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문제, 선수 교체!

경기의 룰을 바꿀 수는 없으니

by 김코알라

2021년 4월 21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각하시키며 한일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필자가 비록 법률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비루한 취재 실력을 종합해 이해해보건대, 지난 4월의 판결을 보다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아래와 같다.


우선 가장 큰 쟁점은 '국가 면제'의 인정 여부였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소송 대리인단은 그동안 "다른 실효적인 구제수단이 없다"라며 "최후적 수단으로 선택한 민사소송까지 '국가 면제'를 적용하는 것은 재판청구권을 부인하는 것"이라 주장해왔다. 대한민국 헌법질서와 국제 관습으로 자리 잡고 있는 피해자의 '재판받을 권리'를 존중하여 '국가 면제' 적용을 제한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다수 국가의 사례를 들어 '국가 면제'에 대한 관행이 변화되고 있으며 "자국민이 외국에서 기본적인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당했을 때 국가는 해당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즉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심각한 인권 침해이며 △피해자에게는 더 이상의 구제수단이 없고 △따라서 이 소송에까지 '국가 면제'를 적용해서는 안된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재판부의 생각은 달랐다. 재판부는 대한민국은 외국을 상대로 한 민사 재판권 행사 범위에 대한 법률을 제정하지 않았으며, 피고인 일본국과의 사이에 민사 재판권을 인정하는 조약 또한 체결한 바가 없으므로, 사건의 쟁점인 "피고에 대한 '국가 면제' 인정 여부는 오로지 '국제 관습법'에 따라 판단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나아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구제해야 하는 현실적인 필요성이 있더라도 "기존의 국제 관습법에서 인정되지 아니한 새로운 예외의 창설 문제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라며 원고 대리인단이 주장하는 '국가 면제' 관행의 변화에 대해서도 보수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또 하나의 쟁점이자 일본 정부가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는 '2015 한일 위안부 합의'를 통한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현재에도 유효하게 존속하고 있다"라고 판단했다. 그 이유로 △주무부처인 외교부 장관이 공식 합의임을 인정하고 있으며 △재협상 요구를 하지 않을 의사를 밝혔고 △이러한 태도는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2015 한일 위안부 합의'라는 외교적 구제수단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원고 대리인단이 주장하는 '최후의 수단으로써의 민사소송'을 인정하지 않았다.


앞선 1월 8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4민사부(재판장 김성곤)로부터 원고 승소 판결을 받아낸 소송(1차)과 비교해 그 이유도 결과도 모두 정반대였다.


지난 2021년 5월 6일, 각하 판결을 받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2차 소송의 항소장이 접수됐다. 2016년 12월에 소송을 제기했던 당시 생존 및 사망 피해자 16명 중 상속인 확인 불가 등을 제외한 12명의 피해자가 항소 제기에 참여했다.

이용수 할머니와 함께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에 누구보다 목소리를 높여왔던 길원옥 할머니는 결국 항소를 포기했다. 국내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판결 결과를 인정하는 것이 아닌 '정의기억연대 등이 주도하는 소송에 참여하지 않겠다'라는 취지에서 항소를 포기했다고 한다. 현재 길 할머니를 둘러싸고는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전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에 의한 '학대 논란'이 일고 있다.


솔직히 말해 민간의 역량은 딱 여기까지인 듯하다. 이제는 정부가 나서야 할 차례다. 선수 교체다.


문재인 대통령은 1월 18일 춘추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일본군 '위안부' 1차 소송과 관련하여 "솔직히 조금 곤혹스러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배상 판결의 강제집행에 대해서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그동안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이유로 직접적인 의사 표현을 아껴왔던 문 대통령의 변화된 인식을 엿볼 수 있었다.


애초에 첫 단추부터가 문제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전에도 취임 후에도, 국가와 국가 사이의 약속이 버젓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했다. 과거의 합의가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어떠한 성과를 냈는지,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하는지는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저 '피해자 중심주의'와 '적폐 청산'만을 외치며 흠집 내기에 바빴다.

그러는 사이에 피해자와 피해자가 갈라섰고,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시민사회단체가 서로의 멱살을 잡으며 갈래갈래 찢겨나갔다.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에는 불필요한 잡음과 의혹들이 넘쳐났으며 결국 본질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진정 원하는 것이 이것이었나?


외국에 의해 자국민이 피해를 입었다면 국가가 대신 전면에 나서 전문적이고 권위 있는 교섭으로 피해자의 억울함을 달래줘야 함이 마땅하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 특히 문재인 정부는 그러지 않았다. 정보력도 자본력도 모자란 개인이 직접 발 벗고 나서게 만들었다. 국가 대 개인이라는, 체급이 맞지도 않는 싸움을 방관하며 사실상 종용했다. 이는 정부로서의 책임 방기이며 명백한 정책 실패다.


2021년 4월 21일, 일본군 '위안부' 소송(2차)을 각하한 민성철 재판장은 선고 말미에 아래와 같이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피고로 인해 많은 고통을 겪었다. 오랜 시간 법적 분쟁을 거친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았다. 2015년 합의도 고통에 비하면 피해자들에 충분히 만족스럽다 볼 수 없다.

이 법원은 피해자들이 피고에 대한 청구권이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한일 합의로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문제가 모두 해결됐다고 보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국제 관습법에 따르면 외국인 피고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 피해 회복 등 문제 해결은 일본과의 외교적 교섭 등 대내외적 노력으로 이뤄져야 한다.

(...) 이 사건에서 피고에게 국가 면제를 인정하는 것은, 이미 대한민국과 피고 사이에 이루어진 외교적 합의의 효력을 존중하고, 추가적인 외교적 교섭을 원활하게 하기 위함이지, 일방적으로 원고들에게 불의한 결과를 강요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1년이 채 남지 않았다. 민간의 역량은 밑천이 드러났고, 사법부에게는 과거사 문제 해결의 '재량'이 없다. 선택지는 '정부가 나서는 것' 단 하나뿐이다. 경기의 룰을 바꿀 수는 없으니 돌고 돌아 결국 '정치적 해결'이다. 정치적 외교적 해결을 하려거든 지금 당장 움직여야 한다.

외신기자로 근무하며 문 대통령의 한일관계 전략을 모두 지켜본 바, 지난 4년간 앵무새처럼 반복해온 말씀을 그대로 되돌려드리고 싶다. 부디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시라.


*이 글은 필자 개인의 생각이며 소속사 및 특정 집단과 관계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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