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

유자의 플렉스

by 유자와 모과

"엄마. 온김에 모자도 하나 사자. 운동할 때 따뜻하게 쓰고 다니면 좋잖아."

"집에 털모자 있는데?"

"그건 너무 낡았던데. 이거 한 번 써봐."

어제 부모님 집 근처에 있는 아울렛 매장에 갔다.

아울렛이라고 해봐야 매장 6개가 전부이긴 하지만 거의 모든 상품이 30%~80% 할인이 들어간다.

아빠는 원래부터 가진 옷 갯수가 적고 엄마는 주로 지인들이 작다고, 크다고, 안 입는다고 준 옷들이 대부분이다.

예전에는 옷을 사는 게 생활에 부담이 되어 사지 않으셨고, 지금은 있는 것도 충분하다고 사지 않으신다.

결혼을 하고 살다 보니 우리 부모님이 얼마나 검소하게 사시는지 그제야 알게 되었다.

그 후 일 년에 한 두번 부모님을 모시고 의류 매장에 간다.

백화점이나 일반 매장에서 옷을 사드리려 하면 가격을 확인한 후 안사겠다고 고집을 피우시기에 이제는 아울렛만 모시고 간다.

확실히 아울렛은 할인율이 높아 부모님도 별 거부감 없이 옷을 입어보신다.

"엄마, 집에서 입을 패딩 조끼도 필요하지 않아? 이 색 진짜 예쁘지?

아빠, 외출용 겨울 바지가 두 벌 밖에 없던데 이거 한 번 입어보세요.

엄마, 이 니트 좀 만져봐. 캐시미어 100%야. 할인도 엄청 많이 하네.

아빠, 벨트가 좀 낡은 것 같은데 바꾸는 건 어때요?"

부모님은 의류 매장에서 새 옷을 구입하는 게 익숙하지 않으시고, 가격이 비쌀까봐 걱정부터 하시기에 전략을 잘 세워야 한다.

내가 주로 쓰는 방법을 소개하자면

첫째, 최대한 빠르게 매장을 한 바퀴 돌며 부모님 마음에 들 만한 옷을 고른 후

부모님이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으시는 동안 부지런히 다른 옷을 찾은 후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부모님은 새 옷을 입어보기에 바빠 가격을 살펴볼 겨를이 없다.

일명 부모님 정신을 쏙 빼놓기.

이 방법을 쓰려면 부모님이 평소 좋아하시는 옷 스타일, 색상, 재질, 사이즈를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부모님이 가진 옷 중 부족한 게 뭐가 있는지 미리 옷장을 살핀 후 필요한 옷을 제공하는 센스가 필요하다.

둘째, 내가 봤을 때 부모님께 어울리는 옷이고, 부모님도 마음에 들어하시는 것 같다면 진짜 잘 어울린다고 칭찬을 하며 그 옷은 이월상품이라 할인율이 어마어마하다고 말하는 거다.

그리고 부모님이 가격표를 확인하시기 전 얼른 다른 옷을 입어보라며 대기하고 있던 옷을 내민다.

셋째, 한 두 벌 새 옷을 고르신 후 이제 충분하다고 말씀하시기 바로 직전(타이밍이 중요하다)에 나에게는 풍족한 돈이 있다는 걸 강력하게 어필해야 한다.

내가 요즘 돈 쓸데가 없고, 여유돈이 충분해서 이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몇 개만 더 살펴보자며 플렉스를 해야 한다.

이번에도 역시 이 방법이 통했다.

부모님은 얼떨결에 옷을 한가득 품에 안으시고 매장을 나오셨다.

마침 우리가 방문한 날이 첫 가을 세일을 시작한 날이라 추가 할인을 받았다.

총 의류 구입비는 27만원.

부모님은 좋은 옷을 잔뜩 샀다고 고마워하셨지만

고맙긴요. 저는 부모님을 위해 플렉스 할 때가 제일 기쁜걸요.

때때로 부모님께(시부모님께는 용돈으로) 플렉스 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절약하며, 투자하며, 공부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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