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 받는 '풀뿌리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호소
*이 글은 '사단법인 청정' 뉴스레터 2022년 7월호 칼럼입니다(작성: 2022년 06월 27일).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역대 두 번째로 낮은 투표율 기록
낮은 투표율은 지배 '정당성'과 '대표성'의 문제 야기
투표율 제고 위해 유권자의 '정치 신뢰' 회복해야
당선인들은 초심 지키며 사회의 발전과 번영에 헌신하길
2022년 6월 1일 투·개표한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전국 투표율은 50.9%로 2002년 제3회 지방선거의 48.9%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낮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이는 과거 최고 투표율을 기록한 1995년 제1회 지방선거(68.4%) 대비 17.5% 포인트나 낮은 수치다.
낮은 투표율은 두 가지 문제를 낳는다. 첫째로 저조한 투표율 아래 선출된 대의기관이 과연 일반 대중으로부터 정당성과 권위를 인정받아 정상적인 통치력을 행사할 수 있는가 하는 ‘지배(Governance)'의 문제이고, 둘째로 낮은 투표율이 시사하는 바처럼 유권자 대다수의 의사를 반영하지 않은 대의기관이 과연 진정으로 ‘대표’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나아가 대다수 유권자가 요구하는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할 수 있는지에 대한 ‘대표성(Representation)’의 문제다. 특히 유권자의 삶에 가장 밀접한 영향을 미치는 지역 정치인을 선출하는 지방선거의 투표율이 눈에 띄게 저조하다면, 이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존재 이유에 대한 의문을 품게 하며 나아가 우리나라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을 야기할 수 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 지방선거 모두 끝을 모르는 투표율 하락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혹자는 이를 두고 민주화 이후 실천적 민주주의에 대한 열기가 점차 식어감에 따라 발생하는 자연적인 현상으로 분석한다. 과거 이른바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의 경우 사회 전반의 공통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투표에 참여해야 한다는 시민의 의무감과 정치적 효능감을 톡톡히 느꼈을 것이다. 반면 현대의 우리는 개개인의 급진적 다원화와 더불어 민주주의 시스템이 원활히 작동하고 있는 만큼 투표를 통하여 사회의 격변을 초래할 수 있다(혹은 해야 한다)는 정치적 효능감과 의무감이 과거에 비하여 높지 않다.
다만 필자는 한 발짝 더 나아가 그 원인을 정치권에 대한 지대한 불신과 지역주의의 팽배 그리고 ‘투표를 해도 바뀔 것이 없다’라는 일종의 좌절감에서 찾고자 한다. 기호 1번을 뽑든 기호 2번을 뽑든 기호 26번을 뽑든 결과가 '그 나물에 그 밥'이라면 힘들여 선거에 참여할 이유가 없다. 정치적 효능감이나 시민의 의무감과 같이 머리 아픈 표현을 사용하지 않아도 우리 사회 모두가 명징하게 공유하는 인식일 것이다. 시쳇말로 '고인물'이 되어버린 헌 술은 모두 퍼내고, 새 부대에 새 술을 담지 않고는 해결되지 않을 일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당선인 통계에 따르면 이번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결과, 30대 이하 당선인이 기초의회 2,987명 중 333명(11.1%), 광역의회 873명 중 83명(9.5%)이었다. 직전 선거까지 5~6%에 머무르던 30대 이하 당선인의 비율이 처음으로 10%를 돌파하였다. 그간 정치권의 ‘아웃사이더’였던 청년들이 풀뿌리 정치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여 대표성 확대를 이끌어낸 것으로 매우 고무적인 결과다. 우리 '사단법인 청정'에서도 7명의 지방의원이 탄생하였다. 수년에 걸친 노력 끝에 참으로 소중한 결실이다.
35년을 이어온 민주주의의 가치를 수호하고 정치가 다시금 신뢰 받기 위해서는 지방정치가 바로 서야 한다. 울창한 민주주의의 숲을 이루려거든 뿌리가 굳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간 지방정치가 여의도의 ‘지역 사무소’에 불과하다는 오명을 쓰고 살았다면, 이제는 철저히 바뀌어야 한다. 지역구 국회의원과 ‘후견인-피후견인’ 관계로 얽혀 보신과 연명에 급급하던 과거와는 과감히 결별하고 오로지 지역주민의 더욱 나은 삶을 위해 봉사하는 본연의 자세로 돌아와야 한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리는 법이다. 풀뿌리 민주주의에 투신하고자 마음먹었던 초심을 잃지 말고 진정 유권자만을 바라보며 우리 사회의 발전과 번영에 헌신하기를 바란다. 7월 1일 대장정의 첫발을 내디딜 지역의 대표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아래로부터의 정치 개혁에 참된 역할을 할 수 있길 기대한다.
*이 글은 필자 개인의 생각이며 소속사 및 특정 집단과 관계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