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차 엠블럼이 보이기 시작했다

by 유자와 모과

‘자기야. 올림픽 링처럼 동그란 원 네 개 겹쳐진 건 뭐지?’ ‘아우디.’ ‘아하. 그렇구나. 그럼 그리스 정교회 십자가처럼 생긴 건 뭐지?’ ‘쉐보레야.’ ‘동그라미 안에 시옷이 그려진 저건?’ ‘벤츠일걸’ ‘카메라 조리개처럼 생긴 건?’ ‘저거? BMW네.’ 운전대를 잡고 신호등에서 파란 불로 바뀌기를 기다릴 때면 자연스럽게 앞차는 어떻게 생겼는지 관찰하게 된다. 자동차 보닛과 트렁크 중앙에는 독특한 문양이나 그림이 새겨져 있는데 그걸 엠블럼이라 한다. 레이는 타원형 동그라미 안에 영어로 KIA라 써 있는데 깔끔하고 눈에 잘 띄긴 해도 엠블럼이라 하기에는 뭔가 아쉽다. K8 시리즈부터는 엣지가 돋보이는 새로운 엠블럼이 장착되고 있다. 붕붕이도 멋진 엠블럼이 있으면 좋을텐데. 엠블럼은 브랜드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추측하기 쉬운 것도 있지만 암만 봐도 해결이 안 되는 것도 있다.

현대자동차는 타원형 안에 H가 비스듬히 누워있어(두 사람이 악수하는 형상이라고 한다) 쉽게 현대차라는 걸 알 수 있지만, 노란색 도토리 모양 안에 검은 말이 화가 난 듯 앞발을 치켜세우고 있는 엠블럼은 도무지 뭔지 모르겠다(찾아보니 페라리다). 포르쉐의 엠블럼도 페라리처럼 검은 말이 화가 난 상태다. 줄무늬와 사슴뿔에 잔뜩 둘러싸여 있어서 그런가보다. 머스탱은 멋지게 달려 나가는 야생마를 로고로 사용하는데 머스탱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 에쿠스는 현대 자동차지만 비싼 차라 그런지 고유의 엠블럼을 갖고 있다. 에쿠스(Equus)는 포유류 말을 뜻하는 것으로 심볼도 천마(天馬)를 형상화한 것이라 한다. 그런데 나는 암만 봐도 비상하는 새처럼 보인다.

쌍용 자동차 엠블럼은 둥근 원 안에 작은 두 개의 타원이 평행으로 맞닿아 있는 형태이다. 무한한 우주 공간 안에 존재하는 쌍용 자동차만의 개성을 나타내었다고 한다. 르노삼성은 태풍의 눈을 형상화한 엠블럼을 사용하는데 단순하면서도 매력적으로 보인다. 황금 십자가를 떠올리게 하는 쉐보레 엠블럼의 정체는 자동차가 나비넥타이를 맨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 한다. 넥타이를 맨 자동차라니. 깜찍하기도 하지!


메르세데스 벤츠 심볼은 바라보기만 해도 최면에 빠질 것 같다. 원 안에 들어있는 날씬한 삼각형 별은 단순하면서도 우아한 느낌이 든다. BMW의 엠블럼은 항공기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모습을 원을 4등분하여 흰색과 파란색으로 배치하였다. BMW는 원래 항공기 엔진을 만드는 회사였다고 한다. 아우디는 독일의 자동차 제조사 네 개가 합병한 회사라 동그라미 네 개를 겹쳐 넣었다. 다행스럽게도 올림픽 상징은 링이 다섯 개다. 렉서스 엠블럼은 럭셔리를 상징하는 L을 타원에 넣은 모양인데 나는 자꾸 롯데리아가 연상된다. 토요타는 하나의 큰 원안에 가로와 세로 타원형이 겹쳐져 T를 형상화하고 있다.


벤틀리는 동그라미 안에 B가 새겨져 있고 양쪽으로 독수리 날개가 펼쳐진다. 앰블럼 날개를 자세히 보면 왼쪽에는 10개, 오른쪽에는 11개의 깃털이 달려 있어 완벽한 대칭이 아니다. 미니 쿠퍼도 동그라미 안에 MINI가 새겨져 있고 참새 날개가 달려있다. 크라이슬러도 2009년부터 긴 날개 엠블럼을 차용했고, 제네시스 역시 새의 날개를 선택했다. 자동차도 새처럼 창공을 날고 싶은가보다.


엠블럼이 눈에 들어오니 자동차 가격도 궁금해진다. 저 차는 얼마야? 뭐? 5천만원? 우리 신혼 집 전세 값이네(2012년 결혼 당시 서울에 얻은 신혼집은 전세 5500만원이었다). 저건 1억이라고? 그 돈이면 집을 한 채 사겠다. 집을 끌고 다니다니. 우와. 자동차를 알면 알수록 비싼 차들이 눈에 들어온다. 고급 차는 고급스러운 느낌을 폴폴 풍기며 다가오기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앞에서도 언급했던 내 친구 철수는 10년 동안 쉐보레 스파크를 탔다. 친구는 <트렌스포머>에서 스키즈와 머드플랩이라는 쌍둥이 오토봇으로 등장하는 게 바로 스파크라며, 그만큼 튼튼하고 좋은 차라고 만날 때마다 스파크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다 차를 바꿀 때가 되자 어떤 걸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친구는 직업도 좋고 모아놓은 돈도 많지만 검소한 성격이라 비싼 차를 구입할 계획은 없다. 그러던 어느 날 BMW 매장에 구경을 갔다고 한다. 전시되어 있는 BMW 중 한 모델을 살펴보는데 갑자기 딜러 한 분이 곁에 서서 설명을 하기 시작하더란다. 저 차가 연비가 좋아 유류비가 중형차 모는 것과 비슷하고 스파크와 맞바꾸면 3800만원에 살 수 있다고 유혹을 하더란다. 정신을 차려보니 친구는 이미 계약서를 작성했고 계약금 10만원을 지불했으며 손에는 계약서가 쥐어져 있었다고 한다. 집으로 돌아와 밤새 고민을 거듭하던 친구는 다음날 맑은 정신으로 계약을 취소하고 몇 달 뒤 자신이 정해놓은 예산에 맞춰 다른 차를 선택했다.


레이에서 500만원을 더 주면 아반떼를 살 수 있다. 거기서 500만원을 더 주면 소나타가 되고 500만원을 더 얹으면 그랜저 깡통(옵션 없는 차)도 살 수 있다. 처음에는 천 만원대 경차를 사러갔는데 딜러 말을 듣다보면 마음이 흔들린다. 500만원만 더 주면 되는데...나처럼 귀가 얇은 사람은 딜러 말에 홀딱 빠져 대형 세단을 계약할지도 모른다. 나도 람보르기니나 롤스로이스 같은 고급차를 몰아보고 싶다. 고급차를 타면 남들이 나를 얼마나 우러러볼까? 하지만 그건 나만의 착각일 수 있다. 사람들은 누군가가 멋진 차를 몰면 운전자를 보지 않는다. <돈의 심리학>에서는 저자는 이를 정확히 지적한다. “누군가가 근사한 차를 모는 것을 봤을 때 우리는 ‘저 차 모는 사람 멋진데?’ 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저 차가 내 거라면 사람들이 ’내가‘ 멋지다고 생각할 텐데.’라고 상상한다.” 내가 비싼 차를 몰고 싶은 건 다른 이들에게 칭찬받고 호감을 얻고 싶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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