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자꾸 그러면 아파 버릴꺼야

by 유자와 모과

남편과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핸드폰을 확인했다. 부재 중 전화가 수십 통이다. 발신자는 엄마. 큰일이 났나 싶어 급히 전화를 했다.


“왜 전화를 안 받고 그러니? 어디야?”

“엄마 무슨 일 있어? 남편이랑 영화 보느라 전화기 꺼놨었지. 무슨 일인데?”


“아니, 그게 아니라, 아까 뉴스를 보는데 납치 사건이 나와서. 서울 사는 어떤 여자가 퇴근하고 집에 가다 납치됐는데 아직도 못 찾았대. 너도 서울 사니 갑자기 걱정 돼서 전화해봤지.”


“그렇다고 전화를 수 십 번이나 할 필요는 없잖아. 내가 어린애야?”

“엄마가 원래 걱정이 많잖니. 병이야 병. 제발 밤에 돌아다니지 말고 일찍 집에 들어가라.”


“끊어!”


엄마는 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은 안하냐고 매번 엄마를 놀리지만 엄마가 살아온 고달픈 삶을 생각하면 그 마음도 이해된다. 낮잠 잘 때 핸드폰을 옆에 두는 유일한 이유는 엄마에게 걸려오는 전화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엄마에게 있어 나와 동생이 전화를 받지 않는 것보다 더 두려운 상황은 우리가 아플 때다. 외할아버지는 엄마가 다섯 살 때 돌아가셨고 외할머니는 엄마가 고등학생 때 돌아가셨다.



외할머니는 병으로 고생하다 돌아가셨다. 엄마가 외할머니 병수발을 들며 마음고생이 많았다고 한다. 엄마는 외할머니가 숨을 잘 못 쉴 때마다 파파농을 사러 약국으로 달려갔다. 파파농은 가슴에서 불이 확 솟아날 때 먹는 약으로 화병을 달랜다고 한다.


외할머니 몸이 차디차서 엄마는 한여름에도 불에 달군 돌을 할머니 배 위에 올려놓아야 했다. 어린 나이에 아빠를 잃고 병든 엄마를 간호한 트라우마와 부모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 엄마는 가족이 아플 때마다 괴로워 어쩔 줄 모른다.


동생 강은이가 수술을 고민할 정도로 허리가 아팠던 적이 있었다. 엄마 마음에도 먹구름이 끼었다. 강은이에게 전화하면 괜찮다고 할 게 뻔하니 엄마는 매일 아침 내게 전화를 걸었다. 강은이 허리는 좀 나아졌는지, 운동은 하고 있는지, 밥은 잘 먹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전화를 받다 지친 나는 엄마에게 걱정 좀 그만하라고 버럭 화를 냈다. 불안은 주변 사람에게 옮겨간다. 엄마 불안이 내게 전달되었고, 나는 불안을 들키지 않기 위해 엄마를 윽박지르고 말았다. 엄마 약점을 잘 알고 있기에 엄마를 설득해야 할 일이 있을 때 내가 하는 말은 딱 한마디.


“자꾸 그런 식으로 나오면 나 아파버린다.”


그러면 엄마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한다.


“엄마는 낙천적이야. 네가 아프면 기도하면 되지, 뭐가 걱정이니.”


잠시 후


“하림아, 말이 씨가 된다 너. 장난이라도 그런 말 하면 안 되지. 지금 말한 거 당장 취소해.”


남편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다. 남편은 어렸을 때부터 병약한 아이였다. 편식이 심했고 빼빼 마른데다 면역력도 약해 겨울 내내 감기를 달고 살았다. 초등학생 때는 갑자기 걷지 못하기도 했다. 어느 날 남편이 “엄마, 나 하나도 안 아파.” 말하면서 절뚝거렸다고. 놀란 어머님이 아이를 업고 대전에 있는 온갖 병원을 방문했지만 소용이 없었다(소아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았던 것 같다).


그러다 일 년 뒤쯤 남편은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하게 다시 걸었다. 대학생 때는 허파에 바람이 들어 기흉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다. 수술 받고 몇 주 뒤 농촌에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허파가 또 찢어졌다나. 그러니 어머님의 자식 걱정도 남다를 수밖에. 어머님을 이길 수 있는 남편의 유일한 무기도 하나밖에 없다.


“엄마, 자꾸 그러면 나 아파 버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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