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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코알라 Aug 31. 2022

애송이가 되어버린 그들에게

그래서, 너 혹시 뭐 돼?

지난해 말부터 반짝 인기를 끌었던 유행어가 있다. "너 혹시 뭐 돼?". 유명 뷰티 유튜버 '레오제이'가 잘난 척 건방 떠는 친구, 무례한 말을 하는 친구에게 유머러스하게 일침을 가하며 사용한 표현이다. 어찌 된 일인지 점점 더 '나대는' 인간들과 부딪히는 일이 많아지는 요즈음을 달래주는 유쾌함이 느껴진다.


언제부터인가 일견 정치에 '빠삭하다'는 어중이떠중이들이 이곳저곳에서 혀를 놀리고 있다. 면면을 자세히 살펴보건대 이들은 내세울 것이라고는 젊다는 것 하나뿐인 '애송이'들이다. 이들의 SNS 프로필을 보면 다들 하나 같이 어쩌고 저쩌고 '위원장'이나 '부위원장'처럼 으리으리한 직함이 열댓 줄은 달려 있다. 20여 년 남짓한 삶의 성취라고 할 것이 전국에 100명 200명 일괄적으로 뿌려대는 직함의 종합이라는 사실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나름대로 학업과 생업에 열정을 갖고 몰두해왔을 젊은이들이 보잘것없는 직함에 취해 있다는 게 통탄스러울 따름이다.


요사이 고조되고 있는 정치적 사회적 갈등의 양상은 이들의 손끝을 타고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정말이지 뭐라도 되는 줄 착각하고 있는 애송이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이 세상에 벌어지는 모든 일들에 한마디 한마디 거들기 급급하다. 순식간에 써 내려간 SNS의 단편들은 깊은 사고를 담을 틈도 없이 퍼지고 '따봉'이 쌓인다. 이들은 그 틈에서 "나의 의견이 누군가에게 중히 읽히고 있다"라는 착각과 환상에 빠진 게 아닐까.


애송이들이 아무런 건설적 논의조차 되지 않을 의견을 내지르는 사이 현안의 본질은 흐려지고 아웅다웅 감정싸움의 추태만 남게 되었다. 본디 SNS의 문턱을 넘지 말았어야 할 언사들이 '커뮤니티 정치'의 광풍을 타고 현실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들 덕에 여론은 왜곡되고 극단의 목소리만 크게 울려 퍼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현상은 청년의 중요성이 대두될수록 더욱 악화된다. 기성세대 정치인이 자신의 밥그릇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허울 좋은 말로 '2030 세대' '청년 정치'를 외치는 요즘, 이들의 눈에 띄어 개밥의 도토리라도 되어볼 성싶은 젊은 친구들이 크게 늘고 있다. 가진 것이라고는 2나 3으로 시작하는 나이가 전부인 이자들에게 뭐라도 되는 양 감투를 씌워주고 둥가 둥가 해주니 진짜로 자기들이 잘난 줄 알고 '뽕'에 취해버리는 것이다. 굴러가는 모양새를 보고 있자니 차라리 이 모든 현상이 '청년을 무력화하기 위한 기득권의 계략'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나무가 계절의 변화에도 흔들림 없이 높이 자라려거든 땅속에 단단히 뿌리를 박아야 한다. 나무는 줄기가 자라기도 전에, 아무도 보지 않는 흙 속에서 하염없이 뿌리를 내린다. 청년은 덜 자란 나무다. 한참 사유하고 공부하고 교류하며 자신의 사상과 발언을 심화해야 할 청년들이 기성세대가 보여온 온갖 구태를 따라 하기 급급하다. 예술에서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지만 정치에서 모방은 잘해봐야 흉내내기에 지나지 않는다. 어리다고 무시당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 친구가 어른의 나쁜 짓만 따라 하니 욕을 먹는 거다. 뿌리가 제대로 내리지도 않은 마당에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제삿밥에나 관심이 있으니 멀쩡히 자랄 수가 있겠는가.


야구에서는 신인 선수를 '루키'라고 부른다. 이들은 피땀 어린 노력을 거듭한 끝에 당당하게 프로리그에 올라온 미래세대 유망주다. 루키들 사이에서 유독 성실하게 연습하고 두각을 나타내면 '신인왕'이 되어 모두의 박수를 받는다. 그러나 루키가 신인왕은 생각에도 없고 프로 뽕에 차올라 뭐라도 되는 줄 알고 연습을 게을리하면 어찌 되겠는가. 하라는 훈련은 거르고 선배들의 멋진 세리머니 흉내나 하고 있고 벤치 클리어링 때 어떻게 주먹을 휘두를지 상상하며 마음이 콩밭에 가있으면 어찌 되겠는가. 신인왕은 고사하고 영원히 애송이를 벗어나지 못한 채 마운드의 비료로 썩어갈 뿐 달리 길이 없을 것이다.


하루에도 몇 개씩 세상 돌아가는 일에 한마디 한마디 보태느라 정력을 낭비하고 있는 청년들이여, 정치에 관심을 두고 깊은 사유와 신중한 행동으로 사회 발전에 일조하는 것과 정치에 눈이 멀어 병적으로 집착하고 가십거리에 몰두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바란다. 부디 성찰하는 자세로 입과 손을 조심히 놀리며 신인왕의 재목으로 돌아오길 기대한다. 제 분수도 모르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 천둥벌거숭이처럼 길길이 날뛰는 애송이들에게 한마디 건네며 마친다.


"너 혹시 뭐 돼?"


*이 글은 필자 개인의 생각이며 소속사 및 특정 집단과 관계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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