말을 기습 설치하고 있다」=시민 제공=
부산 시민의 뜨거운 열정과 지칠 줄 모르는 행동력에 감탄해야 할지, 그들에 맞서 몇 번이고 힘겨루기를 마다하지 않는 부산 경찰과 동구청이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평화의 나라 충청도' 아저씨인 필자의 온도계로는 도무지 잴 수가 없다. 뜨겁다! 부산!
*이 글은 필자 개인의 생각이며 소속사 및 특정 집단과 관계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