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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Aug 23. 2023

10. 뿌셔뿌셔


IT 개발자들의 몸값이 치솟고 있었다. 회사마다 부족한 인재를 확보하려고 아우성이던 2021년 초, 초등학생들이 코딩 수업을 듣고 개발자들이 최고 연봉을 받고 있다는 신문 기사를 읽으며 생각했다. 더 늦기 전에 컴퓨터 언어를 배워야겠다고.


 미래에는 코딩 지식이 기본이 되는 시대에 살게 될 텐데 그때 가서 허둥거리고 싶지 싶었다. 국가에서 지원하는 교육을 찾아봤다. 파이썬과 금융 교육을 결합한 데이터 분석가 과정이 눈에 띄었다. 경제와 데이터에 관심 많은 내게 딱 맞는 수업이었다. 교


육 기간은 6개월. 신청자가 많아 면접을 통해 선발한다고 적혀 있었다. 내일배움카드를 만들고 신청서를 작성했다. 줌으로 면접도 보았다. 3대 1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합격하니 자신만만한 기분이 들었다. 교육과정을 수료한 후 코딩 강사를 해볼까? 스타트업을 차릴까? 흐뭇한 상상을 하기도 했다.



 파이썬은 인공지능과 머신러닝에 가장 적합한 언어라 한다. 직관적인 언어라 비전공자가 접근하기 쉽다. 'Hello World'로 시작된 수업은 함수와 변수로 이어졌고 for문과 class를 만드는 과정에 다다랐을 때 깨달았다. 나는 컴퓨터 언어와는 맞지 않은 인간임을. 


코딩은 컴퓨터에게 말을 거는 행위다. 나는 낯선 사람과도 금방 친해지는 편이다. 슬프게도 컴퓨터는 기계라 소통하는 법을 새로 배워야 한다. 한 달 간 컴퓨터와 대화를 해본 후 발견한 비밀이 있다. 당신에게만 알려주겠다. 


사실 컴퓨터는 바보 중에 바보다. 빈칸이 있어도 오류, 대문자를 소문자로 써도 오류, 마침표를 쉼표로 찍어도 오류, 중괄호를 소괄호로 넣어도 오류, 수업시간마다 온갖 오류들이 나를 공격했다. 


 파이썬과 머신러닝 과정이 끝난 후 프로젝트 1이 시작되었을 때 자신감은 땅 속 깊이 파묻혀 사라졌다. 그때 나와 같은 팀이 되었던 팀원 중 명성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얼핏 보면 송중기를 닮았다. 근육맨으로 불렸던 명성이는 프로젝트 1에 이어 2에서도 같은 팀이 되었다. 명성이는 친절했고 정이 많았다. 팀원들보다 한참 나이가 많았던 나는 나른한 오후 팀원에게 간식을 제공하는 과자 셔틀을 담당했다. 명성이가 좋아한 과자는 ‘떡볶이맛 뿌셔뿌셔’였다. 



 명성이가 좋아하는 떡볶이맛 뿌셔뿌셔를 사기 위해 학원을 나섰지만 근처 편의점에서는 뿌셔뿌셔를 팔지 않았다. 편의점을 네 군데나 돌았으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다이소 매장 과자 코너에서 가까스로 ‘바베큐맛 뿌셔뿌셔’를 발견했다. 마음 착한 명성이는 바베큐맛을 불평 없이 먹었다. 

매일 과자를 사러 나갈 때마다 떡볶이맛 뿌셔뿌셔를 찾았다. 집 앞 슈퍼에서 장을 볼 때 살펴보기도 했으나 떡볶이맛은 없었다. 프로젝트 2가 끝날 때까지 명성이가 먹었던 건 바베큐맛 뿌셔뿌셔였다.


 1999년 오뚜기에서 출시한 뿌셔뿌셔는 획기적인 상품이었다. 그 전까지는 끓인 라면이 아닌 부순 라면을 먹고 싶다면 생라면을 쾅쾅 두드려 부숴 먹어야했다. 그때 주로 먹었던 건 스낵면과 참라면이었다. 라면 중에서는 면발이 얇아 부수기도 쉽고 먹기도 수월했다. 


그러다 뿌셔뿌셔가 등장했다. 라면을 날 것 그대로 간편하게 먹으라고 생라면을 과자처럼 만들어 버린 것이다. 진정한 소비자 중심의 시도라 할 수 있다. 이름도 귀여운 뿌셔뿌셔는 라면과 똑같이 생긴 사각 봉지 안에 라면과 스프가 들어 있다. 라면을 부수고 그 안에 스프를 넣은 후 봉지를 아래위로 흔들면 완성. 


한쪽 면에만 스프가 잔뜩 묻은 라면 조각을 먹으면 반드시 기침을 하기에 고루 섞이게 하는 게 관건이다. 뿌셔뿌셔도 놀랍지만 세상은 한 발짝 더 나아갔다. 처음부터 뿌셔뿌셔를 스프에 버무린 후 바둑알 모양으로 뭉쳐놓은 쫄병스낵을 보라. 라면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궁극의 과자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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