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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코알라 Sep 05. 2022

청년활용법:
현인과 소인배

이퇴계 기대승 그리고 여의도

*이 글은 '사단법인 청정' 뉴스레터를 위해 작성한 글입니다(작성: 2022년 07월 28일).


정치권에 만연한 청년 '토사구팽' 처참하다

개혁 혁신 거부한 채 권력에 몰두하면 결국 궤멸

퇴계와 고봉의 세대를 넘은 존중과 이해 배우자


조선 유학의 정점인 성균관 대사성을 지낸 퇴계 이황에게는 어린 제자가 하나 있었다. 그는 이제 막 과거에 급제한 31살의 풋내기 고봉 기대승이다. 당시 퇴계는 57세로 지금의 차관에 해당하는 공조참판이었고 고봉은 종 9품 말단 공무원이었다. 둘은 나이가 곱절 가까이 차이가 났음에도 직급도 나이도 뛰어넘어 학문을 교류하였고 '사단칠정논변'을 통해 철학 사상을 심화시켰다. 이미 학문과 공직에서 최고의 자리에 있었음에도 한참 어린 유학자 고봉을 존중하며 충언을 주고받았던 퇴계의 성품은 큰 그릇을 가진 어른이란 무엇인가를 알려준다.


최근 '정치 세대교체'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는다.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와 대통령선거, 지방선거 등 굵직한 정치 이벤트에서 2030 세대의 '청년 표심'이 승패를 좌우하며 정계 돌풍의 핵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낭인이 되어버린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은 한때 민주당 세대교체의 아이콘으로 불렸다. 비록 그가 '젊은 여성 페미니스트'라는 특성만으로 위원장에 올라 당 안팎의 비판을 받았으나, '586세대'가 주름잡고 있는 민주당에서 90년대생 지도자가 탄생했다는 사실은 가히 놀라웠다. 국민의힘 또한 사상 최연소 36세 당 대표를 선출하며 당 리빌딩의 기회를 맞이했다. 이준석 대표가 당을 혁신하는 과정에서 여러 잡음이 있었으나, 두 차례의 전국단위선거에서 승리하며 청년을 주축으로 한 '세대포위전략'이 유효함을 증명했다. 젊은 지도자들은 전국을 뛰어다니며 "어쩌면 정치가 변화할 수 있겠다"라는 한 가닥 희망 혹은 의구심을 2030 세대에게 품게 했다. 좋든 싫든 박 전 위원장과 이 대표는 '정치 세대교체'의 표상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뛰어난 혹은 충격적인 '신세대 정치'가 전국 각지에서 일고 있는 상황에 대해 우리의 기성세대는 어떻게 응답했나. 안타깝게도 기성세대의 '청년 활용법'은 여전히 음울하여 희망적이지 않다. 청년을 대표하고, 청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인물들이 제아무리 발 벗고 전국을 누빈다 한들 '혁신'이나 '개혁'을 입에 담는 순간 기성세대의 눈 밖에 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당과 정권을 위해 용쓰고 다녀봤자 기성세대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저 '편 가르기'의 제물이 될 뿐이다. 박 위원장이나 이 대표와 같이 청년층의 마음을 홀릴 수 있는, 시쳇말로 '한가락하는' 인물이라 할지라도 쓸모가 없어지면 그대로 '팽'이다. 잘려 나간 청년 지도자들의 목에 걸려있던 '세대교체'라는 슬로건은 빛 좋은 개살구만도 못하게 됐다.


겨우 걸음마를 시작한 청년 정치인이 감당하기에 여의도는 너무나도 험난하다. 한 계단 도약하기 위해 의탁할 든든한 언덕인 줄 알았으나 등 뒤에 칼을 숨긴 채 웃음 짓는 '유다' 소굴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앞에서 못 할 말을 뒤에서 쑥덕이고, 뒤에서도 못 할 말을 앞에서 내뱉고 있으니 처참하기 이를 데 없다. 보혁 가릴 것 없이 청년을 대하는 태도가 한결같으니 2030 세대가 분노하고 정치에 관심을 끊는 게 당연하다. 미래를 책임질 청년을 이런 식으로 소모한다면 과연 어느 청년이 국가를 위해, 정치의 성숙을 위해 헌신하고자 선뜻 나서겠는가.


개중에는 '정치병'에 걸려 횡설수설하는 청년도 있다. 그러니 청년의 말이 무조건 옳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이 새로운 시각에서 충언하면 정성스레 귀담아듣고, 그른 말을 하면 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두루두루 보살필 수 있어야 한다. 연륜에 걸맞은 큰 그릇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까마득한 아랫사람의 충언에 귀 기울이며 동등한 위치에서 존중해주었던 퇴계의 여유를 본받아야 한다. 소인배처럼 개혁도 혁신도 거부한 채 권력에만 눈이 멀었다면 결국 궤멸할 뿐이다. 새로 난 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여 모두 뽑아버려서야 잇몸이 성할 수 없고 애꿎은 틀니 탓만 하게 될 터이다.


*이 글은 필자 개인의 생각이며 소속사 및 특정 집단과 관계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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