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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코알라 Sep 19. 2022

[월말정산] 말로 보는 정치 이슈   
(8월)

정당민주주의는 어떻게 끝이 나는가

[월말정산]은 매월 세간의 이목을 끈 주요 '말말말'을 모아 정치 이슈를 소개합니다    


지난 7월 8일 유례없는 '당대표 징계'를 결정한 국민의힘의 내홍이 가라앉기는커녕 점점 심화하는 모양새다. 두 번의 전국단위 선거에서 승리를 지휘하였으나 대통령과 사사건건 마찰을 빚는 이준석 대표 대신 대통령의 의중에 밝은 이른바 '윤핵관'으로 지도부를 교체하는 반강제적 작업이 불화의 씨앗이 되었다. 


■ '믿을맨'을 적으로 돌렸을 때... 이준석 vs 국민의힘, 끝없는 전쟁


누구보다 당내 사정에 밝고 온갖 치부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믿을맨' 이 대표를 적으로 돌리자 국민의힘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원래 전쟁터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가 바로 적장이 된 우리 편이 아니겠는가.


◎8월 1일

양금희 "(의원총회 결과) 최고위원 사퇴로 당 비상상황... 모두 동의"


양금희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1일 당 소속 의원 89명이 참석한 의원총회 결과 당대표 징계와 최고위원 무더기 사퇴로 인하여 당이 비상상황에 처해 있음에 '극소수'를 제외한 모두가 동의하였다고 밝혔다. 참석한 의원 중 반대의사는 김웅 의원 단 한 명뿐이었다. 양 대변인은 당헌 96조를 근거로 "비상상황일 때 비상대책위원회를 가동할 수 있다"라며 이준석 대표 체제를 무너뜨리고 비대위 체제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설명했다.


◎8월 5일

국민의힘 상임전국위원회 "당, 비상상황에 놓여 있다"


◎8월 9일

국민의힘 전국위원회 "당대표 직무대행도 비상대책위원장 임명할 수 있어"


의원총회에서 당의 비상상황에 대한 결심이 끝나자 일처리는 말 그대로 '일사천리'였다. 당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전국위원회는 현재 국민의힘이 비상상황에 놓여 있다고 유권해석하였고, 당 대표 궐위시 그 권한을 대리하여 행사하는 '당대표 권한대행' 뿐만 아니라 단순히 직무를 대신하여 처리하고 있는 '당대표 직무대행' 또한 비상대책위원장을 선임할 수 있도록 당헌당규를 개정하였다.

전국위원회에서 모든 절차를 마친 국민의힘은 9일 주호영 의원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 임명하였다. 대표가 '당원권 정지 6개월'의 징계를 받은 꼬박 달이 되던 날이었다.


◎8월 10일

이준석 "(비대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전자로 접수했다"


개정된 당헌당규에 따라 주호영 비상대책위원장이 임명되어 자동 해임된 이 대표는 당의 결정에 즉각 반발하며 비대위의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출했다. 여의도에서 정치인들이 벌이는 촌극이 정치권의 울타리를 넘어 법정 다툼까지 번지고야 말았다.


◎8월 13일

이준석 "비상상황 주장하며 당 지도체제 무너뜨리는 생각은 황당한 발상"

이준석 "조직에 충성하는 국민의힘 불태워야 된다... 민족주의 전체주의 파시스트 버려야"

이준석 "비대위 전환은 반민주적... 모든 과정 절대반지에 눈이 돌아간 사람 의중"

이준석 "(대통령선거에서) 양의 머리를 흔들면서 개고기를 열심히 팔았다"

이준석 "저에게 '이 새끼 저 새끼'하는 사람을 대통령 만들기 위해 열심히 뛰어"

이준석 "(가처분으로 당 혼란?) 그걸 알면서 어쩌자고 이런 큰 일을 벌였나"


이 대표는 1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시간여에 걸쳐 당에 쓴소리를 쏟아냈다. 이 대표는 지난 몇 차례 선거에서 국민의힘을 지지해준 국민들이 "자부심보다 분노의 뜻을 표출"하고 있어 많은 자책감을 느끼고 있다며 포문을 열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한마디 마디가 칼날이었다. 국민에 충성하지 않고 조직에 충성하는 당을 불태워버려야 한다거나, 본인에게 요구하는 '선당후사'의 정신은 이북의 김정은이나 사용하는 근본도 없는 단어라거나 하며 특유의 조롱과 비아냥이 섞인 언변으로 '윤핵관'을 찔렀다.

하이라이트는 지난 대통령선거의 캠페인을 사자성어 '양두구육'에 빗댄 것이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대통령이 개고기라는 거냐"라며 노발대발 열을 올렸다. 선거 승리를 위해 발 벗고 뛰어다는 자신에게 '이 새끼 저 새끼'하며 뒷담화 하는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고자 '양 대가리를 흔들며 개고기를 열심히 팔았다'고 한탄하는 이 대표가 상스러운 욕설 없이 절제하였으니 외려 깔끔한 표현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8월 18일

주호영 "무겁고 착잡한 심정... 국민 신뢰 회복하고 지도부 조기 안착될 수 있도록 최선"


◎8월 20일

이준석 "윤핵관의 명예로운 정계 은퇴에 힘을 보태달라"


어쨌거나 저쨌거나 주호영 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비상대책위원회는 정식 출범하였다. 분위기 반전 퍼포먼스로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방문한 수해 현장에서 "사진이 잘 나오게 비가 왔으면 좋겠다"라며 도무지 인간이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소리가 아닌 망언으로 시작한 비대위이지만 "초심을 잃지 않고 오로지 국민만을 보고 국민의 입장에서 실행하겠다"라고 다짐하며 당내 혼란을 잠재우기 위한 결의를 다졌다.


◎8월 21일

주호영 "가처분 기각 확신한다... 인용되더라도 이 대표 물러나게 될 것"


◎8월 22일

이준석 "나쁜 사람들 때려잡아야... (윤핵관) 당내 민주주의를 부수고 사법부에 기각 종용"


◎8월 23일

이준석 "주호영, 매사에 복지부동하던 인물... 절대자가 면책권 부여한 것"

이준석 "절대자는 신군부처럼 비상상황 더욱 적극 행사할 가능성... 위협이 정당을 지배"

이준석 "절대자와 가까운 사람... 12월까지 당 대표직 물러나면 윤리위·경찰 수사 정리 제안"


법원의 가처분 판단을 며칠 앞두고 이준석 대표가 제출한 자필 탄원서가 언론에 공개됐다. 탄원서에는 윤석열 대통령을 '절대자'로 칭하며 '신군부'에 빗댄 비판이 담겨 있었다. 이 대표는 탄원서에서 주호영·김기현 의원을 매사에 과도하게 신중하며 복지부동하던 인물이라고 싸잡아 비하하며 이들이 법원의 권위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어느 '절대자'의 면책권이 부여되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 대표의 탄원서 내용이 유출되자 "안전핀이 뽑힌 수류탄"이라거나 "신군부 비유는 도를 넘었다"라며 국민의힘 내부의 거센 비판이 일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열람용' 탄원서를 외부에 불법 유출한 주체가 바로 국민의힘이었고 스스로 논란을 만들고 스스로 분노하는 '자아분열' 행태에 코웃음만 사게 되었다.


◎8월 25일

신인규 "(탄원서 유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며 공무상 비밀누설"

김기현 "공적인 절차 통해 제출한 문서... 유출 아니고 그냥 공개"


◎8월 26일

서울남부지방법원 "주호영은 비상대책위원장 직무를 집행하여서는 아니 된다"


운명의 날이 밝았고 사법의 천칭은 이준석 대표 쪽으로 기울었다. 서울남부지방법원 제51민사부(재판장 황정수)는 "일부 최고위원들이 국민의힘 지도체제 전환을 위하여 비상상황을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라며 이는 "지도체제 구성에 참여한 당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정당민주주의에 반한다"라고 판시했다. 따라서 정당민주주의에 반하는 형태로 전국위원회에서 결의한 비상대책위원회는 "헌법과 정당법에 위반하므로 무효로 봄이 타당하다"라고 못 박았다.


하태경 "법원이 국민의힘 폭주에 제동을 걸었다"

주호영 "정당 내부 결정을 사법부가 부정... 정당 자치 헌법정신 훼손"

유상범 "판결한 판사가 '우리법연구회' 소속이다"

주호영 "담당 판사가 특정 연구모임 출신으로 편향적이다"

서울남부지방법원 "해당 판사는 아무 소속도 없다"


법원의 결정이 나오자 각양각색의 반응이 쏟아졌다. 우선 당내 개혁적 성향으로 분류되는 하태경 의원은 "위기 상황에 대해 정치적 해법 거부한 당 지도부는 책임을 져야 한다"라며 법원이 광적으로 내달리는 국민의힘에 제동을 걸었다고 평가했다. 친 이준석으로 불리는 김용태 최고위원도 "민주주의 최후 보루인 법원의 판단에 깊은 감사를 느낀다"라며 환영의 뜻을 보냈다.

법원의 결정에 따라 직무가 정지될 처지에 놓인 주호영 비대위원장은 "비상상황이 아니라는 결정은 납득할 수 없다"라며 다음날 즉각 의원총회를 열 뜻을 밝혔다. 당의 윤리위원인 유상범 의원은 난 데 없이 재판장 황정수 판사가 법조계 내부 진보주의 사조직 '우리법연구회' 소속이라고 주장하며 '색깔론'을 들고 나왔다. 주 위원장 또한 유 의원의 터무늬 없는 주장에 동조했다. 당이 무너지는 상황에서도 판사의 심장이 푸른색이냐 붉은색이냐 따지고 있는 꼴을 보아하니 정신 차리기엔 글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8월 27일

국민의힘 "권성동 비상대책위원장 직무대행... 비대위 유지"

국민의힘 "당헌당규 개정해 주호영 위원장의 '새로운 비대위' 구성키로"

국민의힘 "이준석에 대한 윤리위원회 추가 징계 촉구"


기각 결정을 100% 믿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고 어안이 벙벙해진 국민의힘은 27일 긴급의원총회를 열고 5시간에 걸친 마라톤 회의 끝에 권성동 원내대표를 비상대책위원장 직무대행으로 하여 비대위를 유지하기로 결정하였다. 이 대표 징계와 최고위원 사퇴가 비상사태가 아니라는 법원의 지적에 따라 당헌당규를 개정하고 비상사태 선포를 '소급적용'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나아가 이 대표의 '양두구육' '신군부' 발언이 당원에게 모멸감을 주었으며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앞장서 방해한 꼴이라며 윤리위원회에서 추가로 징계할 것을 촉구했다.

이로써 권성동 의원은 '국민의힘 원내대표' 겸 '당대표 직무대행' 겸 '비상대책위원장 직무대행'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겸직을 하게 되었고, 도저히 율사의 머리에서 나왔다고는 상상할 수 없는 당헌당규 '소급적용'을 단행하여 삶은 소대가리에게 웃음을 주고야 말았다.


◎8월 29일

하태경 "우리 당은 완전히 반자유·반민주·반법치 정당... 당이 너덜너덜"

윤석열 "의원과 당원의 중지를 모은 결론이면 존중하는 것이 맞는다"

권성동 "다수 뜻에 따른 결과가 자신의 뜻과 반대되더라고 승복하는 게 조직 구성원의 태도"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겸 당대표 직무대행 겸 비상대책위원장 직무대행'은 29일 의원총회를 통해 다수가 뜻을 모아 내린 결론이라면 아무리 자신의 뜻과 반대되더라도 받아들여야 한다며 "조직이나 단체의 구성원이 취해야 할 태도"를 설파했다. 자유와 인권 그리고 민주주의를 핵심 가치로 국정을 운영하고자 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사람이 전체주의 파시스트나 할 법한 소리를 입에 올린 것이다. 그동안 외쳐온 '선당후사'의 정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서병수 "두 번 잘못 저질러서는 안 돼... 비대위 존재하지 않고 권성동은 억울해도 물러나야"

권성동 "(서병수) 당의 중진이기 때문에 당헌당규에 충실하리라 본다"


당헌당규를 해석함에 있어 최고의 권한을 갖는 서병수 전국위원회 의장은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는 입장이었다. 국회의원 5선에 당 사무총장까지 지낸 서 의장은 사법부의 판단을 따르지 않을 경우 어떠한 리스크가 따라오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는 뛰어난 정무감각이 있었다. 법원에서 전국위원회 결의 자체가 무효함을 판시한 마당에 똑같은 잘못을 반복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당대표 직무대행 비상대책위원장 직무대행'은 완고했다. 압도적인 다수의 힘을 무기로 삼으며 당 최고 의결기구인 전국위원회를 무력화하고자 했다.


결국 서 의장은 31일 전국위원회 의장직을 사퇴했다. 국민의힘의 정당민주주의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이 글은 필자 개인의 생각이며 소속사 및 특정 집단과 관계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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